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의 시대라지만 곳곳에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만나는 요즘이다. 어지간한 패션 브랜드는 시즌마다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나 브랜드와 ‘콜라보 상품’을 선보이고, 근래 발표되는 신곡 가운데 피처링이 들어가지 않은 노래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출판 작업은 대개 긴 시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기에 일시적·임시적 협업의 의미를 담은 컬래버레이션은 흔치 않은데, 근래에는 뜻깊은 도전을 넘어 시장에서의 성공까지 이룬 전략적 도전도 이루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지난 5월 통권 50권을 맞은 ‘아무튼’ 시리즈는 출판 컬래버레이션의 대표 주자다.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기획하여 2017년 9월 첫 책을 선보인 이 기획은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바탕으로 취미, 취향, 관심 등 동시대의 관점을 흥미롭게 담아내, 글을 쓰는 이들 사이에서는 ‘나도 이걸로 아무튼 시리즈 한 번 써봐야지’ 하는 도전을 끌어냈고, 읽는 이들에게는 ‘나랑 비슷한 사람이 이렇게 내 마음과 상황을 알아주네’라는 공감을 얻었다. 하나의 시리즈가 50권에 다다랐다는 사실 자체가 출판계에서는 이미 성공이기도 한데, 애초 시리즈명 후보에 99권까지 가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99문고’가 있었다니, 아무튼 대단한 여정이다.
출판사는 자기 색과 주장이 선명해야 하기에 좀처럼 협업이 쉽지 않은데, 아무튼 시리즈의 세 출판사보다 두 곳 많은 다섯 출판사가 선보인 기획이 얼마 전 출간되었다. 앞선 세 출판사의 공통점이 1인 출판사였다면, 다섯 출판사의 공통점은 ‘지역’이다.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터전을 옮겨 ‘그곳에서 그곳의’ 출판을 시도해왔는데,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서로의 고민과 지향이 이들을 자연스레 한데 모으지 않았을까 싶다. 시리즈 이름은 ‘어딘가에는 @ 있다’인데, 통영의 원조 충무김밥, 순천 마법의 정원, 대전의 도심 속 철공소, 옥천의 싸우는 이주여성, 강원의 아마추어 인쇄공이 주인공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했다는 소박한 머리말이지만, 지역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고 어느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는지 익히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라 결코 조금으로 들리지 않는다.
출판사끼리의 협업 외에 최근에는 영상 제작사와 출판사의 컬래버레이션이 크게 늘었다. 콘텐츠 산업에서 IP(지식재산권) 확보가 핵심으로 올라서면서 원천 텍스트를 갖고 있거나 생산하는 출판사와 이를 바탕으로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사의 필요가 만나게 된 것인데, 통상 2000~3000부를 찍는 출판 산업과 최소 수십억원을 들여 수백만명과 만나려 하는 영상 산업의 자본 규모가 크게 다르다 보니, 왕왕 출판이 외주화되는 사례와 경향도 보이는 듯하다. 여기에 대형 서점과 플랫폼도 콘텐츠 개발부터 출판까지 전체를 아우르며 IP 확보 경쟁에 참여하다 보니, 힘을 모으는 게 아니라 힘으로 붙는 상황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염려도 된다. 협업의 지속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짧게 끝나거나 멈춘 사례를 떠올리면 역시 시장에서의 성공이 전제인가 싶다가도, 서로 모인 이유가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의미의 확대 재생산일 때 빛나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다. 컬래버레이션은 결과보다 시작 자체가 멋져야 한다고 믿는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7070300055
각자도생의 시대라지만 곳곳에서 컬래버레이션(collaboration)을 만나는 요즘이다. 어지간한 패션 브랜드는 시즌마다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나 브랜드와 ‘콜라보 상품’을 선보이고, 근래 발표되는 신곡 가운데 피처링이 들어가지 않은 노래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출판 작업은 대개 긴 시간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기에 일시적·임시적 협업의 의미를 담은 컬래버레이션은 흔치 않은데, 근래에는 뜻깊은 도전을 넘어 시장에서의 성공까지 이룬 전략적 도전도 이루어지고 있어 눈길을 끈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출판사는 자기 색과 주장이 선명해야 하기에 좀처럼 협업이 쉽지 않은데, 아무튼 시리즈의 세 출판사보다 두 곳 많은 다섯 출판사가 선보인 기획이 얼마 전 출간되었다. 앞선 세 출판사의 공통점이 1인 출판사였다면, 다섯 출판사의 공통점은 ‘지역’이다. 강원 고성의 온다프레스, 충북 옥천의 포도밭출판사, 대전의 이유출판, 전남 순천의 열매하나, 경남 통영의 남해의봄날. 이들은 모두 서울에서 살다가 지역으로 터전을 옮겨 ‘그곳에서 그곳의’ 출판을 시도해왔는데, 가까운 거리가 아님에도 서로의 고민과 지향이 이들을 자연스레 한데 모으지 않았을까 싶다. 시리즈 이름은 ‘어딘가에는 @ 있다’인데, 통영의 원조 충무김밥, 순천 마법의 정원, 대전의 도심 속 철공소, 옥천의 싸우는 이주여성, 강원의 아마추어 인쇄공이 주인공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했다는 소박한 머리말이지만, 지역의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고 어느 정도의 관심을 받고 있는지 익히 경험한 이들의 목소리라 결코 조금으로 들리지 않는다.
출판사끼리의 협업 외에 최근에는 영상 제작사와 출판사의 컬래버레이션이 크게 늘었다. 콘텐츠 산업에서 IP(지식재산권) 확보가 핵심으로 올라서면서 원천 텍스트를 갖고 있거나 생산하는 출판사와 이를 바탕으로 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사의 필요가 만나게 된 것인데, 통상 2000~3000부를 찍는 출판 산업과 최소 수십억원을 들여 수백만명과 만나려 하는 영상 산업의 자본 규모가 크게 다르다 보니, 왕왕 출판이 외주화되는 사례와 경향도 보이는 듯하다. 여기에 대형 서점과 플랫폼도 콘텐츠 개발부터 출판까지 전체를 아우르며 IP 확보 경쟁에 참여하다 보니, 힘을 모으는 게 아니라 힘으로 붙는 상황이 펼쳐지는 건 아닌지 염려도 된다. 협업의 지속 가능성은 어디에 있을까. 짧게 끝나거나 멈춘 사례를 떠올리면 역시 시장에서의 성공이 전제인가 싶다가도, 서로 모인 이유가 규모의 확장이 아니라 의미의 확대 재생산일 때 빛나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다. 컬래버레이션은 결과보다 시작 자체가 멋져야 한다고 믿는다.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기사 원문 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0707030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