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Travel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통영의 사라지는 길, 돌아오는 길


2013년 Local Travel에서는 통영길문화연대가 통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글과 생생한 사진으로 전합니다. 통영성을 따라 걷는 길은 세병관, 동피랑과 서피랑 등을 품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통영의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길로 총 4회 걸쳐 소개합니다.

 

통영성의 서문은 성 안의 간창골과 성 밖 명정골을 잇는 문이었다. 지금은 서피랑에 산복도로를 조성하면서 성문터 밖으로 길이 지나가는 바람에 옛길은 끊어졌다. 끊어지고 없어진 것이 어디 길 뿐일까.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옛것은 사라져간다. 그것이 모두 사라져버리기 전에 아직 남아있는 옛 통영을 찾아 길을 나선다. 이번 여정은 통영이 배출한 예술인, 그리고 통영을 사랑한 이들이 머물렀던 서문고개 구간이다.

 

 

박경리와 백석의 기억이 남은 동네

간창골이나 명정골 모두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다. 서문고개를 걸으면 <김약국의 딸들> 본문 중 간창골과 서문고개와 관련된 부분을 박경리의 육필원고로 새긴 표지석을 볼 수 있다.

“가자, 죽으나 사나 가야제….” <김약국의 딸들>에서 머슴 한돌과의 염문으로 번듯하게 시집 갈 수 없었던 용란은 아편쟁이에 성불구인 연학에게 시집가 사흘이 멀다 하고 얻어맞았다. 간창골 친정으로 도망 온 용란을 도릿골 시댁으로 데려가기 위해 서문을 나서며 한실댁은 얼마나 가슴이 무너졌을까. 야심한 밤 서문 밖 댓골에 사는 과부 큰 딸 용숙의 집에서 남자의 기척에 놀란 한실댁은 무거운 마음을 안고 서문으로 들어섰을 것이다. 

명정골은 ‘산 넘어 동백나무 푸르른 감로 같은 물이 솟는 명정샘이 있는 마을’이다. 백석이 사랑한 여인 박경련의 집이 있던 곳. 연모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찾아갔다가 허탕을 치고 ‘녯장수 모신 낡은 사당 돌층계에 주저앉아서’ 그는 ‘울 듯 울 듯 한산도 바다의 뱃사공이 되어가며’ 안타까운 마음에 애꿎은 손 방아만 찧었다는 시를 남겼다. 그의 사랑은, 그의 동료이자 그녀를 사랑한 또 다른 남자 신현준의 배신으로 끝난다. 신현준과 박경련은 백석의 아픔을 기저에 깔고 시작하였으나 그들의 사랑도 축복받아야 할 것이다. 시인 백석의 서글픈 사랑은 충렬사 건너편 쌈지공원에 시비로 남아있다.

 

 

통영의 옛모습을 품은 서피랑

서포루로 가는 길엔 성벽의 흔적이 제법 남아 있다. 성벽은 도로 옆 축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 축대 위가 이전엔 한량들의 활터였다고 한다. 이곳은 1933년 일본인들에게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한 배수지(配水池)가 되었다. 지금도 지하 탱크에 물을 가득 받아 시내에 물을 공급하고 있는 문화동 배수시설은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50호로 지정되었다.

길을 조금 더 나아가 작년에 복원한 서포루에 오르면 통영항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가을이면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과 물비늘이 예쁘게 반짝거리는 푸른 바다에 눈이 시릴 정도다. 포루에 앉아 그 바다를 바라보는 것은 통영에 사는 이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다. 포루는 원래 병졸들이 망을 보던 곳이다.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살펴야 했기에 편히 앉을 수 없는 곳이 포루다. 그러나 지금은 정자처럼 마루를 놓고 시민들이 올라 앉아 풍광을 즐기며 쉴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포루에 편히 앉아 통영성의 흔적을 찾아 사방을 둘러보며 통영의 옛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지금은 그도 좋다.
서피랑은 차가 흔하지 않던 시절 일본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던 집터였다. 수산물 공출기지로서의 통영에서 선창과 제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다. 언덕이라 경치도 좋았던 서피랑에는 지금도 그 당시에 지은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산복도로를 만들기 위해 머지않아 헐릴 운명인 근대 건축물들은 지금 보아도 예쁘다. 선창골 아래로는 또 실핏줄 같은 골목길이 퍼져 있다. 성벽은 그 길 사이로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

 

 

바다와 함께한 통영성의 문들

서포루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이미 사라진 남암문, 만하정과 천척루 같은 정자들의 흔적만 남아있다. 통영엔 정자가 참 많았다. 예전 항남동을 매립하기 전에는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진 바다가 있었는데 선동(仙洞)이라 부를 정도로 아름다웠다고 하니, 정자에 앉아 풍류를 즐기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곳이 어디 있었을까. 이곳에는 최치원이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 붙였다는 해운대라는 지명이 아직 남아 있기도 하다.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으며 사랑했지만,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할 뿐이다.
만하정에서 청마우체국의 주차장 위쪽을 지나는 방향이 남문으로 향하는 길이다. 주차장 축대가 바로 성벽인데 비록 시멘트로 발라 놓았다 해도 웅장한 성벽의 위용을 가릴 수는 없다. 그 성벽은 남문까지 이어진다. 남대문과 흡사하게 생겼다던 남문은 다른 문과 달리 2층 누각이었고 청남루라는 현판이 붙었었다. 통제사가 부임할 때면 반드시 남문을 통해 세병관으로 올랐다. 매립 전에는 남문 밖이 바로 바다였다. 병선마당엔 늘 거북선과 판옥선이 정박해 있었고 수군의 점호나 훈련을 위해서도 통제사는 남문을 이용했다. 남문은 통영성 네 개의 문 가운데 으뜸이었으며, 통제영의 정문이었다. 조만간 복원할 남문은 통제영 복원의 정점이 될 것이다. 

 

통영길문화연대 cafe.daum.net/tytrekking
역사문화예술도시 통영을 걸어서 만나려는 비영리 시민단체. 통영은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곳곳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문화 예술을 이끌고 있는 예향이다. 다도해를 품은 통영에는 526개의 섬이 있으며, 푸른 바다를 끼고 산새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다채로운 길들이 있다. 통영길문화연대는 2011년 9월부터 소규모 걷기 행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통영 곳곳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걷고자 한다.
매월 첫째 주 금요일은 ‘통영성 걷기’, 둘째 주 금요일은 ‘섬길 걷기’, 셋째 주 금요일은 ‘쉬엄쉬엄 통영을 걷다’, 넷째 주 금요일엔 ‘산양읍을 걷다’, 격주 토요일에는 ‘토요 걷기’를 실시하고 있다. 걷기 행사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통영人뉴스 www.tyinnews.com
통영人(in)뉴스는 통영 사람과 통영 속으로 뛰어드는 삶을 지향하는 언론 매체다. 통영의 한산신문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통영의 구석구석 이야기와 삶을 취재해온 김상현 기자가 2011년 7월 4일에 독립하여 만들었다. 그 누구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지역의 이슈를 문자 메시지로 제공하고 있으며, 한 달간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한 내용을 정리한 월간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통영의 섬과 골목길, 길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에 관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글_통영길문화연대 송언수 사무국장(ajises@daum.net), 사진_통영人뉴스 김상현 기자(tyi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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