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봄날 홈페이지를 찬찬히 둘러보며 우리가 그간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때론 구불구불 험난한 길을 걸어왔고, 어떤 때는 길을 잃어 다시 물어물어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했다. 통영에서 사는 게 좋아서 사계절 꽃향기에 취해 힘들어도 즐거이 갈 수 있었고, 때론 또 어떤 길이 펼쳐질까 기대감도 컸다. 초행길이 서툴러 방황할 때 우리를 붙들고, 우리를 일으켜 세워준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감사한 일들도 많았고, 지금까지 꿋꿋이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만 5년을 달려왔다.



 
좌충우돌, 그러나 감사히 걸어온 5년의 시간들
종종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이 아름다운 통영에서 출판사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훨씬 더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라고. 천천히, 쉬어가며 살아보겠노라고 지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이 먼 곳으로 내려왔는데 정작 우리의 5년은 때론 전력질주도 마다 않는 바쁜 걸음이었다.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겁도 없이 달려들었던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만 그 시간들을 돌아보면 보람이 컸고,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출판사에 이어 작은 책방까지 열면서 우리의 삶은 책을 통한 본격적인 소통의 즐거움을 알아갔고, 어느새 27권의 책을 펴냈다. 그리고 지난 해 겨울,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펴낸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우리에게 놀라운 기적을 선물했다. 
남해의봄날에 대한 세상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다. 성공한 지역 출판사의 새로운 모델, 혹은 유유자적 낭만적인 일과 삶을 살아가는 지역 출판사.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가슴 한쪽이 뻐근하고, 답답했다. 창업 초기 큰 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고, 몇몇 책들이 사회의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면서 회사가 유명해진 덕분이었지만 온갖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걸어온 5년 동안 우리는 빚도 많이 지고, 아름다운 통영의 사계절을 제대로 만끽할 여유도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하면서 하루하루 살얼음을 걷는 날도 많았다. 물론 어디에서 일을 해도 창업 초기에 겪는 어려움은 피할 수 없지만 출판 초보자가 인프라도 전혀 없는 곳에서 하나둘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많은 것을 희생해야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급기야 지난 해 가을 최순실 사태로 인해 출판계 전체가 판매 부진에 이은 침체기로 접어들자 기대작을 연달아 출간했던 회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빚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그보다 이 길을 계속 가는 게 옳은 것인지 그 동력이 상실되어 갈 길을 모르고 방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마디로 '번아웃'이었다. 
 
 
20년 묵묵히 구멍가게를 기록한 책이 만든 기적
처음 통영에서 출판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꿈은 세상의 작은 사람들을 응원하고,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영에서 출판을 시작한 우리가 잘 버티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우리가 스스로 대안적인 실험을 하면서 잘 뿌리내리지 못하면 우리가 말하려는 모든 이야기들에 신뢰를 갖기 어려울 것이니, 우리 스스로의 일과 삶을 다잡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나 어느 때부턴가 스멀스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가 가는 길이 맞는 걸까, 이렇게 가도 되는 걸까. 출판의 대단한 노하우도 없으면서 언제까지 새로운 실험만으로 버틸 수 있을까. 지역에서 다른 방식으로 출판을 하기 위해 거듭된 시행착오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남들 눈에는 멋진 회사로 보이지만 투자 대비 수익이 불안정한 회사의 미래는 암울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거의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우리는 새해를 맞았고, 올해 첫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펴내자마자 모든 마케팅을 중단하고 고생한 직원들에게 겨울휴가를 주었다. 완전히 번아웃 상태에서 회사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고, 일주일을 서울에서 두문불출 기도하면서 보냈다. 그리고 어쩌면 여기까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무모하게 용기만 앞섰던 자신을 질책하며 통영으로 돌아왔고, 심각하게 폐업까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맞은 월요일 아침, 우리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 펴낸 구멍가게 책이, SNS에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린 것 외에는 별다른 마케팅도 하지 않은 책이 갑자기 하루에 1천부씩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고, 정확한 상황을 알아야 했다. 이유를 알아보니 금요일 북섹션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탑으로 책이 소개된 이후 일어난 결과였다. 그간 신문에 책이 크게 소개된 일이 여러 번 있었지만 그로 인해 책의 주문이 이렇게까지 늘어난 일은 한 번도 없었기에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책은 재고가 바닥나 발을 동동 구르며 거듭 재쇄를 찍었고, 2주일만에 1만 부가 순식간에 판매되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나 판매가 뜸해질 무렵 SNS를 타고 붐업이 된 작가의 그림을 수소문한 영국 BBC 방송이 작가를 인터뷰하면서 다시 또 하루에 1천부가 넘게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기적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구멍가게 책은 유료광고 한번 없이, 입소문이 이어지면서 지금까지 3만부 가까이 독자들과 만났다. 전국의 이름 없는 구멍가게를 20년간 묵묵히 그려온 작가의 뚝심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그 구멍가게들 덕분에 갈 길 잃고 방황하던 통영의 작은 출판사도 다시금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작은 사람들을 응원하는 책들을 만들어 온 우리에게 계속 이 길을 가도 된다는 확신과 함께 자신감을 회복시켜 준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많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희망을 전해준 구멍가게 책은 내년에 일본과 프랑스, 대만에도 출간될 예정이며, 중국, 이태리, 독일 등 여러 나라에서 저작권 문의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만난 독자들의 진심어린 응원

 
구멍가게 책이 나오고 여러 달이 지난 초여름, 우리는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 참가를 감행했다. 통영에서 서울 코엑스까지 차 두 대로 책과 짐을 날라야 했고, 새로 입사한 직원들과 아르바이트생까지 다섯 명의 식구들이 서울에 상경하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창립 5주년이니까 한번쯤은 해볼만한 도전이라 여겼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남해의봄날 출판사와 봄날의책방 두 개의 부스에 초대를 받았고 닷새 동안 정말 많은 독자들과 만났다. 한적한 시골에서 하루 열 명의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허다했던 우리가 하루 수천, 수만 명이 방문한 도서전에서 정신없이 보낸 시간들은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들과 아르바이트로 참여한 대학생, 그리고 오랫동안 함께해 온 직원들에게도 잊을 수 없는 값진 경험으로 남았다. 무엇보다 독자들과의 만남이 가장 큰 열매였다.  
중소 출판사 초대관의 구석에 배치되어 찾기도 어려웠던 출판사 부스를 멀리서 발견하고는 “남해의봄날 저기 있다!”라고 소리치며 달려오던 독자들, 아이와 손을 꼭 잡고 부스에 찾아와 책을 한 권 사들고 돌아가던 어느 엄마에게 달려가 성심당 빵 한 개를 아이의 손에 쥐어주었던 일, 좁은 공간에서 저자들과 만나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독자들의 눈빛... 통영에서 올라온 시골 출판사와 책방을 반겨 맞아주던 그 따스한 마음들이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분들의 응원 덕분에 가져간 책을 거의 완판하고 통영으로 돌아오던 날, 우리 마음 속에는 현장에서 만난 독자들의 마음과 눈빛이 깊이 자리잡았다. 아마도 그 시간들이 언젠가 우리가 다시 길을 잃게 되면 우리를 일으켜 세워줄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독자들의 그 마음과 눈빛들을 다시 꺼내어 마주하면, 언제든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날 힘을 얻을 것 같다. 그 소중한 경험들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한 걸음, 두 걸음 수많은 구멍가게를 묵묵히 기록해 온 작가의 올곧은 길처럼, 20년 후에도 꿋꿋하게 잘 살아남을 수 있기를 그래서 우리가 꿈꾸었던 시골 출판사의 행복한 일과 삶을 온전히 회복하기를. 그렇게 다시 작은 희망을 품어본다. 대한민국의 모든 구멍가게와 작은 출판사, 작은 책방들도 더불어 파이팅!
글_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Click on me to change image
비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