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Food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남도라는 이름의 밥상 - 순천 굴비정식



경남의 끝자락에 살고 있지만, 난 전라도에 더 익숙하다. 여행을 더 많이 했던 곳도 전라도고 일 때문에 많이 찾았던 곳도 전라도였다. 당연히 경상도 사투리보다는 전라도 사투리가 훨씬 정겹다. 결정적으로 어머니께서 나고 자라신 곳이 전라북도 전주다. 그러니 내가 어렸을 때부터 먹어왔던 밥상 역시 전라도식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매일 저녁 메인 메뉴가 바뀌었다. 국이 있어도 탕은 따로 올렸고 고기가 있어도 생선이 빠지면 안 되다는 생각을 갖고 자랐다. 그러니 전라도에서 밥을 먹을 때는 밥상의 스케일과 상관없이 푸근한 느낌이 들곤 했다. 언젠가는 전라도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도 갖고 있다. 후보지는 전주와 순천. 꼭 먹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전주야 명실상부 최고의 전통과 기품을 가진 곳이고 순천은 전라남도 안에서는 경쟁자를 찾기 힘든 맛의 고장이다. 그리고 그런 아름다운 곳들이 통영에서 고작 두 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음식 칭찬에 박한 전라도 사람들의 자부심과 손맛

전라도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평가가 굉장히 박하다.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그저 “먹을만 하다”고 평하는 게 최고의 칭찬이다. 그래서 음식점에 대한 평가 역시 토박이들과 여행객들 사이의 간극이 엄청나다. 물론 어디든 그 정도의 차이만 존재할 뿐 토박이들과 여행객 사이의 평가는 다르기 마련이다. 통영의 수많은 횟집들 역시 토박이들로부터 “맛이 변했다” “양이 예전과 다르다” “요즘 장사가 좀 되는 모양이다” 등등의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곳이 적잖지만 막상 그런 곳에 서울에서 내려온 누군가를 데리고 가면 살아생전에 받아보지 못할 진수성찬을 마주한 표정으로 감격하기 마련이니까. 다만 전라도에서는 그 표정이 좀 더 극적으로 변한다. 남도에서 생산되는 산물이 모두 모이는 순천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나 역시 제대로 된 한정식상을 촬영하면서 그 스펙터클에 기가 질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한정식은 그 특성상 끊임없이 음식이 교체되기 때문에 상에 오르는 것을 한 번에 촬영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 당연히 가장 대표적인 것들만 몇 개 모아놓고 촬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도 어떤 앵글로 잡든 아쉬움이 남을 정도였으니 한정식집에 촬영을 갈 때면 자연스레 한숨부터 나왔다. 그랬으니, 명백한 ‘메인 메뉴’가 정해져 있는 굴비정식은 내게 구원과도 같은 한 상이었다. 물론 찍기에만 좋았던 것은 아니다. 어떤 기술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훌륭했던 맛 역시 내가 순천을 돌아다니는 내내 잊혀지지 않았다.

 

 

굴비 맛에 눈뜨다

사실 굴비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생선에 대해 그리 큰 호감이 없는 입맛 탓이기도 했거니와 납득할 수 없는 가격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강남의 어느 굴비 전문점에서 제대로 말린 굴비를 녹차에 말은 밥과 함께 먹어보고는 그동안 내가 굴비를 멀리 했던 게 다 내 얕은 경험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후 공교롭게도 영광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먹은 다양한 굴비들은 내게 ‘맛의 오의奧義’에 대해 가르침을 주었으니, 나는 그 후부터 굴비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통영에서 첫 여름을 보내던 어느 날, 마침 순천에 갈 기회가 생겨 촬영 때문에 방문했던 곳 중 한 곳으로 아내를 안내했다. 그리고 그간 더위 때문에 저 멀리로 사라졌던 입맛을 굴비 한 마리를 앞세워 잡아왔다.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 후 무시로 우리는 그때의 그 굴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지만 밥 한 끼를 먹자고 순천까지 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가 임신을 하니 상황이 달라졌다. 찜닭을 사러 마산까지 다녀왔으니 굴비 먹으러 순천에 가는 건 그리 큰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가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아내는, 그리고 배 속의 아이는 내게 굴비를 먹고 싶다 했다. 반가웠다. 아니 고마웠다 하는 편이 나앗으려나.

 

영광, 보성, 광양, 순천 등 남도 곳곳의 맛이 어우러진 한 상

물론 굴비를 생산하는 곳은 영광이다. 참조기를 잡아 염장한 후 바닷바람에 말리면 굴비가 된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고추장에 절이거나 겉보리가 가득 담긴 항아리 속에 넣어 숙성을 시키는 ‘이차 가공’의 방법은 음식점마다 다르기 때문에 반드시 굴비를 영광에서만 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게다가 순천은 전라남도의 중심지이다 보니 산과 바다, 들판에서 나는 다양한 식재료가 모두 모이게 되고 이것들을 간수하는 사람들의 손맛도 맵싸하다. 우리 앞에 놓인 음식들만 해도 그러 했다.


녹차는 이웃하고 있는 보성에서, 매실은 광양에서, 쌀은 순천에서 난 것을 사용했다. 김치와 젓갈이야 두말 하면 무엇 할까. 간장과 된장, 고추장도 남도에서 재배한 콩과 고추로 직접 담그는 곳이었으니 그 한 상으로 우리는 남도의 맛을 한 번에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조금은 짜고 비린 굴비를 입에 넣고 차가운 녹차에 말아놓은 뜨거운 밥을 연이어 퍼 넣은 후 천천히 씹는 내내 끝없이 어우러지는 기름진 고소함과 비릿한 감칠맛,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다 순식간에 말끔히 씻어버리는 쌉쌀함은 전국이 아니라 세계 어디를 가도 경험할 수 없는 복잡하면서도 조화로운 맛이었다.

특히나, 먹을 때마다 그렇게 느끼지만, 감격적인 것은 굴비의 식감이었다. 거의 반건조 상태로 짭짤한 맛이 든 굴비는 지나치게 딱딱하지도 지나치게 물렁하지도 않은 상태로 구워진다. 그러다 보니 그 살을 씹으면 마치 입안에 달라붙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그것이 불쾌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기름진 찐득함이 치아에까지 감칠맛을 더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남도 밥상이 그러한 것처럼 ‘질펀한 감칠맛’은 매번 숟가락질을 할 때마다 녹차가 모두 씻어낸다. 잡내나 이물감 같은 것은 남질 않는다. 그러다 보니 그리고 그 맛은 아무리 반복한다 해도 질리지를 않는 신기한 힘을 갖고 있었다. 아내 역시 이런 내 생각에 공감했다. 얼른 전라도에서 살고 싶다는 말에는 “이제 애 아빠가 될 사람이 그렇게 조급해서 되겠냐”는 말로 저지를 했지만 말이다.

하긴, 우리가 통영에 내려 와 살기 시작한 지 아직 1년 6개월도 되지 않은 시점이긴 했다. 참조기가 굴비로 변해가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이제 막 참조기 콧구멍에 영광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들어간 참이었다. 우리 부부 역시 아직 서울에서부터 갖고 내려온 삶의 방식을 다 버리지 못한 채였다. 수분이 빠지고 살이 꾸득해지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굴비를 씹으며 다시 한번 되새겼다.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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