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Food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부족함을 채워 주는 바다의 밥상_ 통영 우도


물이 귀한 섬 우도. 30년 전 우도에는 50여 가구, 400여 명이 살았지만 우물은 몇 개에 불과했으니, 그야말로 물 구하기 전쟁이 날 정도였다. 갓 열 살을 넘은 여자아이들도 아침에 눈꼽 떼기도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우물물을 길으러 가는 것이었다.
“사람은 많제, 우물은 작제, 우짜겄노. 맨날 물 구하러 댕기는 기 일이라. 우리 섬 우물이 마르모 요 앞 섬 연화도까지 물동이 이고 물 길러 원정을 댕깃제. 요즘 아(아이)들이야 ‘할머니, 생수 사 묵으면 되잖아요’ 하겄지마는 우리 처니(처녀) 때나 시집살이할 때만 해도 그런 기 어딨노. 새벽부터 우물물 길어다 밥 지어다 묵었지. 물이 참 귀하고 귀한 섬이었다.”
지금은 인구가 줄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사는데도 물이 늘 모자란다. 세월의 영향으로 예전처럼 섬 주민들이 물동이를 이고 우물물을 긷는 풍경은 사라졌지만, 대신 펌프를 이용해 우물물을 언덕 위 물탱크에 모아두었다가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 아침이면 언덕에 올라 물탱크에 설치된 밸브를 돌려 집집마다 물을 흘려보낸다. 평소에는 매주 토요일 아침 두 시간, 물이 더 필요한 여름에는 사흘에 한 번, 명절에는 사흘간 물을 보내 준다.

톳밥으로 보릿고개를 현명하게 넘기다
지금도 제한 급수로 물을 아껴 쓰는 지경이니, 사람 마실 물도 부족했던 과거에 농사짓기란 수월치 않았다. 특히 보리가 익는 5월까지는 굶주리며 기나긴 봄날의 보릿고개를 연명해야 했다. 지금처럼 아이가 한둘이 아니라 대여섯은 기본에 시부모님까지 모시고 살던 시절, 지난 가을 광 안 가득 쌓아둔 고구마를 다 먹고 나면 먹을 게 없었다. 바다에 생선은 지천이었지만 생선을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으니 배가 부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섬 아낙네들이 개발해 낸 음식이 바로 ‘톳밥’이다. 톳밥은 보리를 조금만 넣어도 갯가에 지천인 톳으로 얼마든지 양을 부풀릴 수 있었다.
“그때는 쌀도 웁섰지. 보리 넣은 독은 하루가 다르게 바닥이 보이거든. 그라모 보리쌀을 조금 넣고 톳을 마이 넣어 갖고 톳밥을 해묵었지. 봄철이 되모 톳을 뜯을 끼라고 서로 나가니까 갯가가 하얘. 그때는 사람들이 하얀 옷을 마이 입었으니까. 김이 모락모락 나는 톳밥에 된장을 넣고 비벼 묵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때는 무신 맛으로 묵었나. 묵을 끼 웁슨깨나 우짜든지 밥 양만 늘리모 최고라. 그것도 못 묵어서 애간장이 다 녹았다. 한집 식구가 열은 기본이고 열다섯이 넘었는데…….”
정계선 할머니가 일러주시는 대로 톳밥을 재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납작보리(압맥)를 씻어 불린 뒤 납작보리와 물을 1:1 비율로 맞춘 다음, 그 위에 불린 톳을 올리고 밥을 짓는다. 밥이 다 된 후 밥솥을 들여다보니 톳이 납작보리 위에 켜켜이 쌓여 완전히 새까맣다.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고 씹어 보니 납작보리 특유의 씹는 맛은 좋지만 톳 자체는 별다른 맛이 없어 심심했다. 콩나물밥을 먹을 때처럼 양념장을 얹으니 제법 맛이 났다.
맛은 다소 담담할지라도 최근 톳에 칼슘이 우유의 15배, 철분이 550배, 96종의 미네랄이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바다의 불로초’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에선 톳을 활용하여 각종 음식과 건강 보조제를 개발하고 있다. 심지어 매년 9월 15일을 ‘톳의 날’로 지정하여 톳을 권하고 있다.


우도 바다를 담은 해물 밥상

일본에 톳의 날이 있다면 우도에는 사시사철 톳밥이 상에 오르는 해물 밥상이 있다. 김강춘(52), 강남연(49) 우도 이장 부부는 톳밥을 포함하여 우도 갯가에서 나는 귀한 것들로 해물 밥상을 차려 낸다. 우도 갯바위에는 해조류인 미역, 톳, 가시리, 석모에서부터 통영 앞바다에서는 보기 힘든 따개비며 거북손까지 따닥따닥 지천으로 붙어 있다. 부부는 썰물 때면 바다로 나가 청정해역 우도 바다가 품고 키운 갯것을 한아름 따온다. 그리고 반가운 손님이 찾아오면 언제든 삶고 데쳐 정성껏 상에 내놓는다.
“내가 원해서 뭍에서 섬으로 들어왔지만, 시집살이에 말벗도 없는 섬이 참 견디기 힘들었제. 그래서 낚시를 핑계로 갯바위에 가서 울기도 많이 안울었나. 그러면 마실 나왔던 할머니들이 참 많이도 달래 주셨다. 그리고 나선 ‘아가야, 이거는 이리 해 묵고 저거는 저리 해 묵으모 마싯다’고 일러 주셨지. 할머니들이 일러 주신 대로 우도 갯것으로 해물 밥상을 차려 낸다.”
섬의 삶이 때론 지치고 힘들 만도 한데 섬 어버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갯것을 요리해 지극정성으로 담아내는 부부의 얼굴은 말간 우도 바다를 닮았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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