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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에서 펴낸 책과 작가, 그리고 회사 이야기를 소개한 언론 보도입니다

경향신문_“눈을 반만 뜨고 살다가 이제야 활짝 떴당께” ① |이슈파이 ‘순천 소녀시대’

namhaebomnal
2019-06-18
조회수 1751


글을 모르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거리를 걸어도 간판을 읽을 수 없고 달력의 글씨도 읽을 수 없다면 어떨까요?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인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면, 넘겨짚으며 글씨를 맞춰야 할 때면 어땠을까요?

‘순천 소녀시대’ 할머니들은 순천평생학습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그림을 배웠다. 서울 갤러리에서 그림을 전시하고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라는 단행본을 냈다. 왼쪽부터 임순남, 황지심, 장선자, 김영분, 장선자 할머니가 자신이 만든 책을 들고 있다.



일흔, 여든을 앞둔 할머니들이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할머니들은 가난했고, 여자라는 이유로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2016년에 초등과정 공부를 시작한 20명의 할머니들은 2019년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습니다.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에서 5명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김영분 할머니(80), 장선자 할머니(76), 임순남 할머니(72), 손경애 할머니(72), 황지심 할머니(69)가 주인공입니다. 글을 몰랐을 때는 어땠을까요? 할머니들은 글을 몰랐던 삶에 대해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늘 주눅이 들었당께” 글을 배우고 달라진 삶

글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부끄럽고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숨겨야 해서 괴롭고 겁이 났습니다. 장선자 할머니는 “늘 주눅이 들었다”고 말합니다. 황지심 할머니는 버스 간판을 볼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교회에서 여전도회장 한번 못한 거하고 동네 분회장 못한 것이 한이어요. 두 가지걸 못 해서 한이여.”

손경애 할머니는 동네 친구들이 놀러가자고 하면서 달력을 보라 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놀러를 가자고 하는디 나보고 달력을 보래. 글씨를 알아야 달력을 보지. 참 난처하더만. 서서 우물우물하고 있다가 심장이 벌렁벌렁한거야. 말을 해야한디. 언제가 날짜가 좋은지도 모른디. 그래서 보고는 아무 글자나 요렇게 짚으면서 워메 요날 가면 좋겠다고. 요날 갑시다. 그랬어. 그랬더니 그날이 음력으로 며칠이여 물어보대. 음력도 알아야지 글씨를 모르는디. 아이고 그냥 넘어가지 또 뭔 음력을 다 물어본까잉. 봤어. 음력은 없는거 같은디.(웃음) 고렇게 핑계를 댔당께.”


글을 배우고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을까요? 장선자 할머니는 말합니다.

“항상 전에는 움츠리다가 이제 움츠리지를 않아지대. 옛날에 우리들은 눈을 반만 뜨고 살다가 눈을 활짝 뜨고 본께 아주 좋아요. 누가 뭐라 하면 자신있게 대답도 해주고. 그전에는 아는 것도 웅크러져갖고.”

손경애 할머니는 말합니다. “아무래도 안 배운 놈보다는 낫죠. 어딜 가도 그렇고.” 김영분 할머니는 거들었습니다. “낫기만 혀. 말이라고.” 글을 모를 때는 주민등록번호도 외우지 못했습니다. 손 할머니는 “주민등록도 몰라. 어디 가면 우리 아저씨가 외워갖고 다니면서 나는 뒤에 따라다니고 그랬거든. (이제) 주민등록번호도 알지 주소도 쓸 줄 알지. 애들한테도 글씨가 틀리더라도 문자라도 좀 보내고. 긍께 우리 아들이 ‘아 우리 엄마 멋지다, 우리 엄마 최고다’고 문자가 오고. 큰딸한테도 문자가 왔더라고. ‘엄마 멋지다고 엄마 그렇게 살으라고, 그래야 안 아프다’고.”

황지심 할머니는 ‘비밀통장’을 만들었습니다. “뭘 모릉께 우리 아저씨가 나한테 안 맡겼지. 통장을 안 맡겼는데. 나가 안께로 통장을 따로 해줬어요. 나이가 등께 나도 통장 있어야 하고 아저씨도 있어야 하니께 해줬어요. 비밀 통장에는 노후대책 해놓은 게 달달마다 들어온께 많이는 없어요.(웃음)”



■“헬로 디져”, “동글맹이가 안 막아져”

글 배우기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글씨 배우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받침’입니다. 임순남 할머니는 “글자는 읽을줄 알아도 받침이 빠져부린다 말이오”라며 웃었습니다. 맞춤법 때문에 웃기도 많이 웃었습니다. 영어 인사말을 배우다가 벌어진 일은 ‘티쳐’가 ‘디져’가 된 일입니다. 선생님이 ‘헬로 티쳐’ 해보라고 하자 ‘티쳐’ 발음을 못 해서 ‘디져’가 됐습니다. 할머니들은 “그 소리가 그렇게 안 나오대”라면서 웃었습니다.

이구동성 : 헬로 디져. 헬로 디져.

선자 : 티쳐 소리 못해갖고 디져.

경애 : 선생님이 들어오시면 그런다니까.

영분 : 디져 이랬어.

지심 : 디져분다고. 나를 욕을 한다고 선생님이.

순남 : 답답해 답답해.

영분 : 그 소리가 그렇게 안 나오대.

글만 배운 것이 아닙니다. 순천시립그림책미술관의 나옥현 관장과 김순자 글선생님(순천 평생학습관 초등반 강사)이 ‘예술 수업을 하면 어떨까’ 의기투합해 그림도 배웠습니다. 나 관장은 김중석 작가를 섭외해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첫 시간 할머니들은 연필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죠.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기 때문인데요. 김 작가는 ‘동그라미부터 그려보자’고 용기를 줬고 할머니들의 작품 세계가 시작됐습니다. “동글맹이가 안 그려져. 안 막아져”라던 할머니들이 그림을 배우면서 강아지, 손녀, 가족들의 얼굴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그려냈습니다. 그림 그리기가 재밌어지자 연습량은 순식간에 쌓였습니다.

할머니들은 처음 그림 그릴 때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경애 : 동그래미 사각지는 거 그 사각도 못 그려 엄한데로 가버리고.

지심 : 사각 그리는거 겁나게 힘들더만.

영분 : 그거 힘들어요.

지심 : 동그라미는 뭘 엎어놓고 그릴 수 있는디 사각 그리는건 겁나게 힘들어.

경애 : 세모도 반듯하게 안 됩디다.

지심 : 네모도 힘들고 다 힘들었어요.

다시 물었습니다. “세모 네모도 힘들었는데 강아지도 그리시잖아요. 어떻게 그렇게 그릴 수 있게 됐어요?” 김영분 할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선생님 이렇게 손 돌아가면은 그걸 보니까 쉽더라고요. 앞에 앉어서 선생님 손 돌아가는 것을. 이렇게 손이 돌아가는구나. 그러니께 강아지가 되고 머리가 되고 귀가 되고 그리 해갖고 몸뚱이를 만들대. 아 알았다 알았다. 밤새도록 그리고 또 그리고. 그렇게 되대요.”

할머니들은 밤새 그림을 그렸고 김중석 작가는 할머니들의 그림을 보고 놀랐습니다. “3~4주쯤 지나고 집에 가서 그려오시라고 했는데 ‘오 이런 걸 그려오시다니’ 했어요. 일단 색채가 독특해요. 한정된 색채를 쓰는데 어떻게 이렇게 색채를 표현했지 (했고요). (색이) 섞이기도 하고 원색끼리 만나는데도 되게 자연스러웠어요.”

손경애 할머니의 그림



■‘순천 소녀시대’ 작가님 되다

김중석 작가가 할머니들의 그림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죠. 좋아요 100개, 200개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반응이 단순하지 않다고 생각한 김 작가는 서울에서 전시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조건 갤러리를 계약했어요.” 김 작가는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고 나옥현 순천시림그림책도서관장도 순천시 예산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서울 서촌 우물 갤러리에서 전시를 했습니다. 하루 150여명이 오고 젊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전시를 봤습니다. 심상치 않은 인기였죠. 전시회가 끝나고 열 군데의 출판사에서 할머니들 이야기를 출간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책이 2월 출간된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라는 단행본입니다. 할머니들은 이제 ‘작가님’이 됐습니다. 순천에서 출간기념회도 열었고 올해 전국 책방에서 전시회를 이어 엽니다. 4월에는 미국 4곳의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해외로 진출한 거죠!


할머니들의 미국 전시회 포스터. 4월부터 미국 미켈슨 갤러리 등 4곳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할머니들은 ‘스타’가 됐습니다. 임순남 할머니는 방송 인터뷰를 한 게 너무 신이 납니다. “방송을 때리니까 그렇게 좋더라고. 늙어갖고 공부하러 다닌다고 할까봐 촬영하면 안 할거야 안 할거야 했는데. 방송을 때려부니까 나가 그렇게 재밌더라고.” 주변에 자랑도 많이 했습니다. “나는 출판기념식을 해서 젤로 너무너무 좋아서 자랑을 많이 해요. 오늘 인터뷰한다고 양말 사는데 가서 (예전 인터뷰 영상을) 틀어줬어요.”(황지심 할머니)

■우리는 ‘순천 소녀시대’

20명의 할머니는 순천에서 ‘소녀시대’라고 불립니다. 할머니들이 맞춰 입은 빨간색 옷, 연두색 스카프는 ‘순천 소녀시대’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소녀시대’라는 말은 어색합니다. “그 사람들은 예쁘제 진짜로.”(장선자 할머니) “나는 늙어갖고.”(황지심 할머니) “우리들은 기운도 없고.”(장선자 할머니)

김순자 선생님은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일모레면 아흔이 되는 분부터 가장 나이가 적은 분도 오십대 후반인 이 할머니들을 우리는 순천 소녀시대라고 부른다. 거친 시절을 누구보다 꿋꿋하게 이겨내고 든든히 가족 건사하며 살아온 분들이 교실에만 들어서면 수줍어하고 즐거워하고 반짝반짝 빛이 났다. 기역, 니은을 천천히 배우면서, 동그라미와 네모를 삐뚤빼뚤 그리면서 세상 가장 행복한 얼굴이 되었고, 가장 좋은 날은 오늘이라고 말하는 ‘소녀’들이었다.”

칭찬을 별로 받아본 적 없는 할머니들은 칭찬을 받으며 글과 그림 실력이 쑥쑥 늘었습니다. 김중석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칭찬을 받아보신 적이 별로 없잖아요. 항상 뭔가 결핍된 상태. 그림 너무 잘 그렸다고 하면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칭찬들을. 저는 빈 말이 아니고 진짜 좋아서 좋다고 했는데 칭찬 들으면 좋아서 하시고 또 하시고. 저도 보람됐죠. 할머니들은 같이 커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랬어요).”


4월 미국 미켈슨갤러리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할머니들과 갤러리 관계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옥현 순천시립그림책도서관장 제공


뒤늦게 소녀 시절을 살게 된 것은 아닐까요? 할머니들은 너무 재밌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도,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려서 전시회를 열게 된 것도. 이제 예쁜 것을 보면 사진을 찍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집니다. “그림을 좀 빨리 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안 드세요?”라고 물었습니다.

“한이 되지요. 60대만 했으면 나가 풀 날 것인디.”(장선자 할머니)

60대였으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 뭉클합니다.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이 인기를 얻은 것은 그 속에 들어있는 인생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2회.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로 이어집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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