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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문화로 녹아든 제주 해녀의 삶_ 통영 매물도


통영 사람들은 뭍과 가까운 해안을 갱문이라고 부르고, 가까운 바다나 먼 바다를 모두 바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매물도 사람들은 바다를 ‘바당’이라고 부른다. 바당은 바다를 이르는 제주도 사투리다. 멀고 먼 제주도에서 바다 건너 매물도로 원정 온 해녀들의 영향으로 매물도에서는 바당을 일상 용어로 사용한다. 매물도 앞바다 거친 파도와 숱한 물 밑 바위는 해산물을 풍성하게 품은 황금어장이다. 제주 해녀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매물도 앞바다에서 전복과 성게, 미역, 우뭇가사리 같은 돈 되는 해산물을 채취해 고향인 제주에서보다 두세 배가 넘는 돈벌이를 했다. 한 해, 두 해 매물도를 찾은 해녀들은 아예 정착하기도 했다.

그리운 고향 제주의 맛, 성게알 미역국
섬에 들어가는 길엔 항상 허기가 진다. 일상과 사람에 지쳐 힘들 때 섬을 찾기 때문이다. 섬으로 가면 잊고 있었던 자유며 여유를 되찾을 수 있다.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매물도를 찾는다. 섬에 도착해 매물도 최정상 장군봉에 올라 확 트인 풍경을 바라보면 텅 빈 곳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그렇게 마음의 허기를 채우고 나면, 다음은 배가 고프다. 허겁지겁 장군봉에서 내려와 민박집에 가 성게알 미역국을 먹는다. 미역국의 개운하고 시원한 맛, 여기에 성게알이 들어 있으니 몸에도 좋을 것이란 믿음까지 생긴다. 그런데 미역국을 먹다 보니 의문이 든다. 성게알 미역국은 통영식 미역국이 아니다. 서울에서 소고기 미역국을 끓여 먹듯이, 통영 사람들은 도다리며 낭태 같은 생선을 넣은 생선 미역국을 즐긴다. 그런데 매물도 미역국엔 성게알이 주인공이다.

왜 매물도에서 성게알 미역국을 먹게 됐을까? 제주 해녀들은 고향 제주도가,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성게알 미역국을 끓여 먹었다. 지금이야 귀하지만 처음 매물도 올 때만 해도 성게가 무척이나 많았다. 해녀선 작업할 때는 물론이고 선창가에만 나가도 성게가 엄청 붙어 있었다. 미역 역시 마찬가지. 봄부터 여름까지 매물도 바닷가부터 언덕배기까지 미역을 말리는 미역발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흔했다.

“제주도에선 성게알을 넣고 끓인 미역국을 별미로 여겨 손님께 대접하곤 했지요. 고향 제주, 어망 어머니 생각이 날 때면 성게알 미역국이 묵고 싶어. 처음 매물도 왔을 때만 혀도 성게알을 일본에 수출 안 했어요. 값도 싸고 흔하니깐 성게알 미역국 마이 묵었지요. 참기름 한 방울 똑 떠라모 얼매나 꼬시다고요. 참기름만 한 방울 떠라나? 묵다가 어망 생각, 고향 생각나서 눈물 많이 떨갔지요. 몸살이 올라꼬 어슬어슬하다가도 성게알 미역국 한 그릇 묵고 나모, 기운이 솟아났소. 성게알을 일본 수출하면서부텀 금값이 돼서 못 묵었소. 돈 벌려고 제주서 매물도꺼정 왔으니깐, 그 비싼 걸 묵을 수가 웁잖아요. 그래도 귀한 손님헌테는 성게알 미역국을 일품요리로 내놨소.”

끓일수록 부드러운 매물도 미역의 매력 
성게알 미역국을 끓이는 중심 재료로는 미역과 성게가 있다. 매물도 사람들은 이 두 재료에 대한 자랑이 대단하다. 특히 돌미역에 대한 자부심은 말할 것도 없다.

“매물도 돌미역하고 일반 미역하고는 끓여 보면 압니다. 일반 미역은 확 풀어져 버리죠. 매물도 돌미역은 끓이면 끓일수록 토실토실해지면서 부드러워집니다.”

매물도와 어유도, 가왕도 일대의 바다는 그야말로 ‘수중 밀림’으로 매물도 앞바다의 덕(수중암초지대)은 미역이 자라기에 좋은 보금자리다. 게다가 세찬 물살과 거친 파도는 매물도 미역을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덕분에 여느 자연산 미역보다 값을 1.5배 더 쳐준다. 미역은 어른이 양팔을 벌린 넓이만큼을 ‘나무’란 기본 단위로 부르는데, 30나무가 한 단이다. 최상품 미역 한 단의 가격은 8~10만 원 선. 제법 비싼데도, 마산이며 통영 상인들은 지금도 매물도 미역을 못 구해 아우성을 친다.

매물도 미역은 특히 아이를 낳은 산모의 몸조리나 환자의 영양식으로 인기 만점이다. 칼슘과 칼륨이 풍부해 피를 맑게 하고 뼈를 튼튼하게 해주는 효능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끓일수록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많은 양을 끓여 여러 번 데워 먹는 산모나 환자들에게 적합하다.

매물도 미역이라고 해서 같은 대접을 받은 게 아니다. 생산되는 시기별로 초각, 중각, 망각으로 나뉜다. 설을 쇤 후 음력 2~3월에 생산되는 초각은 부드럽기로는 최고다. 매물도 사람들은 귀한 손님이나 대접할 분께 미역을 드릴 때 자신의 초각 미역을 내놓고, 이웃의 미역을 소개할 때면 꼭 초각이냐고 물어보고 권한다. 4~5월에 생산되는 중각은 토실토실 살이 오르고 여물다. 생산량이나 품질이 일정해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미역이다. 6월 보름이 지난 망각은 두껍고 노란 빛이 돌아 채취를 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긴 장대에 쇠 작대기나 나무 막대기를 X자형으로 꽂아, 미역숲 속에 집어넣어 빙빙 돌려서 힘껏 잡아채 미역을 캐 올렸다. 그러면 울퉁불퉁 튀어나온 미역귀가 떨어지지 않은 채 건져 올릴 수 있어, 상품 가치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가까운 갯바위를 중심으로 미역을 안아 긴 낫이나 일반 낫으로 잘라낸다. 미역은 발에다 가지런히 널어 햇볕에 말리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이틀, 흐린 날에는 사흘 정도면 먹기 좋게 마른다. 장마가 들거나 흐린 날이 사흘 이상 이어지면 초각이나 중각이라도 미역이 노랗게 변한다. 비를 맞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매물도 사람들은 미역을 캘 때부터 말릴 때까지 어린애 어르듯 소중히 다룬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귀한 선물, 성게
매물도에서 생산하는 성게는 미역 못지않게 그 질이 높다. 매물도에서 생산되는 성게는 크게 두 종류, 말똥성게와 보라성게다. 제주 해녀들은 각각 ‘소미’, ‘밤생이’라고 부른다. 작은 말똥성게 소미는 정월이면 매물도 바다에 비치기 시작하고, 보라성게 밤생이는 음력 3월 그믐부터 6월 보름까지 알이 꽉 찬다. 반면 여름이 지나면 속이 텅텅 비어 먹을 게 없다. 성게알에는 단백질과 비타민, 철분이 많아 빈혈 환자나 병을 앓은 후 회복기의 환자에게 특히 좋다. 또한 인삼과 같이 사포닌 성분이 들어있어 결핵이나 가래를 제거하는 효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물도에서 생산한 성게는 통영 시내 성남수산에서 알만을 가공하여 자그마한 나무상자 속에 금덩어리처럼 귀하게 포장해 일본으로 수출한다. 일본에서 성게알은 참치, 연어와 함께 최고의 초밥 재료로 손꼽힌다고 하니 금덩어리처럼 포장한다는 말이 과하지 않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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