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mnal Story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지역에서 출판하기 4


세 권의 책을 출간한 지 어느 새 7개월이 흘렀다. 직원 수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회사인데다 대부분 기획 중심의 도서를 내는 탓에 많은 책을 만들지 못한다는 한계점을 갖고 있어서 우리는 꽤 오랜 공백을 갖고 다시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지난 연말,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하면서 출판 첫 해에 과분할 만큼 큰 사랑을 받은 남해의봄날 차기작이 무슨 책일지 이후 쏟아지는 관심이 처음엔 부담스럽고 어깨가 무겁기만 했다.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우리의 존재를 그리 오랫동안 기억할 만큼 여유롭고 한가하지 않기에 어느새 통영의 작은 출판사 남해의봄날은 조용히 잊혀져 갔다. 아주 가까운 지인들만 한두 마디 던질 뿐이었다. 다음 책은 어떤 책인지, 언제 나오는지. 

 

작은 출판사 초보사장의 힘들었던 봄날
첫 해를 너무 뜨겁게 보낸 탓인지 올 봄 호되게 몸살을 앓았다. 늘 다양한 책을 만들어왔지만 기자와 기획자 출신이라 출판업을 본격적으로 해보지 않았기에 책 만드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다 새롭고 낯설었다. ‘공급율’이라는 단어도 처음엔 이해 불가 단어일 만큼 복잡한 출판 유통 구조에 혼란스러웠는데 한편으론 저자의 몫까지 감당하며 출판사 사장이자 마케터, 편집자의 역할을 동시에 감당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추운 겨울을 앞두고 오래된 주택 리모델링 공사를 남편과 함께 진행하며 집과 회사를 동시에 이사하면서 긴 겨울을 보내고 나니 몸에 비축된 에너지가 다 바닥이 나 버린 것이다. 그래서 꼬박 한 달을 끙끙대며 앓아누웠다. 급성장염까지 생기며 한동안 우울하게 힘든 봄날을 보내야 했다. 그러면서 통영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을 되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

 

 

출판은 뚝심으로 버텨야 한다
빠르게, 그러나 때론 천천히 흘러간 3년의 시간은 내 삶을 180도 바꾸어 놓았다. 그 이전의 삶과 지금의 내 삶은 도저히 비교 불가일 만큼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얻고 잃은 가치의 경중을 따지자면 그 무게는 통영에서 얻은 것이 훨씬 묵직하다. 그 무게중심은 오랜 꿈인 출판사를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초심을 아직은 붙들고 버티고 있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사실 지난 해 우리 회사는 재무제표로 보면 영락없이 낙제점이었다. 투자 기간이니까 어느 정도의 감수는 했지만, 비용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 발로 뛰어 다녔지만, 책은 날개돋힌 듯이 팔리지 않았다. 상도 받고, 좋은 책이라 언론의 주목을 받고, 내가 쓴 책은 심지어 예술 분야 베스트 탑을 두세 달 기록하며 적지 않은 판매고를 올렸음에도 손익계산서를 펼쳐보면 마이너스였다. 그때 어떤 출판 선배가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출판은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라고. 뚝심으로 버텨야 한다고.
월세도 저렴하고, 생활비도 상대적으로 적게 드는 지역에서 출판을 하는 내가 이럴진대 서울 한복판에서,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출판을 하는 이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렇게 실전을 겪고 보니 책을 많이 내는 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택과 집중. 어차피 자본으로 승부할 수 있는 회사가 아니니 가진 것은 기획력과 품질, 그리고 차별화였다. 그리고 돈에 좌우되어 좋은 책보다 팔리는 책만 고집하지 않도록 안정적인 수익원이 필요했다. 그래서 출판과 병행하여 지역의 작은 회사와 문화예술가들을 돕는 프로젝트들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신생 출판사의 험난한 고비를 넘는 중이다.    

 

 

통영 살이 만 3년, 본격 로컬북스를 출간하다
지난 달 출간된 두 권의 책 <서울을 떠나는 사람들>과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은 남해의봄날이 선보이는 본격 로컬북스의 출발점이다. 처음부터 지역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지역 출판사라면 당연히 지역 책만 내는 것으로 편견을 가질까봐 오히려 수도권 서울 홍대 앞 한복판의 이야기로 비전북스를 시작했고, 통영 살이 만 3년에 이르러서야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 두 신간은 서울을 떠난 우리 회사의 정체성과 맞물리면서 언론의 집중세례를 받으며 거의 모든 매체에 남해의봄날도, 신간들도 연일 소개되고 있다. 물론 이 책들 역시 날개돋힌 듯이 팔리지는 않고 있다.
이번에 나온 신간 역시 유명저자의 책도, 광고비를 쏟아부을 수 있는 책도 아니기에 그저 꾸준히 입소문을 타고, 언론에 노출되며 오랜 생명력을 가진 책으로 자리잡기만을 기대해야 한다. 그렇게 버티면서 또 좋은 책들을 한 권 두 권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책을 돈 버는 수단이 아니라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들을 하나둘 들춰내고 전하여 한 번쯤 우리의 삶을 다시금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사람들을 돕고 응원하는 것임을 잊지 않는 것. 크게 부유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하루하루 일과 삶의 균형점을 찾아가며 그렇게 지역의 삶에 스며드는 것. 그래서 우리가 낸 책들처럼 단단하지만 길게 생명력 있는 회사로 자리하는 것. 그것이 우리 회사가 걸어가야 할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지역 출판의 한계를 또 한 단계 넘어서다
다행히 우리의 발걸음을 돕는 이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수도권에 집중된 유통 때문에 서울과 통영으로 너무 자주 오가면서 방전된 체력으로 힘들었던 봄날이 지나자 서울에 우리의 마케팅을 돕는 친구들이 생긴 것이다. 그 이름은 소요 프로젝트. 서울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들 중에 똘똘하고 멋진 세 여성이 독립하여 작은 회사를 차린 것이다. 그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면서 앞으로 남해의봄날이 펴낼 책들을 홍보하고 마케팅하는 일들을 맡겼고, 덕분에 지역 출판사로서의 한계점을 또 한 단계 극복하게 되었다. 경험이 많지 않음에도 그들은 아주 잘 해내고 있다. 아마도 그 친구들이 더 경험이 쌓이고, 남해의봄날과 작은 성공담을 공유하게 되면 우리처럼 마케팅 협업이 필요한 다른 작은 출판사들과도 함께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좋은 책을 내고 있지만 그 책을 잘 팔아줄 마케팅 인력이 부족한 작은 출판사들에게 우리의 협업이 또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면, 그래서 출판계가 좀더 활기차게 변화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우수출판기획안 공모 대상을 수상한 통영의 작은 출판사
이제 겨우 만 2년을 지났지만 남해의봄날은 초심을 붙들며 오늘도 열심히 버티는 훈련을 한다. 그러한 우리의 결심을 알았는지 지난 주 남해의봄날에는 놀라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주최로 우수출판기획안 공모에 대상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 처음 그 소식을 듣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좋은 책이라 생각했지만 제작비도 많이 들고, 많은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책이라 2년을 계속 붙들면서 다듬기만 했던 <가업을 잇는 청년들>이 대상에 뽑힌 것이다. 부담도 컸지만 드디어 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감사했고, 오래 기다려준 청년들과 그 부모들에게 가장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 역시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와 응원의 뜻일 것이다. 그래, 이제 또 한 고비 넘겼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으니 또 일어서서 가보자. 우리를 돕는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더 오래 계속될 것 같은 즐거운 예감. 봄날은 늘,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다.

 

지역에서 출판하기 다섯 번째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글/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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