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개구쟁이 토끼 ‘피터 래빗’의 작가
‘포터’가 평생 가꾼 정원을 탐사
꽃·나무·동물들의 이야기 그녀 삶의 궤적 조명
오래전 영국 북부의 호수지방,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갔을 때 황금빛 수선화가 한창이었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개구쟁이 토끼 ‘피터 래빗’의 고향. 그곳에서 필자가 만난 작가의 정원은 봄이면 제비꽃과 데이지가 피고, 여름에는 백합과 참나리가, 가을에는 한해의 마지막 꽃인 국화가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 토끼와 고양이와 오리가 계절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동화 속 세상이었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과 작가에 대한 경외감을 고스란히 필자의 마당으로 옮겨오고 싶었다.
그곳에 다녀와 충북 괴산으로 귀촌했고 작가를 흉내 내어 척박한 돌밭에 꽃과 나무를 가꾼 지 벌써 일곱해. 지금 필자의 정원에는 수선화와 보랏빛 무스카리, 딸기꽃과 매발톱 가득한 봄이 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붓꽃 그림자가 울타리를 타고 넘을 테고 달밤이면 솜구름 같은 하얀 수국이 문 앞을 밝힐 거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 계절에 <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을 읽는다. 자연 속에 살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베아트릭스 포터. 작가로서뿐 아니라 정원사로, 또 농부로 손에 흙을 묻히며 살았던 그의 삶을 따라가본다. 이 책은 미국 뉴욕식물원에서 조경과 원예를 가르치는 저자가 포터의 집과 정원을 탐사해 그녀가 가꾼 꽃과 나무, 아꼈던 식물과 동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4월 첫째주까지는 봄이 어떻게든 장애물을 헤치고 찾아온다’는 포터의 정원. 황금색 야생 수선화가 온 마을을 물들이고 앵초·매발톱·팬지, 그리고 5월이면 라일락 향기가 집을 휘감는다.
붓꽃과 모란이 피는 여름이면 백리향·민트·바질 등 온갖 허브가 향을 풍기고 6월에는 첫번째 장미가 피어난다. 무엇보다 이 계절은 잡초와의 격전장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정원의 여름, 비 한번 올 때마다 풀은 성급하게 자라고 여름은 정원사에게 첫 새벽의 노동을 부과한다.
그러다 ‘햇살에 비친 안개가 황금빛으로 자욱한, 고요하고 완벽한 가을날’이 찾아온다. 참나무는 적갈색으로, 너도밤나무는 구릿빛으로, 자작나무는 황금색으로 변하는 가을. 땀 흘린 대가를 수확하는 기쁨과 함께, 내년 봄을 기다리며 구근을 심는다. 국화는 포터의 정원에서 한해의 가장 마지막에 피는 꽃. 작가는 가을날 볕을 쬐며 편지를 쓴다.
“꽃에서 따 모은 씨앗들을 봉투에 담아 당신의 주소로 보내요.”
이제 곧 포터가 사랑했던 클레마티스와 여름 장미가 절정을 이룰 필자의 작은 책방에서 필자도 편지를 쓰고 싶다. 너무 많아 귀한 줄 몰랐던 작은 꽃의 씨앗들을 정성스레 모아놓고, 꽃잎도 말려놓고 정원 탁자에 앉아 편지를 써야지. 사연은 짧게, 그러나 속에 담긴 꽃씨와 마른 잎들이 받는 이의 마음을 깊게 울리도록.
책을 읽는 내내 정원사이자 자연주의자로서의 포터가 동화작가인 그녀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정겨운 피터 래빗은 물론이고 포터가 직접 그린 식물들의 그림과 그녀의 정원을 소개하는 사진들로 책은 화사하고 따뜻하다. 포터가 묘사한 집의 향기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지금 내 코끝을 간질이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봄의 정원에 꼭 어울리는 책이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마르타 맥도웰 지음 / 김아림 옮김/남해의봄날/1만8000원 / ☎ 055-646-0512
백창화<북칼럼니스트, ‘시골작은책방’ 대표>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nongmin.com/plan/PLN/SRS/311083/view
전세계 어린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개구쟁이 토끼 ‘피터 래빗’의 작가
‘포터’가 평생 가꾼 정원을 탐사
꽃·나무·동물들의 이야기 그녀 삶의 궤적 조명
오래전 영국 북부의 호수지방, 레이크 디스트릭트에 갔을 때 황금빛 수선화가 한창이었다. 전세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개구쟁이 토끼 ‘피터 래빗’의 고향. 그곳에서 필자가 만난 작가의 정원은 봄이면 제비꽃과 데이지가 피고, 여름에는 백합과 참나리가, 가을에는 한해의 마지막 꽃인 국화가 절정을 이루는 가운데 토끼와 고양이와 오리가 계절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동화 속 세상이었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과 작가에 대한 경외감을 고스란히 필자의 마당으로 옮겨오고 싶었다.
그곳에 다녀와 충북 괴산으로 귀촌했고 작가를 흉내 내어 척박한 돌밭에 꽃과 나무를 가꾼 지 벌써 일곱해. 지금 필자의 정원에는 수선화와 보랏빛 무스카리, 딸기꽃과 매발톱 가득한 봄이 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붓꽃 그림자가 울타리를 타고 넘을 테고 달밤이면 솜구름 같은 하얀 수국이 문 앞을 밝힐 거다.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 이 계절에 <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을 읽는다. 자연 속에 살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아끼고 사랑했던 베아트릭스 포터. 작가로서뿐 아니라 정원사로, 또 농부로 손에 흙을 묻히며 살았던 그의 삶을 따라가본다. 이 책은 미국 뉴욕식물원에서 조경과 원예를 가르치는 저자가 포터의 집과 정원을 탐사해 그녀가 가꾼 꽃과 나무, 아꼈던 식물과 동물들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4월 첫째주까지는 봄이 어떻게든 장애물을 헤치고 찾아온다’는 포터의 정원. 황금색 야생 수선화가 온 마을을 물들이고 앵초·매발톱·팬지, 그리고 5월이면 라일락 향기가 집을 휘감는다.
붓꽃과 모란이 피는 여름이면 백리향·민트·바질 등 온갖 허브가 향을 풍기고 6월에는 첫번째 장미가 피어난다. 무엇보다 이 계절은 잡초와의 격전장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는 정원의 여름, 비 한번 올 때마다 풀은 성급하게 자라고 여름은 정원사에게 첫 새벽의 노동을 부과한다.
그러다 ‘햇살에 비친 안개가 황금빛으로 자욱한, 고요하고 완벽한 가을날’이 찾아온다. 참나무는 적갈색으로, 너도밤나무는 구릿빛으로, 자작나무는 황금색으로 변하는 가을. 땀 흘린 대가를 수확하는 기쁨과 함께, 내년 봄을 기다리며 구근을 심는다. 국화는 포터의 정원에서 한해의 가장 마지막에 피는 꽃. 작가는 가을날 볕을 쬐며 편지를 쓴다.
“꽃에서 따 모은 씨앗들을 봉투에 담아 당신의 주소로 보내요.”
이제 곧 포터가 사랑했던 클레마티스와 여름 장미가 절정을 이룰 필자의 작은 책방에서 필자도 편지를 쓰고 싶다. 너무 많아 귀한 줄 몰랐던 작은 꽃의 씨앗들을 정성스레 모아놓고, 꽃잎도 말려놓고 정원 탁자에 앉아 편지를 써야지. 사연은 짧게, 그러나 속에 담긴 꽃씨와 마른 잎들이 받는 이의 마음을 깊게 울리도록.
책을 읽는 내내 정원사이자 자연주의자로서의 포터가 동화작가인 그녀보다 훨씬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정겨운 피터 래빗은 물론이고 포터가 직접 그린 식물들의 그림과 그녀의 정원을 소개하는 사진들로 책은 화사하고 따뜻하다. 포터가 묘사한 집의 향기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지금 내 코끝을 간질이는 것만 같다. 아름다운 봄의 정원에 꼭 어울리는 책이다.
베아트릭스 포터의 정원/마르타 맥도웰 지음 / 김아림 옮김/남해의봄날/1만8000원 / ☎ 055-646-0512
백창화<북칼럼니스트, ‘시골작은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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