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Food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새콤달콤 농도 짙은 맛, 욕지도 감귤


간간히 보이던 감귤나무가 숲을 이룬 곳, 그곳이 바로 욕지도 도동마을이다. 도동마을 언덕에 서면,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노란 감귤이 익어 가는 풍경과 만날 수 있다. 그 풍경은 제주도에 못지않다. 매년 10월 말에서 11월이면 파란 바다 속에서 감귤이 노란 꽃처럼 피어난다. 과수원이나 농장뿐만이 아니다. 가정집 정원에서도 감귤이 익어 간다.

 

이렇게 감귤나무가 많은 욕지도이지만, 욕지도 감귤 이야기를 꺼내면 “처음 들어본다. 감귤하면 제주도 아닌가?”하고 묻는 이들이 더 많다. 욕지도에서 언제부터 감귤이 재배된 걸까? 1961년 동아일보, 경향신문에 욕지도 감귤 기사가 등장하니, 그 이전으로 보면 되겠다. 두 신문 모두 ‘제주도 제외하고는 유일한 귤 재배 지역’으로 욕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동아일보에는 ‘몇 년 후에는 제주도의 귤이 아닌, 욕지도의 귤이 서울 남대문 시장에 나타날 것’이라고 섬사람들이 자랑하고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신문을 통해 1960년대부터 욕지도의 감귤 재배가 본격화된 걸 알 수 있다.

 

우장춘 박사가 보장한 감귤 최적지 욕지도

욕지도에 감귤이 들어온 것은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 덕분이다. 1955~56년 욕지도 일대를 직접 방문한 우장춘 박사는 욕지가 감귤 재배의 적지임을 알아보고 묘목과 기술 도입에 앞장섰다. 당시 신문들은 우장춘 박사의 행보와 욕지도 감귤 재배 시도 소식을 빅뉴스로 전했을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감귤 재배에 대해 좀더 상세하게 물어보면, 욕지도 사람들은 ‘욕지도에 앞서 납도에서부터 귤이 재배 됐다’고 입을 모은다. 욕지도의 부속 섬으로 납작하게 엎드린 형상을 한 납도는 한겨울에도 영상의 따뜻한 기온을 유지하는데다, 동백, 후박나무 군락이 천연 방풍림을 형성한다. 덕분에 우장춘 박사는 일찌감치 납도를 ‘감귤 재배의 최적지’로 선택했다. 현지를 답사한 우장춘 박사는 “제주도보다 천연 조건이 더 좋다”라고 극찬했다. 섬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감귤의 묘목을 심어, 1966년 첫 결실을 보게 된다.

 

김임욱 욕지노인회장은 감귤 도입에 크게 영향을 끼친 우장춘 박사와 만난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장춘 박사를 처음 뵌 날이 면청사 앞에 벚꽃이 한창 피었을 때였제. ‘욕지도가 적지냐, 아니냐’ 우장춘 박사의 한마디에 감귤 재배 여부가 결정될 때라. 6·25 이후 피폐해진 당시 상황에서 육종학자인 우장춘 박사의 인기나 영향은 실로 대단했지. 공무원도 있었고, 농민들도 있었다. ‘가능성이 높다’는 우장춘 박사의 말씀에 감귤을 재배해 보겠다는 농민들이 기대와 용기를 갖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타. ‘욕지도에서 대학나무인 감귤나무가 재배된다니!’하고 감격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무공해 건강식품, 욕지도 감귤의 인기

욕지도 감귤 맛하고 제주도 감귤 맛이 완전히 다르다며 맛이 다른 이유를 물어보는 이들도 제법 있다. 박종옥 어르신은 “아예 품종이 다르다”라고 설명한다.

 

“제주도는 조생종早生種이 많은데, 욕지도에는 만생종晩生種이 퍼졌어. 욕지도에도 1967년에는 만생종을, 1968년에는 조생종을 보급했는데 1968년 혹한으로 초기 공급한 귤나무 대부분이 고사해. 그래서 1970~80년대 다시 심은 게 만생종이야.”

 

만생종인 욕지도 감귤은 껍질에 점이 있고, 단단하면서도 신맛이 많이 나는 편이다. 반면 조생종인 제주도 감귤은 귤껍질이 얇고 달다.

 

욕지도 감귤은 ‘감귤나무 한 그루에 쌀 두세 가마’라고 할 만큼, 자녀들을 대학으로 보내는 데 크게 보탬이 되는 대학 나무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70~80년대 제주도에서 감귤이 과잉 생산 되면서 가격이 폭락하고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홧김에 애써 키운 감귤나무를 베거나 태워버리는 경우도 빈번했다. 오죽했으면 자식 같은 감귤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렸을까.

 

이렇게 욕지도의 감귤 농사는 맥이 끊기는가 싶었지만, 2000년대 들어 욕지도 감귤은 새롭게 인기를 얻고 있다. 욕지도 감귤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욕지도 감귤의 새콤달콤한 맛과 ‘무공해 건강식품’이란 점이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제주 감귤은 싱거워. 욕지 감귤은 깊은 맛이야. 제주 감귤은 달기만 하거든. 욕지 귤은 산도와 당도가 높아서 새콤달콤 한 맛이 일품이야. 아, 감귤 이야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여.”

 

박종옥 어르신의 욕지도 감귤 자랑이 대단하다.

 

“워낙에 돈이 안 되다 보니, 농약을 안 쳤어. 그래서 무공해야. 지금도 욕지도 감귤은 농약을 안 친다. 그러니, 대도시 사람들이 무공해, 건강식품 하면서 욕지 감귤을 찾는 거지.”

 

아는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계속해서 찾는 욕지 감귤. 다시 감귤나무 한 그루에 쌀 두세 가마 시대가 열리며 욕지도가 호황을 누리길 바란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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