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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에서 펴낸 책과 작가, 그리고 회사 이야기를 소개한 언론 보도입니다

오마이뉴스_"깨달았어요, 왜 독일이 철학자를 많이 배출하는지"

namhaebomnal
2020-01-04
조회수 1377



여기에서 즐거운 것은 요코 씨 편지를 받는 것과 언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뿐이에요. 유럽에 와도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99쪽/최정호 1981)

요즘 우리는 손전화를 쥐고서 손가락으로 톡톡 누리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1초 만에라도 쪽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때로는 쪽글뿐 아니라 긴글을 보낼 수 있고, 온갖 그림이나 사진까지 날릴 수 있어요.


무척 손쉽게 쪽글이며 긴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오늘날, 우리는 손전화에다가 셈틀로 얼마나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서로 띄우고 받을까요. 손쉽게 주고받을 수 있기에 더 알뜰살뜰 마음을 나눌까요, 아니면 가볍게 주고받다가 잊어버리는 글자락이 될까요.


마흔 해라는 나날이 넘도록 바다를 사이에 두고 글월을 주고받은 두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마흔 해를 넘는 동안 주거니 받거니 한 글월은 쉰 자락이 살짝 안 된다고 합니다만, 두 사람 사이에서 글월 하나에 담아서 나눈 마음은 매우 깊으면서 넓으리라 생각해요. 더 많이 주고받아야 더 깊거나 넓게 나누는 마음이지는 않거든요. 글월 한 자락마다 온마음을 싣고 온사랑을 실어요. 짧게 적바림한 엽서 한 자락에도 온꿈이며 온숨결을 담습니다.

 

이봐요, 미스터 최, 독일에 있을 때 저는 깨달았어요. 왜 독일이 철학자를 많이 배출하는지를.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서 그 문제를 생각한 거예요. (103쪽/사노 요코 1981)

글월꾸러미 <친애하는 미스터 최>(사노 요코·최정호/요시카와 나기 옮김, 남해의봄날, 2019)는 진작에 책으로 묶으려 했답니다. 일본에 사는 사노 요코 님은 굳이 '허접한 내 글월 따위를 읽고 싶을 사람이 있겠느냐?'며 너털웃음이었다고 하는데, 한국에 사는 최정호님은 '그대가 띄운 글월이야말로 놀라운 빛이며 숨결이 싱그럽게 춤추니, 이 글월을 나 혼자서 누릴 수 없다!'고 여겼답니다.


그런데 이 글월꾸러미는 사노 요코 님이 눈을 감고서 한참 뒤에야, 그러니까 2010년에 사노 요코 님이 눈을 감았으니 얼추 열 해가 지나서야 비로소 책 하나로 태어납니다. 


 ▲  사노 요코가 보낸 엽서, 사노 요코가 최정호를 담은 그림 ⓒ 남해의봄날


 

당신은 왜 일본에 대한 정보를 아사히신문 같은 얌전한 매체에서 얻으려고 하십니까? 그런 신문은 진실을 전혀 보도하지 않습니다. 고급 신문이 진실을 보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실 테니 부디 그런 것만 보지 마시고 저속한 주간지나 스캔들만 쓰는 삼류 잡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도 예술제에 출품한 고상한 작품만 보지 마시고 무협이나 조폭 나오는 걸 보세요. (54쪽/사노 요코 1971)

글월자락을 천천히 읽습니다. 한 자락을 읽고서 책을 덮습니다. 며칠 뒤에 다시 한 자락을 읽고 또 책을 덮습니다. 이렇게 읽고 덮고 하노라니 한 달 두 달 지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더디 읽는다 하더라도 두 달이면 다 읽어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마흔 해를 넘는 애틋한 마음이 흐르던 글월자락도 책으로 묶어 놓으니 참으로 한숨에 읽어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 마음에 흐르는 소용돌이를 바라봅니다. 두 사람은 오직 서로를 바라보며 글월을 적었습니디만, 이 글월은 이제 두 사람 아닌 누구나 바라보는 이야기가 되고, 누구나 새삼스레 그날 그곳, 이를테면 1971년 어느 날 어느 곳이라든지, 1981년 어느 날 어느 곳을 어림하는 발판이 됩니다.

 

다니카와 데쓰조 선생님의 서재를 구경한 것은 저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한국인이니 일본인이니 하는 아집을 떠나서 위대한 석학의 생전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있었습니다. (146쪽/최정호 1991)

그때 한국에서는 이렇게 마음앓이를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무렵 일본에서는 엉터리 일본 정치에 이렇게 날선 목소리로 나무라는 사람이 있었군요. 군사독재에 입도 벙긋하지 못하던 숨은 눈물이 흐르고, 이웃나라에 군사독재가 있는 줄 생각조차 못했다는, 더구나 제국주의 강점기라고 하는 슬픈 사슬을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적이 없다고 털어놓는 그림님이 있습니다.

 

진정한 국제 친선은 나라와 나라가 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개인이, 욕하면서 같이 술을 마시고 밥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한 명이 한 명을 담당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149쪽/사노 요코 1991)

 

▲  손으로 꾹꾹 눌러서 띄우는 글월이란 얼마나 아름다울까. 우리 집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이모부 큰아버지한테 손글월을 적어서 띄운다.

ⓒ 최종규/숲노래


모든 삶은 발자취입니다. 대통령 같은 사람들이 보낸 몇 해만 발자취이지 않습니다. 수수한 사람들이 얼키고설키면서 길어올리는 자그마한 이야기도 발자취입니다. 어쩌면 아주 수수한 사람들이 따사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고받은 글월자락이야말로 길이길이 남기면서 새로운 빛을 바라보는 길동무로 삼을 만하지는 않을까요. 


[오마이뉴스 최종규 기자] 


기사 원문 보기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571919&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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