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Travel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통영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품은 길


2013년 Local Travel에서는 통영길문화연대가 통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글과 생생한 사진으로 전합니다. 통영성을 따라 걷는 길은 세병관, 동피랑과 서피랑 등을 품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통영의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길입니다. 앞으로 총 4회로 나눠 통영성길을 소개합니다.

 

내 주위에 이야기가 있느냐 없느냐가 내 삶이 럭셔리한지 아닌지를 판가름한다고 이어령 전 장관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따르면 나의 삶은 참으로 럭셔리하다. 단지 내가 통영에 살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나는 9년 전에 통영으로 이사했다. 인천 토박이로 자라 서울로 시집가 살던 내게 통영은 유토피아였다. 호수 같은 바다가 있고, 굽이굽이 돌아 설 때마다 마음으로 성큼 들어오는 통영의 풍경은 마음의 빗장을 하나씩 열게 만들고 종내는 무장해제 시키는 힘을 가졌다. 풍광이 아름답고 날씨 또한 온화한 이곳이 나는 참 좋다. 좋아하면 알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통영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로 내가 사는 곳에 대한 감탄이 늘어난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했던가. 사랑하는 이를 보듬듯 통영은 쉬엄쉬엄 걸어서 만나야 제 맛이다. 통영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고 있는 길, 통영성길. 그 길을 걸어보자.

 

 

통영성의 시작과 끝, 세병관

통영을 지금의 통영 땅덩이만으로 통영이라 칭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부터다. 그 전까지 이 지역은 고성이나 거제에 속한 어촌 마을이었을 뿐이다. 통영은 조선시대부터 이 지역을 이르는 말이었으나 지명으로써가 아니라 삼도수군통제영을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통영성은 그 삼도수군통제영을 방비하기 위해 세운 성이다. 지금은 도시화로 훼손되어 몇 군데를 제외하면 성벽의 흔적조차 없지만 그렇다고 사람들 기억에서까지 사라져서야 하겠는가. 그 길을 걷는 것은 통영이 통영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일이다.

통영성의 시작과 끝은 세병관이다. 붉은색의 굵은 민흘림기둥으로 이루어진 세병관은 못 하나 박지 않았어도 400년 넘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있다. 짐승들조차 들지 않는 신성한 곳. 이곳에서 느껴지는 땅의 기운이 세단다. 바닥에 누워 대청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세월에 바랜 천정의 그림들을 바라본다. 똑같은 그림이 하나도 없다. 복원할 수 없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도 방법이다. 오히려 그 바랜 기운이 더 정겹다. 얼마 전 건립당시의 축대가 발굴되어 원형 찾기가 한창이다. 일제강점기엔 기둥사이에 칸을 지어 학교로 사용하기도 했단다. 학교 문을 내는 과정에서 견치석으로 축대를 새로 쌓았다던데 원래대로 복원해 놓으면 세병관의 위엄이 한층 더 빛을 발한 것이다. 입구 한쪽에 서 있는 두룡포기사비에는 경상도 땅 끝 두룡포라는 이 어촌에 삼도수군통제영을 두고 통영이라 부르게 된 일화가 적혀 있다.
김일룡 통영향토사연구소장의 설명과 함께 길을 나서보자. 옛길을 따라 걸으면 운주당에 닿는다. 운주당은 통제사의 집무실로 쓰이던 곳으로 통제영 복원이 끝나면 함께 개방한단다. 운주당 대문만 바라보고 지나는데, 어라 문이 하나다. 조선시대 전통 관청의 문은 삼문(三門)인데, 어쩌면 저리 복원을 하였을꼬. 보통 궁궐이나 관청·사당 등은 삼문을 둔다. 동입서출(東入西出)이라 하여 동쪽으로 들어가 서쪽으로 나오는 것인데, 편하게 생각하면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 오른쪽 문으로 나오면 된다. 지키지 않는다고 경찰 출동하는 것은 아니나 우리끼리의 아름다운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추억으로 통하는 골목길과 우물

운주당 앞을 지나면 좁은 골목길이다. 옛날 길들은 참 좁다. 길가 고랑을 복개하고 길을 넓혔다는데도 좁다. 그래도 그 골목에서 아이들은 뛰어놀았을 것이다. 어릴 때부터 통영에서 자란 길동무들에게 이 길은 학교 가는 길이었고, 어릴 적 동무들과 어울려 나무에 오르고 전쟁놀이도 했던 추억이 어린 곳이다. 골목을 빠져 나오면 토성고개다. 옛날에 흙으로 쌓은 성이 있었다 해서 토성고개라 부른단다. “이 고개가 옛날에는 진짜 까꾸막이었는데….” 중년의 길동무들이 어릴 적 생각이 나나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잊고 지내던 추억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 옆으로 지금은 쌈지공원이 된 곳에 오래된 우물이 보인다. 통영성 안에는 세 개의 연못과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다는데, 그 중 하나인 북문새미다. 원래 이 우물 위쪽으로 또 하나의 우물이 있어서 웃새미라 했다는데, 통제영 복원 공사 차원에서 길을 내면서 그 길에 묻혔단다. 복원의 아이러니. 그나마 살아남은 이 아랫새미도 관리가 안 되어 물이 썩고 있다. 옛날 우물은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윗부분을 장식하는데, 그 아래 글이 적혀 있다. 신해칠월일 김덕보축건시동장허완수(辛亥七月日 金德甫築建時洞長許完秀). 옛날엔 음력 칠월칠석이면 용왕제를 지냈단다. 용왕은 원래 바다에 사는 신을 말하는 것이나 우물도 물이므로 물을 다스리는 신으로 통용된다. 여기서 말하는 용왕제는 마을의 우물을 청소하고 제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1911년 용왕제 때 김덕보라는 통영의 여성 독지가가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을 적은 것이다.

역사는 물이 있는 곳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물이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우물은 마을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으나 수도가 보급되면서 우물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통영 곳곳의 우물이 썩어가고 있다. 그 우물을 되살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물이 썩는 것은 고여 있기 때문이다. 고이지 않게 하면 물은 살아난다. 격자무늬 뚜껑을 해 덮어 공기가 통하게 하고, 생활용수로 이용할 수 있게 양수기 하나만 달아주면 된다. 하다못해 펌프라도 달아주면 마중물 넣어 펌프질하는 체험의 장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텐데, 너도 나도 아쉬움이 크다.

 

잘리고 막혀도 곳곳에 살아 있는 통영성벽

일제에 의한 통제영 파괴는 신작로를 낸다는 이유로 통영성 자체를 허물어 버린 것이 제일 크겠다. 북문은 통영성 안의 사람들이 고성이나 거제로 나가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문이 토성고개에 있었는데, 신작로를 내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우물에서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올라서서 북문이 있던 자리와 그 문 옆으로 이어진 통영성벽을 눈으로 따라 가본다. 얼마 못가 집으로 아파트로 막혀 버리는 통영성터. 통영성은 문화재로 지정받고도 보존 관리 대상이 아닌 모양이다.
태평동 성끝마을로 올라가는 길. 골목을 이루며 나란히 서 있는 집 담벼락 아래 커다랗고 오래 된 돌들이 언뜻 언뜻 보인다. 일제에 의해 통영성의 존재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잊혀진 통영성은, 집의 축대로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통영성벽의 웅장함은 시멘트 속에 가려져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통영길문화연대 cafe.daum.net/tytrekking
역사문화예술도시 통영을 걸어서 만나려는 비영리 시민단체. 통영은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곳곳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문화 예술을 이끌고 있는 예향이다. 다도해를 품은 통영에는 526개의 섬이 있으며, 푸른 바다를 끼고 산새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다채로운 길들이 있다. 통영길문화연대는 2011년 9월부터 소규모 걷기 행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통영 곳곳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걷고자 한다.
매월 첫째 주 금요일은 ‘통영성 걷기’, 둘째 주 금요일은 ‘섬길 걷기’, 셋째 주 금요일은 ‘쉬엄쉬엄 통영을 걷다’, 넷째 주 금요일엔 ‘산양읍을 걷다’, 격주 토요일에는 ‘토요 걷기’를 실시하고 있다. 걷기 행사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글_통영길문화연대 송언수 사무국장(ajises@daum.net), 사진_통영人뉴스 김상현 기자(tyi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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