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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에서 펴낸 책과 작가, 그리고 회사 이야기를 소개한 언론 보도입니다

경향신문_“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② | 이슈파이 ‘순천 소녀시대’

namhaebomnal
2019-06-18
조회수 2308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게 되자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꼭꼭 숨긴 채 어떻게 사신 걸까요? 글을 모른 것이었지 인생을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이 큰 인기를 얻게 된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요. 70~80대의 할머니들이 소녀였을 때는 1930~40년대였습니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어머니로 살았던 할머니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을 참고했습니다.



손경애 할머니의 그림.



■“밤을 받아서 결혼했어요”

김영분 할머니의 시입니다. 밤을 받고 결혼을 해야만 했다니 무슨 얘기일까요?

“(결혼) 허락이 됐다라니까 가슴이 두근두근해요. 허락이 됐으니께 결혼 승낙이 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결혼 승낙이 됐습니까’ 물으니까 밤을 안 받으면 허락이 안 되지만 밤을 받았으니까 허락이 됐다(는 거예요). 그 길로 밤을 여기다 놓고서는 뛰쳐나왔어. 우리집에 와 갖고선 엄마 밤을 받으면 허락이 된 게 무슨 뜻이라. (엄마는) 네가 그 집에 시집을 가라는 뜻이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라고. 밤이 이렇게나 중한 밤. 내가 시방도 밤을 안 먹어요.” 밤을 받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김영분 할머니. 할머니는 스무 살에 스물두 살이었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당시 결혼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가 시집가는 날 저녁에 끌어안고 ‘영분아 네가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서 살고 만약에 신랑이 없어도 그 집서 살고 그래야 한다. 자식을 놓고 그집서 평생을 살다가 네가 죽으면 끝이 난다.’ 엄마 그게 무슨 소리여. 갔다가 조금 있다 온다더니. 그게 아니여. 엄마 봐라 엄마도 그래 살지 않느냐. 그래갖고 내가 엄마를 붙들고 울었어요.”

할머니는 그렇게 딸 셋, 아들 둘을 낳고 기르며 평생을 살았습니다. 할머니에게 중요했던 것은 엄마가 “시집 가면 죽어도 그 집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나를 시집올 적에 나를 끌어안고 ‘죽어도 이 집에서 살아야 한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가 오늘날까지 윤씨 가문에 이래 살아요.”


■“손을 잡으면 결혼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손경애 할머니는 ‘손을 잡아서’ 결혼했습니다. 할머니를 좋아했던 ‘친구 오빠’와 함께 걷다가 ‘친구 오빠’가 손을 잡았습니다. “손을 잡았다고 결혼해야 한다”고 해서 결혼하게 됐습니다. “한 동네 친구 오빤데 나는 어리니까 모르지. 8년 차이였다니까. 연애가 뭔지도 몰라 그때 당시. 자꾸 부닥쳐. 만나져. 한 동네라 ‘오빠 안녕하세요’ 지나가고 그랬지. 어느 날은 손을 잡고 어디 신작로 길이 있잖아요. 달밤에 저만큼 갔어. 근데 고놈의 손 잡았다고 결혼해야 한다네.(웃음) 그때 당시는 손 잡은 게 해야하는 것인 줄 알았어.”

‘손을 잡으면 결혼해야 하는 거라니.’ 김영분 할머니가 거듭니다. “옛날에는 손만 잡으면 애기 서는 줄 알았어.” 손 할머니도 손을 잡으면 아기가 생기는 줄 알았습니다. “저녁에 잘 때 손을 잡잖아. ‘어머 저만치 가요 저만치 가요. 애 생기 애 생기 저만치 가요’ 그랬다니까. ‘이 사람아 손 잡아서는 애기가 안 생겨.’ 손만 잡으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거짓말 한다고(했다고) 내가 막 그랬지. 그때는 나를 좋아하니까 자기가 말 그렇게 했다고 (하더라고). (남편이) 손 잡아서는 절대 애기가 안 생긴다고 해서 알았어.(웃음)”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하얀 엄지발가락이 멋있었어요”

장선자 할머니는 선을 보며 남편을 만난 이야기를 전해줬습니다. 선 보러 온 남편이 구멍 뚫린 양말을 신고 나왔는데 그 구멍 뚫린 양말 사이로 보이는 하얀 엄지발가락이 갑자기 멋있어 보였다고 하는데요.

“내가 시컴시컴하잖아. 저 양반이 저렇게 생겨도 젊어서는 이쁘더라고. 하얗고 발꾸락이 푹 나왔는디. 어떻게 말하면 미운 마음이 들지. 선을 보러 온 자식이 구녕난 양말을 신고왔나 싶은게. (그런데) 멋있어 보이더라고. 하얗게 나온 게. 거기에다가 마음을 두고 보고. 정도 들고 정도 주고. 마음에 들어서 인자 연애를 하게 됐어.”

결혼을 한 뒤 남편을 믿어야겠다는 생각은 의외의 순간에 하게 됐습니다.



이모가 장 좀 봐달라고 했으나 돈을 잃어버렸습니다. 할머니가 돈지갑을 잃어버린 것을 알았을 때 남편은 뭐라고 했을까요?

“사실은 이모가 보리쌀 두 가마니 값을 주면서 장을 봐오라 했는디 나가 장에 가서 고기를 사놓고 살라고 본께 주머니에 빠져뿔고 없는가(없는거여). (남편이 알게 돼서) 잊어버렸다 한께 그렇게 근심을 하고 그냐고 걱정하지 말으라고 (하더라고). ‘보리쌀 두 가마니값 벌어다 놓은 거 있지 않냐’고. 그놈을 갖고 대체를 해주라(고). 우리 둘이만 알고 이모 보고는 이야기하지 마래. 서로서로 속상하고 그사람도 그냥 있을람 미안하고 우리도 미안하고. 우리 돈으로 장을 봐서 밥을 해줘라 그래. 그런께 (갑자기) 하늘 같이 높으게 보인거여. 신랑이 막 하늘 같이 높으게 보여. 어마 저런 사람이 또 있구나. 나 인생 당신한테 맡겨도 되겠다. 평생 따라 살게.”


장선자 할머니의 그림. 할머니에 비해 할아버지를 굉장히 잘 생기게 그렸다.



할머니가 그린 그림 속 할아버지는 미남입니다. “나 눈에 그때 잘 생겼단께. 엄청 잘생겼어. 지금도 나가 보면 미출은 아녀(남에게 뒤떨어지는 외모는 아니라는 뜻). 그니까 따라 살아. 눈꺼풀이 쓰이고 사람이 미운정고운정 다 정이 들고 그러니께. 나가 보기에 괜찮애.”

할아버지께 “할머니는 별로 안 이쁜데 할아버지 잘생기게 그렸잖아요”라고 물으니 할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과찮아요.” 무슨 뜻인가 했더니 ‘과분한 칭찬을 했다’는 뜻이랍니다. “(할머니는) 지금도 잘생기셨다고 해요”라고 하니 할아버지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웃음)


장선자 할머니 부부.




세월은 젊음을 가져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제 귀가 잘 안 들립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참말로 나가 쳐다보면 한숨스러와. 귀가 먹어갖고 듣도 못하제 눈이 어둡다고 나를 저다 놔두고도 못 본다 해. 저거 오면 나를 못 본다 해. 자네 안 보이네 그래. 죽으라 그래도 죽도 안해. 때가 되면 죽을 거이라네.” ‘죽으라 했다’고 말하지만 목소리에는 애정이 담뿍 담겨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단어에 할머니의 애정이 겹쳐지니 서글펐습니다.

■“질려서 덴푸라 쳐다보기도 싫대요”

자식들은 귀하고 애잔합니다. 그러나 잘해주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손경애 할머니는 재작년 딸들에게 덴푸라, 피아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재작년이구나 내가 그랬어. 덴뿌라 넣고 무 넣고 시원하게 국물이 맛있더라. (딸은) 엄마 싫어. 왜? 그거 맛있을거 같은디. 아이 우리 학교 다닐때 질려버려갖고 싫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때는 300원어치 사면 요만큼이나 줘. 그놈 애기들 서이 도시락 쌀라니까 철냄비 하나를 볶아부렸지. 질려버렸다요. 싼 게 많이 준 게 많이 준 것만 했겠지. 작은 딸은 작년에서야 나는 얼마나 피아노가 치고 싶어죽겠는데 엄마가 안 가르쳐줬다고. 그때는 먹고 살기 힘드니까 피아노 가르칠 여유가 없어. 엄마는 그걸 몰랐다. 세상에 그랬구나. 미안하다. 그래놓고 마음이 며칠 동안 아픈거여. 새끼를 낳으면 지들 하고 싶은 걸 시켜야 하는데 엄마가 되어서 그런 것도 못해주고.”

“새끼를 낳으면 지들 하고 싶은 걸 시켜야 하는데 못해줬다”는 말이 마음을 울립니다.

황지심 할머니는 작은 아들이 군대에 있을 때 면회를 못 갔습니다. 큰아들은 대전에서 군복무를 해 대전에 살던 고모와 함께 면회를 갔지만 작은 아들이 군에 있을 때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목포에서 대학을 졸업했을 때도 못 갔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너무 큽니다. “그때는 돈 5만원이 왜 그리 큰 돈이었을까요이. 돈을 5만원을 금방 쓰고 택시비도 없이 와부려. 택시비를 (주머니에) 여고 있어야 해. 우리 아저씨가 신만 신고 나가면 돈을 여고 있어야 해. 항상 애가 터져. 애도 없어. 애도 쓸개도 녹아버리고 없어 나는.”

■“참 사는 게 기막히게 살았어요”

인생의 고비는 많았습니다. 지금 사람들로선 상상하기 힘든 고비입니다. 김영분 할머니는 슬픈 기억을 꺼내놓았습니다. 첫 아이를 낳고 얼마 안돼 잃었던 기억입니다.

“딸이라 낳아놓고 보니까. 아는 똑 요만해. 먹지를 못해서. 고게 살금살금 젖을 먹고 아가 통통하게 살이 쪘어. 아홉달을 크더니 한날 아침에 (남편이) ‘얼른 아 자기 전에 빨리 먹고 그래 아 깨면 젖주자’고 그래요. 그런데 아가 자꾸 자더라고. 자는 정기(경기)가 났어. 입이 자꾸 돌아가더라고. 깨워갖고 젖을 주면 빨다 말고 또 빨다 말고. 이상하다 싶었어. 야가 암만 해도 이상하다고. 내가 그러니께 이래 만지면은 다리를 죽죽 뻗기만 해. 침 놓는 이웃 할머니를 데리고와서(왔더니) 야는 자는 정기네 큰일났네 (하는거야). 병원에를 업고 가자니까 신랑과 둘이 갔지. 데리고가니께 병원에서 시간 늦어서 안된대요. 집에 데리고가니까 금방 죽대. 그게 죽어버렸어. 그래갖고 없앴어. 참 사는게 기막히게 살았어요.”

“참 사는 게 기막히게 살았어요”라는 할머니 말에 짐작할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느껴졌습니다.



‘치마 입고 애기 업고 밥하고 시장 가고.’

권정자 할머니의 그림에는 할머니들의 삶이 녹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들에게도 ‘꿈’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꿈을 기록한 글들은 뭉클합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걸까요. ‘늙는 것’은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장선자 할머니는 그림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나는 파란 하늘을 처다보면 왼지(왠지) 내 마음은 한없이 쓸쓸한 마음이 든다.” 왜 이렇게 쓰셨을까요?

“내가 이렇게 늙어지고 몰라지고. 나도 푸른 하늘처럼 저렇게 파랗게 훨훨 할 때도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시들어지고 누렇게 변한갑다 생각이 들고. 나무를 보나 들판을 보나 항상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면 쓸쓸해.”

할머니들은 인터뷰하러 온 제게 계속 “아무것도 모른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대하소설’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내라는 역할, 어머니라는 역할로 살아온 할머니들.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웠지만 슬펐습니다. 김중석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시 보러 오셨던 분들이 의아했던 게 그림은 너무 아름다운데 이야기는 너무 슬프다는 거예요. 두 가지 정서가 모이니까 슬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거죠.”

할머니들의 글과 그림을 모은 책 제목은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남해의 봄날)입니다. 정말 할머니들이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을까요? 장선자 할머니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남에게는 엄격해지고 내게는 너그러워지나보다.”

할머니들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할머니들의 글귀에서 인생의 진실을 엿본 기분이 듭니다.




임아영 기자 layk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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