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시화가 만들어낸 무색무취, 평준화된 놀거리·먹거리로 인해 오히려 지역색 뚜렷한 것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통영과 고성을 거점으로 하는 작은 출판사 ‘남해의봄날’과 ‘온다프레스’에서는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지역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최근 이들 출판사에서 발간한 ‘통영백미’(왼쪽)와 ‘동쪽의 밥상’. 각 출판사 제공
- 통영 ‘남해의봄날’ 정은영·고성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
서울 떠나 지역에서 9년·4년… 폐업위기 넘기며 정체성 정립
주민들과 소통하며 ‘느낌’가득… 현지 강점 살린 책 꾸준히 팔려
‘통영백미’(남해의봄날)와 ‘동쪽의 밥상’(온다프레스)은 언뜻 지역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수많은 책 중 하나처럼 보인다. 아니다. 그렇게 흔한 책이. 탄생지는 경남 통영과 강원 고성. 두 책은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만들어졌다. 저자들 역시 토박이. 수십 년 살며 쌓인 지식과 추억이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최근 개성과 취향이 있는 작은 서점이 여행명소가 될 만큼 인기인데, 이 ‘동네 책방’을 빛내주는 건 결국 남다른 책일 터. 그 서가를 채워줄 ‘동네 출판사’에 주목할 때다. 생활권 소비 등 로컬화가 세계적 추세인데, 책의 미래도 어쩌면 ‘로컬’에 있을지 모른다. 서울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연고 없는 통영과 고성에 자리 잡은 지 9년, 4년. 통영백미와 동쪽의 밥상에 대해, 이들보다 더 잘 아는 ‘책쟁이’가 있을까.
이제 ‘전국구’라 해도 과장이 아닌 두 출판사의 정은영·박대우 대표에게 물었다. 지금, 그곳에서 무얼 ‘보고’ 있는지. 박 대표는 “‘남해의봄날’이 롤 모델”이라 했고, 정 대표는 “아, 그러면 돈 못 벌 텐데”라며 웃었다.
▲ 통영 ‘남해의봄날’ 정은영(왼쪽)·고성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오른쪽)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문자 한 통이면, 1시간에 100명 모으는 북 토크, 서울에서도 못 따라 해요.”= 내년이면 통영에 온 지 벌써 10년. 남해의봄날은 이제 ‘전설’ 같은 존재다. 대도시를 떠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싶은 이에게, 또 취향대로 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이 모두에게 정 대표는 ‘앞선’ 사람이다. 실제로 이주, 출판사 창업 등 관련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처음 5, 6년 동안은 해마다 문 닫을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살면서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출판사 정체성도 찾고…. 이제 겨우 숨통이 좀 트였어요.”
‘남해의봄날’의 대표 책은 BBC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정 대표가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 빵 터진 히트작이다. 또, 40대 여성의 일과 일상, 그리고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마녀 체력’도 화제였다.
이제 책을 낼 때마다 메이저 출판사급 주목을 받는다. 모든 책이 소중하지만, 정 대표는 로컬북스에 더 애착이 간단다. 지역 출판사가 해야 할 일,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잘 팔리기까지 하니.
“이슈 중심의 책은 우선 주목을 받죠. 한데, 많은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내기 때문에 생명이 짧아요. 로컬북스는 천천히 오래 팔려요. 가랑비에 옷 젖듯, 나중에 ‘어머 이렇게나 팔렸어?’ 하게 되죠.”
신간 ‘통영백미’는 벌써 21번째 선보이는 지역책. 이상희 작가가 40여 년 통영의 시장과 구석구석을 다니며 기록한 글과 사진이, 통영 하면 굴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외지인들의 식감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 대표는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라 생각했는데 와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며 “통영 음식이 굉장히 다양하고 독특하다. 그 뿌리를 찾는 책을 더 내고 싶다”고 했다.
책과 통영 멸치, 아귀포 등을 함께 묶은 ‘책+로컬푸드’상품과 책 제목을 모른 채 받아 보는 ‘바다봄(받아봄)’ 꾸러미도 인기다.
자사 책뿐만 아니라 타 지역 작은 출판사의 책도 담는 게 특징이다. 대전의 ‘이유출판사’, 하동의 ‘상추쌈출판사’ 등의 책이 호응을 얻었다. 남는 것 없이, 오로지 협력과 상생, 그리고 독자를 위한 서비스다.
함께 운영하는 ‘봄날의책방’도 자랑거리. 이미 통영 명소다. “회원들에게 문자를 넣으면, 1시간 만에 북 토크 참가자 100명도 거뜬히 모아요. 사람 많이 사는 서울에서는 열심히 해도 50명이 어려웠어요. 다들 너무 바쁘거든요.” 저자-출판-서점-독자로 이어지는 끈끈한 연대를 이야기하며 정 대표는 뿌듯해했다.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제 서울말씨를 놀리는 지역민들과 살아요…이 독특함을 계속 책으로 끌어내고 싶어요.”=2017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내려간 강원 고성. 큰 계획은 없었다. 그러니, 출판사를 차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박 대표는 “한때는 이곳 주민 80% 이상이 피란민이었다고 한다”며 “결국 다들 이주민이란 이야기인데, 그래서인지 텃세나 배척은 한 번도 겪지 못했다”고 했다. “내 귀엔 북한말 같은 사투리를 쓰시는 분들이 제 서울말을 재밌어하시더라고요. 이런 데서 뭔가 나올 것만 같았어요.” ‘책쟁이’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 ‘느낌’을 살려 한 권 두 권 책을 내기 시작했다.
온다프레스의 대표 책이라고 하면 단연 ‘온다 씨의 강원도’. 박 대표의 정착기이면서, 강원 지역 이주민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는 책은 지역과 작은 출판사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이번에 낸 ‘동쪽의 밥상’은 그 존재가치를 더욱 높인 책. 속초에서 나고 자라, 지역지 기자로 일한 엄경선 작가는 동쪽에 산 자만이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이웃집의 밥상 풍경, 혀끝에 남아 있는 과거의 맛 등을 더듬는다. 또, 이를 동해안 명태가 거의 사라지고, 오징어가 30년 동안 10분의 1로 줄어든 지금의 세태와 비교한다. 솜씨 좋은 편집자인 박 대표를 만나 탄생한 수작이다.
이 밖에 고성 말씨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한 ‘북한 여행 회화’도 꾸준히 팔린다. 아직 갈 수 없는 북한을 ‘상상 여행’하며 북한말을 흥미롭게 푼 책이다. “로컬 출판사의 강점이 드러나는 책을 일 년에 한두 권은 꼭 내고 싶어요. 지역색을 억지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살면서 배우고, 발견한 후에 말이에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기사 원문 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11801031712056001
▲ 도시화가 만들어낸 무색무취, 평준화된 놀거리·먹거리로 인해 오히려 지역색 뚜렷한 것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통영과 고성을 거점으로 하는 작은 출판사 ‘남해의봄날’과 ‘온다프레스’에서는 취향과 개성이 뚜렷한 지역책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최근 이들 출판사에서 발간한 ‘통영백미’(왼쪽)와 ‘동쪽의 밥상’. 각 출판사 제공
- 통영 ‘남해의봄날’ 정은영·고성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
서울 떠나 지역에서 9년·4년… 폐업위기 넘기며 정체성 정립
주민들과 소통하며 ‘느낌’가득… 현지 강점 살린 책 꾸준히 팔려
‘통영백미’(남해의봄날)와 ‘동쪽의 밥상’(온다프레스)은 언뜻 지역의 식문화를 소개하는 수많은 책 중 하나처럼 보인다. 아니다. 그렇게 흔한 책이. 탄생지는 경남 통영과 강원 고성. 두 책은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만들어졌다. 저자들 역시 토박이. 수십 년 살며 쌓인 지식과 추억이 맛깔스럽게 펼쳐진다.
최근 개성과 취향이 있는 작은 서점이 여행명소가 될 만큼 인기인데, 이 ‘동네 책방’을 빛내주는 건 결국 남다른 책일 터. 그 서가를 채워줄 ‘동네 출판사’에 주목할 때다. 생활권 소비 등 로컬화가 세계적 추세인데, 책의 미래도 어쩌면 ‘로컬’에 있을지 모른다. 서울에서 편집자로 일하다가, 연고 없는 통영과 고성에 자리 잡은 지 9년, 4년. 통영백미와 동쪽의 밥상에 대해, 이들보다 더 잘 아는 ‘책쟁이’가 있을까.
이제 ‘전국구’라 해도 과장이 아닌 두 출판사의 정은영·박대우 대표에게 물었다. 지금, 그곳에서 무얼 ‘보고’ 있는지. 박 대표는 “‘남해의봄날’이 롤 모델”이라 했고, 정 대표는 “아, 그러면 돈 못 벌 텐데”라며 웃었다.
▲ 통영 ‘남해의봄날’ 정은영(왼쪽)·고성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오른쪽)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문자 한 통이면, 1시간에 100명 모으는 북 토크, 서울에서도 못 따라 해요.”= 내년이면 통영에 온 지 벌써 10년. 남해의봄날은 이제 ‘전설’ 같은 존재다. 대도시를 떠나 자신만의 속도로 살고 싶은 이에게, 또 취향대로 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이 모두에게 정 대표는 ‘앞선’ 사람이다. 실제로 이주, 출판사 창업 등 관련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처음 5, 6년 동안은 해마다 문 닫을 생각을 할 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살면서 지역민들과 소통하고, 출판사 정체성도 찾고…. 이제 겨우 숨통이 좀 트였어요.”
‘남해의봄날’의 대표 책은 BBC에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된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정 대표가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 빵 터진 히트작이다. 또, 40대 여성의 일과 일상, 그리고 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마녀 체력’도 화제였다.
이제 책을 낼 때마다 메이저 출판사급 주목을 받는다. 모든 책이 소중하지만, 정 대표는 로컬북스에 더 애착이 간단다. 지역 출판사가 해야 할 일,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잘 팔리기까지 하니.
“이슈 중심의 책은 우선 주목을 받죠. 한데, 많은 출판사가 경쟁적으로 내기 때문에 생명이 짧아요. 로컬북스는 천천히 오래 팔려요. 가랑비에 옷 젖듯, 나중에 ‘어머 이렇게나 팔렸어?’ 하게 되죠.”
신간 ‘통영백미’는 벌써 21번째 선보이는 지역책. 이상희 작가가 40여 년 통영의 시장과 구석구석을 다니며 기록한 글과 사진이, 통영 하면 굴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외지인들의 식감과 상상력을 자극한다. 정 대표는 “음식은 전라도가 최고라 생각했는데 와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며 “통영 음식이 굉장히 다양하고 독특하다. 그 뿌리를 찾는 책을 더 내고 싶다”고 했다.
책과 통영 멸치, 아귀포 등을 함께 묶은 ‘책+로컬푸드’상품과 책 제목을 모른 채 받아 보는 ‘바다봄(받아봄)’ 꾸러미도 인기다.
자사 책뿐만 아니라 타 지역 작은 출판사의 책도 담는 게 특징이다. 대전의 ‘이유출판사’, 하동의 ‘상추쌈출판사’ 등의 책이 호응을 얻었다. 남는 것 없이, 오로지 협력과 상생, 그리고 독자를 위한 서비스다.
함께 운영하는 ‘봄날의책방’도 자랑거리. 이미 통영 명소다. “회원들에게 문자를 넣으면, 1시간 만에 북 토크 참가자 100명도 거뜬히 모아요. 사람 많이 사는 서울에서는 열심히 해도 50명이 어려웠어요. 다들 너무 바쁘거든요.” 저자-출판-서점-독자로 이어지는 끈끈한 연대를 이야기하며 정 대표는 뿌듯해했다.
◇온다프레스 박대우 대표…“제 서울말씨를 놀리는 지역민들과 살아요…이 독특함을 계속 책으로 끌어내고 싶어요.”=2017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내려간 강원 고성. 큰 계획은 없었다. 그러니, 출판사를 차릴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박 대표는 “한때는 이곳 주민 80% 이상이 피란민이었다고 한다”며 “결국 다들 이주민이란 이야기인데, 그래서인지 텃세나 배척은 한 번도 겪지 못했다”고 했다. “내 귀엔 북한말 같은 사투리를 쓰시는 분들이 제 서울말을 재밌어하시더라고요. 이런 데서 뭔가 나올 것만 같았어요.” ‘책쟁이’ 본능이 되살아났고, 그 ‘느낌’을 살려 한 권 두 권 책을 내기 시작했다.
온다프레스의 대표 책이라고 하면 단연 ‘온다 씨의 강원도’. 박 대표의 정착기이면서, 강원 지역 이주민들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는 책은 지역과 작은 출판사에 대한 관심을 촉발했다.
이번에 낸 ‘동쪽의 밥상’은 그 존재가치를 더욱 높인 책. 속초에서 나고 자라, 지역지 기자로 일한 엄경선 작가는 동쪽에 산 자만이 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 이웃집의 밥상 풍경, 혀끝에 남아 있는 과거의 맛 등을 더듬는다. 또, 이를 동해안 명태가 거의 사라지고, 오징어가 30년 동안 10분의 1로 줄어든 지금의 세태와 비교한다. 솜씨 좋은 편집자인 박 대표를 만나 탄생한 수작이다.
이 밖에 고성 말씨에서 영감을 얻어 기획한 ‘북한 여행 회화’도 꾸준히 팔린다. 아직 갈 수 없는 북한을 ‘상상 여행’하며 북한말을 흥미롭게 푼 책이다. “로컬 출판사의 강점이 드러나는 책을 일 년에 한두 권은 꼭 내고 싶어요. 지역색을 억지로 끌어내는 게 아니라 살면서 배우고, 발견한 후에 말이에요.”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기사 원문 보기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2101180103171205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