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용·이상배 지음/남해의 봄날 펴냄
산복빨래방 유튜브. 산복빨래방 유튜브 화면 캡처
이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지역신문컨퍼런스 때였다. 매일신문과 같은 지역지들이 함께 모여 그해 보도해왔던 기획기사 한 작품을 발표한 뒤 수상작을 가리는 자리인데, 기자가 참가했던 발표 세션에 이 팀이 함께 묶여있었다. 이들은 부산일보 기자들.
사실 컨퍼런스 접수 후 사전 발표 안내문을 받았을 때 내심 긴장했다. 어떤 원망도 섞여있었다. 아…하필 같은 발표 세션이라니. 우리의 기획보도에 자신 없었던 게 아니지만 부산일보가 발표할 콘텐츠의 명성을 이미 자자하게 들은 터. 사실 기자 역시 이 콘텐츠의 팬이기도 했다.
산복 빨래방. 산이 많은 지형의 특성상 부산에는 산허리에 만들어진 도로가 많다. 이를 '산복도로'라 부르는데, 다수에게 익히 알려진 감천문화마을과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 산복도로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마을이 만들어졌고,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자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돼 줬다. 지형과 역사를 통해 탄생한 산복도로야말로 진짜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풍경이다.
바로 이곳에 부산일보 기자들은 집중했다. 산복도로라는 공간을 새롭게 보자는 것. 이들에 따르면 산복도로 마을은 그간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지이기도 했다. 이미 낙후된 이곳에 새로운 시설을 짓고 낙후된 환경을 바꿔 관광지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바라본 산복도로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산증인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고 숨은 보석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어느 한 산복도로 마을 중턱에 빨래방을 차렸다.
산복 빨래방 운영 방식도 특이하다.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는다. 기자들이 주민의 빨래를 도와드리고 빨래가 마르는 동안 어르신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기자들은 어르신과 함께 에어로빅을 하고 바다로 소풍을 떠나고 영화관 나들이도 한다. 주민과 함께 웃고 울며, 주민 삶 속으로 서서히 스며든 기자들은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부산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간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렇게 진심 가득한 따뜻한 취재 프로젝트라니. 진정성은 컨퍼런스 발표회 때 기자들이 입은 옷에서부터 느껴졌다. 말끔한 정장보단 빨래방 운영 때 입은 작업복, 앞치마를 두르고 발표에 나섰던 김준용 팀장. 그들의 취재가 그랬듯,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듯 담담하고 또 재치있게 취재기를 풀어가는 모습에 기자뿐만 아니라 발표회장에 있던 모두가 금세 빠져들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빨래방 프로젝트가 의미를 갖는 것은 지역 언론의 역할을 잘 제시해줬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제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정보와 미디어의 범람 속에서, 그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이 기자들은 고민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건, 사고 이슈가 아니라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스며들기를 택했다.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재미있게 포장하는 것. 지역의 가치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책은 산복 빨래방 취재기를 담았다. 빨래방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직접 셀프 인테리어에까지 나서며 빨래방을 만든 과정, 주민과 소통하며 삶에 녹아들어가는 과정, 나아가 지역지 기자의 역할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그들의 발표가 그랬듯 다시 곱씹어보며 넘겼던 책은 2시간 만에 끝 페이지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시간 순삭'이다.
대구경북의 대표 지역지 종사자인 기자 역시 어떻게 하면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할지, 대구경북의 주민과 잘 소통할지 고민한다. 아직 쌓인 많은 내공은 없지만 이런 고민에서부터 앞으로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산복빨래방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기자로 많은걸 배웠다. 정말 멋진 이야기다. 256쪽,1만6천원.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기사원문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3062907482765841
김준용·이상배 지음/남해의 봄날 펴냄
산복빨래방 유튜브. 산복빨래방 유튜브 화면 캡처
이들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지역신문컨퍼런스 때였다. 매일신문과 같은 지역지들이 함께 모여 그해 보도해왔던 기획기사 한 작품을 발표한 뒤 수상작을 가리는 자리인데, 기자가 참가했던 발표 세션에 이 팀이 함께 묶여있었다. 이들은 부산일보 기자들.
사실 컨퍼런스 접수 후 사전 발표 안내문을 받았을 때 내심 긴장했다. 어떤 원망도 섞여있었다. 아…하필 같은 발표 세션이라니. 우리의 기획보도에 자신 없었던 게 아니지만 부산일보가 발표할 콘텐츠의 명성을 이미 자자하게 들은 터. 사실 기자 역시 이 콘텐츠의 팬이기도 했다.
산복 빨래방. 산이 많은 지형의 특성상 부산에는 산허리에 만들어진 도로가 많다. 이를 '산복도로'라 부르는데, 다수에게 익히 알려진 감천문화마을과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 산복도로를 대표하는 마을이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마을이 만들어졌고,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자의 소중한 보금자리가 돼 줬다. 지형과 역사를 통해 탄생한 산복도로야말로 진짜 부산을 상징하는 공간이자 풍경이다.
바로 이곳에 부산일보 기자들은 집중했다. 산복도로라는 공간을 새롭게 보자는 것. 이들에 따르면 산복도로 마을은 그간 대표적인 도시재생사업지이기도 했다. 이미 낙후된 이곳에 새로운 시설을 짓고 낙후된 환경을 바꿔 관광지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들이 바라본 산복도로는 부산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산증인들이 저마다의 서사를 가지고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고 숨은 보석 같은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어느 한 산복도로 마을 중턱에 빨래방을 차렸다.
산복 빨래방 운영 방식도 특이하다. 세탁비 대신 '이야기'를 받는다. 기자들이 주민의 빨래를 도와드리고 빨래가 마르는 동안 어르신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쓰는 것이다. 어디 이뿐이랴. 기자들은 어르신과 함께 에어로빅을 하고 바다로 소풍을 떠나고 영화관 나들이도 한다. 주민과 함께 웃고 울며, 주민 삶 속으로 서서히 스며든 기자들은 기사와 유튜브 영상을 통해 부산의 역사와 더불어 살아간 사람들 개개인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이렇게 진심 가득한 따뜻한 취재 프로젝트라니. 진정성은 컨퍼런스 발표회 때 기자들이 입은 옷에서부터 느껴졌다. 말끔한 정장보단 빨래방 운영 때 입은 작업복, 앞치마를 두르고 발표에 나섰던 김준용 팀장. 그들의 취재가 그랬듯,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듯 담담하고 또 재치있게 취재기를 풀어가는 모습에 기자뿐만 아니라 발표회장에 있던 모두가 금세 빠져들었다.
주민들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빨래방 프로젝트가 의미를 갖는 것은 지역 언론의 역할을 잘 제시해줬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이제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정보와 미디어의 범람 속에서, 그것도 사람들의 관심이 덜한 지역의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이 기자들은 고민했다. 그래서 이들은 사건, 사고 이슈가 아니라 공간을 매개로 사람들의 삶에 가까이 스며들기를 택했다.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재미있게 포장하는 것. 지역의 가치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 지역 언론의 역할이다.
책은 산복 빨래방 취재기를 담았다. 빨래방이 탄생하게 된 과정과 직접 셀프 인테리어에까지 나서며 빨래방을 만든 과정, 주민과 소통하며 삶에 녹아들어가는 과정, 나아가 지역지 기자의 역할까지. 이 모든 이야기는 따뜻하다 못해 뜨겁다. 그들의 발표가 그랬듯 다시 곱씹어보며 넘겼던 책은 2시간 만에 끝 페이지에 도달했다. 그야말로 '시간 순삭'이다.
대구경북의 대표 지역지 종사자인 기자 역시 어떻게 하면 지역의 가치 있는 이야기를 발굴할지, 대구경북의 주민과 잘 소통할지 고민한다. 아직 쌓인 많은 내공은 없지만 이런 고민에서부터 앞으로 더 좋은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 산복빨래방 프로젝트를 통해 같은 기자로 많은걸 배웠다. 정말 멋진 이야기다. 256쪽,1만6천원.
배주현 기자 pearzoo@imaeil.com
기사원문 https://news.imaeil.com/page/view/20230629074827658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