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팬데믹 일기』 박상현 저자 인터뷰
『난중일기』와 『안네의 일기』처럼 한 시대를 기록한 개인의 일기는 후세가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비극적인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게 돕는다. “때로는 숲보다 나무 하나가 훨씬 더 생생한 맥락”을 보여줄 때가 있다. 『나의 팬데믹 일기』는 2020년의 생생한 기록에 현재의 시점까지 더해져 우리 사회가 잊지말아야 할 지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위기 속에서 한 개인의 일기가 어떻게 시대의 기록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정치, 문화, 미디어, 테크 등 분야를 넘나들며 많은 글을 쏟아내 ‘칼럼계의 이단아’라는 수식이 붙었습니다. 『내 사랑 모드』, 『아날로그의 반격』 등 여러 책을 번역하기도 하셨고요. 활동 범위가 워낙 넓고 다양해 박상현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후에 미국에 와서는 미술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후에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테크과 미디어에 관한 칼럼을 몇몇 매체에 기고하면서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게 되었죠. 지금은 온라인 매체인 ‘오터레터'를 만들고 있고, 옛 동료들과 새로운 매체의 유료구독 시스템을 제공하는 미디어스피어라는 회사를 만들어 운영 중 입니다.
책에서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이 인류에게 "더 이상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경고"이며 이제 우리 모두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팬데믹으로 촉발된 사회 변화 중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팬데믹 이후에 사회가 겪고 있고, 겪게 될 변화는 대부분 팬데믹 이전에 시작되었던 것들입니다. 가령 상거래와 교육, 의료 등 많은 분야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이는 이미 팬데믹 이전에 시작된 변화죠. 팬데믹은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을 뿐 아니라 변화 추세에 버티고 저항하던 산업이나 조직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더 이상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건 단순히 몇몇 산업의 변화 때문은 아닙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전 지구적으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헤쳐나갈 수 없는 위기들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죠. 기후 전문가들은 인류가 처한 위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팬데믹은 예행연습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세계가 원인과 해결책이 아주 분명하고 익숙한 팬데믹을 해결하지 못하면 훨씬 더 어렵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과거처럼 국가 중심적으로 생각하거나, 주주 자본주의의 사고틀에 갇혀서 이유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는 인류가 앞으로 다가올, 아니 이미 찾아온 미래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정혜승 작가님도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개인의 일기가 시대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는 걸 확인하시기를. 우리가 어떤 역사적 순간을 지나가고 있는지 새삼 아찔하다.” 『나의 팬데믹 일기』를 어떻게 쓰게 되었나요?
우리가 지리적, 시간적으로 거리가 먼 특정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 때 그 지역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은 되지만 충분하지 않죠. 가령 ‘1417년 유럽인은 어떻게 살고, 생각하고, 행동했을까’를 알기 위해 1417년을 이야기하는 역사책을 펴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1417년에는 아비뇽 교황 베네딕트 13세가 교황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서방교회의 대분열이 끝났죠.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스티븐 그린블랫의 책 『1417년, 근대의 탄생』은 한 사람의 행동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유럽이 어떤 곳이었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죠.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책으로 만드는 것에 동의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물론, 책에는 새로 쓴 미공개 칼럼도 있습니다만) 휘발성이 강한 소셜미디어는 검색도 쉽지 않고 서버가 사라지면 모든 기록이 일순간에 날아가겠지만, 책으로 남으면 긴 세월이 흐른 후 누군가 읽으면서 지금의 세상이 어땠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런 ‘우리시대의 기록'이 가장 큰 목적이자, 메시지입니다.
“아이들은 왜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을까”라는 글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기업에 의한 미디어 변화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겪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SNS와 뉴스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사람들이 SNS와 뉴스를 소비하는 것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미디어 역시 이미 시작된 변화가 팬데믹을 통해 가속화된 영역에 속합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자신의 역할 중 많은 부분을 넘겨줬죠. 하지만 그랬던 미디어가 미국에서는 트럼프 집권기간 중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워낙 심각한 뉴스가 매일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뉴스 소비량이 늘었고, 백악관에서 쏟아내는 가짜 뉴스가 많다 보니 책임 있는 언론이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유료 구독도 늘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소셜미디어의 파워가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더 커졌죠. 팬데믹 기간 중에 우리가 확인한 건,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가짜뉴스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 인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 근거 없는 루머와 허위정보가 확산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는데, 그걸 알고도 여전히 그런 가짜뉴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 거죠.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이고, 우리가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작가님 글에 열광하는 독자의 연령대가 20대부터 50대까지 참 다양한데요. 특히 책 속 딸, 아들과의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MZ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MZ세대와 소통하는 법에 대해 한 말씀해주세요!.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 두 세대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아주 깍듯이 대하고, 적극 동의해 주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나는 이 사람들과 말이 통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말이 잘 통한다고 자신하는 순간이 꼰대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세대인데 생각이 다르면 귀 기울여 듣는데, 생각이 다르지만 자신보다 어리면 “틀렸다", “어려서 저런다"고 무의식적으로 단정짓고 가르치고 싶어하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이야기할 때 나이를 생각하지 말고, ‘이 사람은 몇 년 후에 지금 하는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둘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겁니다. 그럼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요.
책 에필로그에서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팬데믹이라는 경고음을 통해 생각한 작가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팬데믹을 겪으며 생각한 우리 사회의 우선순위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말씀하신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가 아니라, 인류사회를 의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전 지구적인 단계에서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젠더 갈등, 인종문제 같은 것은 이미 20세기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들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죠. 인류의 학습능력은 인류가 저지르는 문제보다 훨씬 느리게 발전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해야 하는 고민의 우선순위는 자아의 확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에는 사람들이 자아를 민족국가 수준으로 확장했다면, 이제는 전 인류로 확장해야 우리가 깊이 빠져있는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라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의 팬데믹 일기』를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느닷없이 시작된 팬데믹이 벌써 2년이 되어 갑니다. 제 책의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우리가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에 감사할 수 있고, 미래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노력하고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사 원문 보기 http://ch.yes24.com/Article/View/45993?Ccode=000_008_001
『나의 팬데믹 일기』 박상현 저자 인터뷰
『난중일기』와 『안네의 일기』처럼 한 시대를 기록한 개인의 일기는 후세가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비극적인 과거가 되풀이되지 않게 돕는다. “때로는 숲보다 나무 하나가 훨씬 더 생생한 맥락”을 보여줄 때가 있다. 『나의 팬데믹 일기』는 2020년의 생생한 기록에 현재의 시점까지 더해져 우리 사회가 잊지말아야 할 지점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책이다.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위기 속에서 한 개인의 일기가 어떻게 시대의 기록이 되는지 보여주고 있다.
정치, 문화, 미디어, 테크 등 분야를 넘나들며 많은 글을 쏟아내 ‘칼럼계의 이단아’라는 수식이 붙었습니다. 『내 사랑 모드』, 『아날로그의 반격』 등 여러 책을 번역하기도 하셨고요. 활동 범위가 워낙 넓고 다양해 박상현이라는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독자가 많습니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부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후에 미국에 와서는 미술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후에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을 키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테크과 미디어에 관한 칼럼을 몇몇 매체에 기고하면서 글 쓰는 일을 하며 살게 되었죠. 지금은 온라인 매체인 ‘오터레터'를 만들고 있고, 옛 동료들과 새로운 매체의 유료구독 시스템을 제공하는 미디어스피어라는 회사를 만들어 운영 중 입니다.
책에서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이 인류에게 "더 이상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경고"이며 이제 우리 모두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팬데믹으로 촉발된 사회 변화 중 우리가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사실 팬데믹 이후에 사회가 겪고 있고, 겪게 될 변화는 대부분 팬데믹 이전에 시작되었던 것들입니다. 가령 상거래와 교육, 의료 등 많은 분야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지만, 이는 이미 팬데믹 이전에 시작된 변화죠. 팬데믹은 이런 변화를 가속화했을 뿐 아니라 변화 추세에 버티고 저항하던 산업이나 조직을 무력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가 더 이상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살 수 없다는 건 단순히 몇몇 산업의 변화 때문은 아닙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전 지구적으로 힘을 합치지 않으면 헤쳐나갈 수 없는 위기들이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죠. 기후 전문가들은 인류가 처한 위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팬데믹은 예행연습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세계가 원인과 해결책이 아주 분명하고 익숙한 팬데믹을 해결하지 못하면 훨씬 더 어렵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기후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과거처럼 국가 중심적으로 생각하거나, 주주 자본주의의 사고틀에 갇혀서 이유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는 인류가 앞으로 다가올, 아니 이미 찾아온 미래에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정혜승 작가님도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개인의 일기가 시대의 기록이 되기도 한다는 걸 확인하시기를. 우리가 어떤 역사적 순간을 지나가고 있는지 새삼 아찔하다.” 『나의 팬데믹 일기』를 어떻게 쓰게 되었나요?
우리가 지리적, 시간적으로 거리가 먼 특정 시대와 사회를 이해하려고 할 때, 그 때 그 지역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 도움은 되지만 충분하지 않죠. 가령 ‘1417년 유럽인은 어떻게 살고, 생각하고, 행동했을까’를 알기 위해 1417년을 이야기하는 역사책을 펴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1417년에는 아비뇽 교황 베네딕트 13세가 교황 자리에서 내려오면서 서방교회의 대분열이 끝났죠.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 스티븐 그린블랫의 책 『1417년, 근대의 탄생』은 한 사람의 행동을 추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당시 유럽이 어떤 곳이었는지 제대로 깨닫게 되죠. 제가 페이스북에 쓴 글을 책으로 만드는 것에 동의한 이유도 비슷합니다. (물론, 책에는 새로 쓴 미공개 칼럼도 있습니다만) 휘발성이 강한 소셜미디어는 검색도 쉽지 않고 서버가 사라지면 모든 기록이 일순간에 날아가겠지만, 책으로 남으면 긴 세월이 흐른 후 누군가 읽으면서 지금의 세상이 어땠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거죠. 그런 ‘우리시대의 기록'이 가장 큰 목적이자, 메시지입니다.
“아이들은 왜 유튜브에서 정보를 얻을까”라는 글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 플랫폼 기업에 의한 미디어 변화는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전 세계가 겪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SNS와 뉴스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사람들이 SNS와 뉴스를 소비하는 것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요?
미디어 역시 이미 시작된 변화가 팬데믹을 통해 가속화된 영역에 속합니다. 전통적인 미디어는 소셜미디어의 등장으로 자신의 역할 중 많은 부분을 넘겨줬죠. 하지만 그랬던 미디어가 미국에서는 트럼프 집권기간 중에 다시 힘을 얻습니다. 워낙 심각한 뉴스가 매일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뉴스 소비량이 늘었고, 백악관에서 쏟아내는 가짜 뉴스가 많다 보니 책임 있는 언론이 중요성을 절감하면서 유료 구독도 늘었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소셜미디어의 파워가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더 커졌죠. 팬데믹 기간 중에 우리가 확인한 건,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가짜뉴스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전 인류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 근거 없는 루머와 허위정보가 확산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는데, 그걸 알고도 여전히 그런 가짜뉴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 거죠.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이고, 우리가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일입니다.
작가님 글에 열광하는 독자의 연령대가 20대부터 50대까지 참 다양한데요. 특히 책 속 딸, 아들과의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MZ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또는 MZ세대와 소통하는 법에 대해 한 말씀해주세요!.
밀레니얼과 Z세대에게 인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 두 세대가 나이가 더 많은 사람에게 아주 깍듯이 대하고, 적극 동의해 주기 때문에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나는 이 사람들과 말이 통해"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들과 말이 잘 통한다고 자신하는 순간이 꼰대가 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세대인데 생각이 다르면 귀 기울여 듣는데, 생각이 다르지만 자신보다 어리면 “틀렸다", “어려서 저런다"고 무의식적으로 단정짓고 가르치고 싶어하죠. 가장 손쉬운 방법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과 이야기할 때 나이를 생각하지 말고, ‘이 사람은 몇 년 후에 지금 하는 일에서 큰 성공을 거둘 사람’이라고 가정하는 겁니다. 그럼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어요.
책 에필로그에서 인생의 우선순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팬데믹이라는 경고음을 통해 생각한 작가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팬데믹을 겪으며 생각한 우리 사회의 우선순위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말씀하신 “우리 사회"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한국 사회가 아니라, 인류사회를 의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류는 전 지구적인 단계에서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 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젠더 갈등, 인종문제 같은 것은 이미 20세기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들이었지만 그러지 못했죠. 인류의 학습능력은 인류가 저지르는 문제보다 훨씬 느리게 발전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잘 해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해야 하는 고민의 우선순위는 자아의 확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20세기에는 사람들이 자아를 민족국가 수준으로 확장했다면, 이제는 전 인류로 확장해야 우리가 깊이 빠져있는 이 문제의 해결을 시도라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의 팬데믹 일기』를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느닷없이 시작된 팬데믹이 벌써 2년이 되어 갑니다. 제 책의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우리가 당연한 일상으로 생각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에 감사할 수 있고, 미래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노력하고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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