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봄날이 위치한 통영은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통영은 아주 넓은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려수도, 그 위에 흩뿌려진 570여 개의 섬. 2014년에 이어 2015년도 Local Travel을 통해 남해의봄날이 만난 다채로운 통영의 섬들을 소개합니다. |
미륵도는 통영 시내에서 통영대교나 충무교를 건너가거나, 해저터널을 통해 들어가면 된다. 다리 이쪽이나 저쪽이나 서로 다르지 않은 통영이다. 하지만 미륵도란 말이 어디 범상한 이름인가.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를 뜻한다. 석가모니 부처 다음으로 이 세상에 오는데, 미륵불이 출현하는 세상은 지상 낙원이다. 그래서 난세를 사는 사람들은 미륵불을 경배했다. 세상이 힘들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겠는가. 미륵은 그러므로 잘못된 세상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신앙이기도 하다. 전체가 관광특구로 지정된 미륵도의 중심에는 미륵산이 있고, 그 기슭에는 미륵불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미래사 입구 반대편에 미륵불로 가는 길이 있다. 편백나무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미륵불이 통영 앞바다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사는 역사는 깊지 않으나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많이 간직한 도량이다. 고승인 구산 스님이 1953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구산 스님에게 이 절을 만들 것을 권한 이가 구산 스님의 스승인 효봉 스님이다. 효봉은 세속에서 많은 공부를 한 터라 다방면으로 학식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제자 중에 오늘날까지 이름을 떨치는 이가 두 사람 있으니 시인 고은과 법정 스님이다. 고은은 세상에 허무함을 느껴 입산하였는데 일초라는 법명으로 미래사 원주소임을 맡았다. 법정은 후에 들어와 고은의 사제가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고승들이 효봉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미래사는 그런 고승들이 있었던 곳인 만큼 품격이 느껴지는 도량이다. 건물도 아담하고 정취가 있다.
불세출의 명당 야소마을을 지나 희망봉으로
미륵산은 461m의 큰 산이다. 뭍의 개념으로 보면 큰 산이 아니겠지만 바다에서 보는 섬들의 산은 오르기에 만만치 않은 험준함을 자랑한다. 미륵산에서 보는 해돋이가 천하의 절경이라고 하여 새해면 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미륵산의 고찰인 용화사로부터 올라오는 길도 있고, 미래사에서 오를 수도 있다. 길을 계속 오르다보면 케이블카 전망대가 나온다. 저 아래에서 줄을 서서 표를 사면 걸어서 오르면 몇 시간이 걸리는 산의 정상 바로 아래까지 케이블카로 단숨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로 오르든, 산길을 걸어서 오든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아름답다. 비진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 사량도가 줄지어 보인다. 마치 통제영에 모인 군선들이 통제사 앞에서 사열을 하는 듯하다. 저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어찌 전란으로만 기억되었겠는가. 통영은 예향으로도 유명하다. 문인, 화가들이 바다와 함께 예술혼을 키우고 펼친 곳이다. 전혁림 같은 화가, 윤이상 같은 음악가 그리고 김춘수,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같은 문인들은 늘 고향의 바다를 그리워하며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다시 미륵산에서 내려와 미륵치에서부터 야소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곳곳에 길담이 늘어서 있다. 옛날부터 주민들이 다니던 길이란 증거다. 시대가 바뀌며 이 숲길을 일상으로 드나드는 주민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미륵산은 여전히 통영 사람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다. 산을 거의 내려와 야소마을에 가까워지면 짧은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그리고 곧 야소골, 오늘날의 남평리 금평마을로 접어든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불세출의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산줄기를 내려오자 산자락에 펼쳐지는 마을은 소문답게 포근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2008년 작고한 박경리 작가의 작고 소박한 묘지 그리고 기념관이 있다. 원주에서 말년을 보내던 작가는 타계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미륵도에는 또 한 명의 시인 김춘수의 기념관 그리고 화가 전혁림의 미술관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야소마을뿐만 아니라 미륵도 전체가 천하명당인 듯하다. 고승들이 터를 잡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온 곳이 어찌 명당이 아니겠는가.
희망봉을 지나 달아전망대로 가는 길
미륵도의 백리길에는 달아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달아길은 두 개의 코스로 나눌 수 있는데 미래사에서 정상을 지나 야소마을까지가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산양읍사무소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희망봉 코스다. 희망봉을 오를 때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올라야 한다. 230m의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깊어 바다백리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로 꼽힌다. 게다가 작은 봉우리 네 개가 이어지는 능선을 타는 내내 거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오르다 지칠 때쯤이면 정상이 보인다. 말 그대로 오르다 지칠 때쯤이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정상에서 구슬땀을 닦으며 보는 바다 풍경은 방금까지의 고생을 무색하게 만든다. 특히 사방으로 탁 트인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면 마치 바다 한가운데 둥실 떠오른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봉우리가 네 개나 있다. 이 말은 결국 네 번 정도 지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희망봉은 마치 인생의 고갯길 같다. 물론 인생을 산다는 게 이 정도가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계곡과 고개들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던가. 그러므로 희망봉을 오르는 시간은 미래의 희망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면 쉬워진다. 달리 말하자면 힘든 길이 네 번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들만 하면 쉴 수 있는 전망대가 네 번 나오는 것이다. 사방으로 훤하게 바다와 섬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내 앞길도 이렇게 뚫려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다면 힘들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제4전망대에 오르면 이 길의 마지막 코스인 달아 전망대가 보인다. 험한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목적지가 보일 때 지 나온 고생들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를.
달아는 코끼리 상아를 뜻한다고도 하고 달을 보기 좋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미륵도의 불교적인 지명 분위기를 볼 때는 상아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달아전망대의 기능을 보면 달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 달아길을 시작했다면 이곳에 도착하면 저녁일 것이다. 조금 기다리면 저녁놀이 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마치는 곳으로는 제격이다. 미륵산은 일출이 절경이고 달아전망대는 일몰이 절경이니 잘 지은 시처럼 대구가 맞는다.
이곳의 해넘이는 유명하다. 섬과 바다가 마치 하나된 듯, 펼쳐진 수평 선 너머로 천천히 해가 지는 풍경은 매해 많은 사진가들을 불러들일 만큼 아름답다. 아니 어쩌면 눈물겹다는 말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로 표현하든 간에 이곳의 일몰은 바라보는 자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든다. 잔잔한 한려수도 바다로 매일 몸을 담그는 태양의 여정에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는 곳이다.
글_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
미륵도는 통영 시내에서 통영대교나 충무교를 건너가거나, 해저터널을 통해 들어가면 된다. 다리 이쪽이나 저쪽이나 서로 다르지 않은 통영이다. 하지만 미륵도란 말이 어디 범상한 이름인가.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를 뜻한다. 석가모니 부처 다음으로 이 세상에 오는데, 미륵불이 출현하는 세상은 지상 낙원이다. 그래서 난세를 사는 사람들은 미륵불을 경배했다. 세상이 힘들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겠는가. 미륵은 그러므로 잘못된 세상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신앙이기도 하다. 전체가 관광특구로 지정된 미륵도의 중심에는 미륵산이 있고, 그 기슭에는 미륵불이 바다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미래사 입구 반대편에 미륵불로 가는 길이 있다. 편백나무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미륵불이 통영 앞바다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래사는 역사는 깊지 않으나 범상치 않은 이야기를 많이 간직한 도량이다. 고승인 구산 스님이 1953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구산 스님에게 이 절을 만들 것을 권한 이가 구산 스님의 스승인 효봉 스님이다. 효봉은 세속에서 많은 공부를 한 터라 다방면으로 학식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제자 중에 오늘날까지 이름을 떨치는 이가 두 사람 있으니 시인 고은과 법정 스님이다. 고은은 세상에 허무함을 느껴 입산하였는데 일초라는 법명으로 미래사 원주소임을 맡았다. 법정은 후에 들어와 고은의 사제가 되었다. 그 외에도 많은 고승들이 효봉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미래사는 그런 고승들이 있었던 곳인 만큼 품격이 느껴지는 도량이다. 건물도 아담하고 정취가 있다.
불세출의 명당 야소마을을 지나 희망봉으로
미륵산은 461m의 큰 산이다. 뭍의 개념으로 보면 큰 산이 아니겠지만 바다에서 보는 섬들의 산은 오르기에 만만치 않은 험준함을 자랑한다. 미륵산에서 보는 해돋이가 천하의 절경이라고 하여 새해면 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한다. 미륵산의 고찰인 용화사로부터 올라오는 길도 있고, 미래사에서 오를 수도 있다. 길을 계속 오르다보면 케이블카 전망대가 나온다. 저 아래에서 줄을 서서 표를 사면 걸어서 오르면 몇 시간이 걸리는 산의 정상 바로 아래까지 케이블카로 단숨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케이블카로 오르든, 산길을 걸어서 오든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아름답다. 비진도, 연대도, 연화도, 욕지도, 사량도가 줄지어 보인다. 마치 통제영에 모인 군선들이 통제사 앞에서 사열을 하는 듯하다. 저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가 어찌 전란으로만 기억되었겠는가. 통영은 예향으로도 유명하다. 문인, 화가들이 바다와 함께 예술혼을 키우고 펼친 곳이다. 전혁림 같은 화가, 윤이상 같은 음악가 그리고 김춘수,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같은 문인들은 늘 고향의 바다를 그리워하며 이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다시 미륵산에서 내려와 미륵치에서부터 야소마을로 내려가는 길목 곳곳에 길담이 늘어서 있다. 옛날부터 주민들이 다니던 길이란 증거다. 시대가 바뀌며 이 숲길을 일상으로 드나드는 주민들은 거의 없어졌지만, 미륵산은 여전히 통영 사람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다. 산을 거의 내려와 야소마을에 가까워지면 짧은 대나무 숲이 이어진다. 그리고 곧 야소골, 오늘날의 남평리 금평마을로 접어든다. 이 마을은 풍수지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불세출의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산줄기를 내려오자 산자락에 펼쳐지는 마을은 소문답게 포근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었다. 마을에서 멀지 않은 곳에 2008년 작고한 박경리 작가의 작고 소박한 묘지 그리고 기념관이 있다. 원주에서 말년을 보내던 작가는 타계 후 고향으로 돌아왔다. 미륵도에는 또 한 명의 시인 김춘수의 기념관 그리고 화가 전혁림의 미술관도 있다. 그러고 보면 야소마을뿐만 아니라 미륵도 전체가 천하명당인 듯하다. 고승들이 터를 잡고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온 곳이 어찌 명당이 아니겠는가.
희망봉을 지나 달아전망대로 가는 길
미륵도의 백리길에는 달아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달아길은 두 개의 코스로 나눌 수 있는데 미래사에서 정상을 지나 야소마을까지가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산양읍사무소 맞은편에서 시작되는 희망봉 코스다. 희망봉을 오를 때에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올라야 한다. 230m의 낮은 산이지만, 산세가 깊어 바다백리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코스로 꼽힌다. 게다가 작은 봉우리 네 개가 이어지는 능선을 타는 내내 거친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된다.
오르다 지칠 때쯤이면 정상이 보인다. 말 그대로 오르다 지칠 때쯤이다. 숨이 턱까지 차 올랐을 때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정상에서 구슬땀을 닦으며 보는 바다 풍경은 방금까지의 고생을 무색하게 만든다. 특히 사방으로 탁 트인 마지막 봉우리에 오르면 마치 바다 한가운데 둥실 떠오른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이런 봉우리가 네 개나 있다. 이 말은 결국 네 번 정도 지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희망봉은 마치 인생의 고갯길 같다. 물론 인생을 산다는 게 이 정도가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많은 계곡과 고개들을 넘어서 여기까지 왔던가. 그러므로 희망봉을 오르는 시간은 미래의 희망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시간으로 생각하면 쉬워진다. 달리 말하자면 힘든 길이 네 번 나오는 것이 아니라 힘들만 하면 쉴 수 있는 전망대가 네 번 나오는 것이다. 사방으로 훤하게 바다와 섬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내 앞길도 이렇게 뚫려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간다면 힘들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제4전망대에 오르면 이 길의 마지막 코스인 달아 전망대가 보인다. 험한 길을 걸어본 사람은 안다. 목적지가 보일 때 지 나온 고생들이 얼마나 가벼워지는지를.
달아는 코끼리 상아를 뜻한다고도 하고 달을 보기 좋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미륵도의 불교적인 지명 분위기를 볼 때는 상아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달아전망대의 기능을 보면 달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아침에 달아길을 시작했다면 이곳에 도착하면 저녁일 것이다. 조금 기다리면 저녁놀이 지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마치는 곳으로는 제격이다. 미륵산은 일출이 절경이고 달아전망대는 일몰이 절경이니 잘 지은 시처럼 대구가 맞는다.
이곳의 해넘이는 유명하다. 섬과 바다가 마치 하나된 듯, 펼쳐진 수평 선 너머로 천천히 해가 지는 풍경은 매해 많은 사진가들을 불러들일 만큼 아름답다. 아니 어쩌면 눈물겹다는 말이 더 어울릴 지도 모르겠다. 어떤 말로 표현하든 간에 이곳의 일몰은 바라보는 자의 마음을 겸허하게 만든다. 잔잔한 한려수도 바다로 매일 몸을 담그는 태양의 여정에 인생을 돌이켜 보게 되는 곳이다.
글_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