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시간이 지날수록…’ 펴낸 김금숙 작가
이산가족 사연 ‘기다림’ 올 하비상 최종후보
위안부 아픔 다룬 ‘풀’ 2020년 하비상 수상
“향이 떠나지 않는 茶같은 작품 그리고 싶어”
“6·25전쟁 때 헤어진 언니를 꼭 찾고 싶단다.”
김금숙 작가(51·사진)의 어머니는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 사는 딸을 찾아와 오래도록 간직한 소망을 털어놓았다. 1933년생인 어머니는 평양에 살다가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평소 북에 두고 온 가족 얘길 잘 하지 않았지만, 평생 통일부 이산가족찾기 등을 통해 백방으로 찾으려 애써 왔다. 김 작가는 어머니의 사연을 녹취한 뒤 다른 이산가족들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가슴 아픈 이산가족들의 사연이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 2020년 선보인 그래픽노블 ‘기다림’(딸기책방)이었다. ‘기다림’은 올해 8월 ‘만화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미국 하비상의 최고국제도서 부문에 최종 후보로 올랐다.
김 작가는 14일 출간한 에세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남해의봄날·작은 사진)에서 이런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인천 강화도에 있는 작업실에서 25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오래 지켜봤다. 가족의 이야기와 삶의 경험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 그게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작화 실력 못지않게 주제와 이야기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림을 다소 못 그리더라도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라면 좋은 그래픽노블이 될 수 있어요. 제 곁에 있는 진정성 있는 얘기들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죠.”
김 작가와 하비상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그린 2017년 작 ‘풀’(보리)로 2020년 하비상 최고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했다. ‘풀’은 당시 미 뉴욕타임스(NYT)가 ‘올해 최고의 만화’로, 영국 가디언지가 ‘올해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각각 선정했다.
“그리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가 살던 시대잖아요.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은 대한민국과 여성의 슬픔 그 자체이지 않을까요. 2017년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대화도 나눴고, 일본군이 위안소를 세웠던 중국 상하이와 하얼빈을 직접 찾아다녔어요.”
에세이에는 1994년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를 다녔던 시절, 2010년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작가의 인생 궤적도 담겨 있다. 작가는 “힘든 역사를 직시하는 작품에 매진하는 이유”를 ‘차(茶)’에 빗대 설명했다.
“마시고 난 뒤에도 향이 떠나지 않는 차 같은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슬픔을 응시한 작품은 독자들 뇌리에도 오래도록 남거든요. 왜냐고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사실은 더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1026/116174025/1
에세이 ‘시간이 지날수록…’ 펴낸 김금숙 작가
이산가족 사연 ‘기다림’ 올 하비상 최종후보
위안부 아픔 다룬 ‘풀’ 2020년 하비상 수상
“향이 떠나지 않는 茶같은 작품 그리고 싶어”
“6·25전쟁 때 헤어진 언니를 꼭 찾고 싶단다.”
김금숙 작가(51·사진)의 어머니는 어느 날 프랑스 파리에 사는 딸을 찾아와 오래도록 간직한 소망을 털어놓았다. 1933년생인 어머니는 평양에 살다가 전쟁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평소 북에 두고 온 가족 얘길 잘 하지 않았지만, 평생 통일부 이산가족찾기 등을 통해 백방으로 찾으려 애써 왔다. 김 작가는 어머니의 사연을 녹취한 뒤 다른 이산가족들도 만나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 가슴 아픈 이산가족들의 사연이 쌓여서 나온 결과물이 2020년 선보인 그래픽노블 ‘기다림’(딸기책방)이었다. ‘기다림’은 올해 8월 ‘만화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리는 미국 하비상의 최고국제도서 부문에 최종 후보로 올랐다.
김 작가는 14일 출간한 에세이 ‘시간이 지날수록 빛나는’(남해의봄날·작은 사진)에서 이런 과정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인천 강화도에 있는 작업실에서 25일 전화 인터뷰에 응한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과 상처를 오래 지켜봤다. 가족의 이야기와 삶의 경험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나’를 고민하는 계기가 됐고, 그게 작품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그래픽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지점쯤에 있는 형식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작화 실력 못지않게 주제와 이야기가 무척 중요합니다. 그림을 다소 못 그리더라도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라면 좋은 그래픽노블이 될 수 있어요. 제 곁에 있는 진정성 있는 얘기들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죠.”
김 작가와 하비상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그린 2017년 작 ‘풀’(보리)로 2020년 하비상 최고국제도서 부문을 수상했다. ‘풀’은 당시 미 뉴욕타임스(NYT)가 ‘올해 최고의 만화’로, 영국 가디언지가 ‘올해 최고의 그래픽노블’로 각각 선정했다.
“그리 먼 옛날이 아니라 우리네 어머니가 살던 시대잖아요.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은 대한민국과 여성의 슬픔 그 자체이지 않을까요. 2017년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 대화도 나눴고, 일본군이 위안소를 세웠던 중국 상하이와 하얼빈을 직접 찾아다녔어요.”
에세이에는 1994년 세종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스트라스부르 미술학교를 다녔던 시절, 2010년 귀국한 뒤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작가의 인생 궤적도 담겨 있다. 작가는 “힘든 역사를 직시하는 작품에 매진하는 이유”를 ‘차(茶)’에 빗대 설명했다.
“마시고 난 뒤에도 향이 떠나지 않는 차 같은 작품을 그리고 싶어요. 슬픔을 응시한 작품은 독자들 뇌리에도 오래도록 남거든요. 왜냐고요?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 사실은 더 우리의 삶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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