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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에서 펴낸 책과 작가, 그리고 회사 이야기를 소개한 언론 보도입니다

국민일보_행복은 일상 속의 소소한 것에서 나온다

namhaebomnal
20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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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김효경 지음, 남해의봄날/208쪽, 1만6000원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에 나오는 작은 도서관 ‘밤토실’. 한 엄마가 이 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도서관과 학교는 마을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남해의봄날 제공 ⓒ이신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운영하던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의욕을 잃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났고 때론 분노가 치밀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날들은 지옥에 가까웠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이듬해 그녀의 가족은 한 마을로 이사했다. ‘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는 그녀가 이 마을에 대해 쓴 책이다.

저자 김효경(44)씨는 프롤로그에서 “마을에서 나는 아침에 설레며 눈을 떴고 비관과 우울의 안개가 조금씩 걷혔다. 내가 왜 이 마을에서 행복해졌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책을 쓴 가장 큰 동기”라고 밝혔다. 그녀는 이 마을에 사는 40여명에 대한 인터뷰를 바탕으로 공동체의 관계망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의미 있고 즐겁게 만들어 가는지를 기록한다.

이사의 직접적 계기는 전셋값 폭등이었다. 보증금이 더 싸고 아이가 입학할 초등학교가 가까운 주택으로 이사 가기로 했다. 그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유치원에 다녀온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오늘 시골 마을에 갔다 왔어. 논에서 썰매도 타고 고구마도 구워 먹었어. 도서관도 있어. 이름이 ‘밤토실’이래. 예쁘지?”

가족은 늦가을 이 마을의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이듬해 봄,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김씨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땅속에 숨어 있던 수억 개의 씨앗이 피어올랐다. 죽은 듯 겨울을 견디던 나무줄기에 마술처럼 푸른빛이 돌더니 곧 목련, 개나리, 라일락이 피어올랐다. 나는 기미가 느는 줄도 모르고 봄볕에 주저앉아 젖은 몸과 마음을 말렸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 자주 오갔다. 첫 손님은 딸의 친구들이었다. 얼마 뒤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아린 엄마, 나랑 산책할래”라고 물었다. 이후 이 엄마를 따라 동네 사람을 하나둘 사귀고 한 학기가 지나갈 즈음 동네 엄마들을 거의 다 알게 됐다. 마을의 중심은 학교와 도서관이었다. 도서관 이용자는 주로 마을 초등학생과 그 엄마들이었다.

아이들은 대개 도서관 문을 열고 가방만 던져 넣은 후 마당에서 딱지치기를 했다. 여름엔 나무에 기어오르고 겨울엔 썰매를 탔다. 도서관 책상에는 ‘필요하시면 가져가세요’라는 포스트잇이 붙은 물건들이 종종 놓였다. 김씨 역시 밑반찬과 식재료, 아이 옷과 학용품 같은 것을 자주 들고 왔다. 놀러 간 집 식탁에는 어제 받은 것과 같은 맛의 콩자반이 놓여 있기도 했다.

이 마을에서 김씨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가득차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해 넘게 사니 요일마다 소모임이 생겼다. 월요일엔 독서, 화요일엔 미술, 수요일엔 월 1회 학부모회, 목요일엔 프랑스어, 금요일엔 우쿨렐레, 토요일엔 마을 역사 연구 모임에 나갔다. 대부분 공짜였다. 마을 사람들이 재능과 공간 기부 형식으로 모임을 꾸렸다.

마을에 산 지 세 번째 해쯤 김씨가 치과에 갔을 때다. 간호사가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너무 밝아서 제 기분이 다 좋아져요.” 그녀는 일생의 꿈을 마침내 이뤘다. 명랑한 사람이 되는 것. 마을이 그녀를 바꾼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아끼고 배려했다. 돈이 많은가보다 누가 더 많이 베풀 줄 아는 어른인가로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그녀도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던 삶의 불안이 사라지고 안정감을 느꼈다. 김씨가 인터뷰한 주민들도 비슷했다.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기다려 주는 것 같다고 할까? 존중받는 느낌이에요. 이 악물고 버틸 필요가 없으니 마음의 독기가 빠지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도 그래요. ‘엄마 이 동네 와서 착해졌어’ 하던데요. 하하.”

어떻게 이런 마을이 가능할까. 1990년 중반부터 마을 교회를 중심으로 개발과 관련해 주민들이 오래 연대하고 투쟁한 역사를 갖고 있다. 도서관도 2006년 목사가 사택을 내놓아 만든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도서관과 학교를 중심으로 자주 교류하는 것이 마을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한 원천인 것이다.

김씨는 3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좋은 관계가 사람을 선하게 만들고 그 선한 기운이 서로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더라. 그게 꼭 시골이란 장소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자주 만나면 그럴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며 “큰 성공이나 부가 아니라 땅에서 싹이 나는 걸 보거나 자동차 미등을 깜빡이며 친구와 인사를 나누는 데 작은 행복을 느끼면 그게 모여 삶에 큰 행복감을 준다”고 했다. 작가는 마을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고, 독자들이 기꺼이 모른 척해주길 바란다.



그는 책에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지금 내게 마을이란 같이 꽃을 심던 친구와 작은 도서관, 그 도서관 안에서 비비며 놀던 아이와 어른들, 그들과 나눴던 음식과 그들의 부엌에서 보냈던 시간, 이웃과 내 아이가 놀고 먹고 씻으며 아웅다웅했던 기억이다.”

사람들과 일상에서 작은 것을 나누는 것, 사려 깊은 대화가 삶의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책이다. 행복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기사 원문 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75930&code=13150000&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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