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Food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담백쌉싸름한 봄_통영의 봄철 별미 도다리쑥국

봄을 더 설레게 하는 쑥과 도다리의 만남
겨울이 지나면서 남해의 땅과 바다는 서로 닮아가기 시작한다. 땅에서 새순이 돋는 것과 같은 시기에 바다는 검푸른 색이 조금씩 옅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고운 꽃에 앞서 울퉁불퉁한 쑥이 먼저 고개를 내밀면 그동안 ‘파랗다’고 이야기하던 바다가 마침내 짙은 녹색으로 조용히 빛난다. 매일 지나치는 길에서 나는 한동안 감탄을 하며 서 있곤 했다.

그렇게 서울 촌놈이 도시에서는 알 수 없던 자연의 이치에 감탄하는 사이, 이곳 통영 사람들은 일 년 내내 기다리던 별미를 다시 만난 기쁨에 매일 같이 표정이 밝다. 봄볕을 다시 본 반가움과는 또 다른 성격의 얼굴이다. 견우와 직녀보다 훨씬 극적인, 맛있는 도다리와 쑥의 만남 때문이다.

사실 도다리는 그리 귀한 어종이 아니었다. 외려 예전에는 광어로 속여 파는 일도 있을 정도였기에 ‘좌광우도(눈이 왼쪽에 있으면 광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라는 말까지 동원해 도다리를 광어로 잘못 알고 구입하는 일을 막고자 했다. 그런데 광어가 본격 양식에 성공하면서부터, 그리고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자연산이 대우받는 분위기 덕분에 도다리는 매년 봄이면 외려 광어 앞에 놓이는 귀한 몸이 되었다. 다만 그 시기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 하지만 그렇기에 도다리쑥국은 더 맛있는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은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린 보람이 세상에 둘도 없는 조미료 역할을 하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시기에 먼 데서 누군가 찾아와 그 맛을 함께 나눈다면 더 없이 좋다. 마침 우리에게도 그런 손님이 찾아왔다. 옛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아내의 후배가 통영으로 놀러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다리쑥국을 내놓을 수 있는 계절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신선한 제철 재료의 깊고 담백한 맛
봄이니까, 그리고 통영이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시장에서는 도다리가 좌판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둘러보던 중 가장 큰 것을 골라서 손질을 부탁했더니 아주머니는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도다리 몇 마리도 함께 비닐 봉투에 넣어주셨다. 계절 때문이겠지만, 겨울보다 인심이 넉넉해진 느낌이었다. “그냥 무랑 쑥 넣고 끓이면 되요?”하고 묻는 내게 “그럼 뭐 딴 거 옇게?”라 되묻는 담백함이야 여전했지만.


하지만 도다리쑥국은 정말 그렇게 끓인다. 다른 맑은탕 대부분이 그러하듯 도다리쑥국 역시 알맞게 썰어놓은 무를 찬물에 넣고 끓이다 도다리와 쑥을 넣은 후 소금으로 간을 해 한소끔 더 끓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이상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괜히 다른 것을 넣으면 맛을 해칠 뿐이다. 그저 도다리와 쑥이 갖고 있는 원래의 맛에 무의 감칠맛과 시원함을 더하는 것으로 이곳 통영 사람들이 사랑해마지 않는 담백쌉싸름한 맛이 완성된다. 그러니 아침잠 많은 아내가 아무 부담(!)없이 손수 국을 끓이겠다 자신했던 것이고.

속일 수 없는 정직한 한 그릇으로 마음을 나누다
근처 숙소에서 통영에서의 밤을 보낸 아내의 후배, 그리고 그의 친구가 아침 아홉 시 무렵에 집으로 들어섰다. 서울에서 급하게 내려오느라 미처 뭔가를 준비하지 못 했다면서도 일부러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손을 채워온 모습에 괜히 웃음이 났다. 그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더 깊어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도다리쑥국을 처음 먹어본다는 그들은 첫 술을 든 이후부터 밥상을 정리할 때까지 계속해서 감탄을 이어갔다. 어떤 것과 비교를 해도 이렇게 담백할 수 없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사실 도다리쑥국에 대해 그 이상으로 표현할 방법은 없다. 그저 달기만 할뿐 비리지 않은 도다리와 과하지 않게 향긋한 쑥, 그리고 언제나 가장 뒤에서 모든 맛을 넉넉히 아우르는 무만 들어갔으니 그만큼 정직할 수밖에 없는 게 바로 도다리쑥국이다.

아내의 후배와 그 친구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동안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어제 미처 돌아보지 못한 통영의 이곳저곳을 마저 둘러보겠다며 일어섰다. 처음 집에 들어섰을 때보다 훨씬 편안하고 밝은 얼굴들이었다. 아마 정직한 한 그릇을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특별한 기술이나 화려한 장식, 강렬한 양념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를 서로에게 보일 수 있는 한 끼를 함께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이제 막 살이 오르고 순이 돋는 도다리와 쑥의 계절에 말이다.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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