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남해의봄날은 콘텐츠를 담는 가장 아름다운 그릇, 책으로 소통합니다

로컬북스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초록 - 제주 이시돌 목장 이야기

6607e1d606c13.jpeg


황무지였던 제주의 땅을 초록으로 물들인

임피제 신부와 이시돌 목장의 70년 감동 스토리

그 따듯한 온기의 기록!





<책 소개>

황무지였던 제주의 땅을 초록으로 물들인

임피제 신부와 이시돌 목장의 70년 감동 스토리

그 따듯한 온기의 기록

제주 한림의 드넓은 초록 초원에는 수십 년간 제주도와 한국 사회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 이시돌 목장이 있다. 그 중심에는 故 임피제(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가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53년, 25세의 나이에 한국을 찾은 임 신부는 가난하고 고립되었던 섬 제주에 찾아와 평생을 바쳤다. 임 신부는 선교보다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는 데 앞장섰다. 굶주림에 지치고 좌절한 사람들에게 스스로 일어설 힘과 희망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이시돌 협회는 목장을 짓고 축산주식회사를 설립해 지역의 산업 기반을 만들었고, 양모 니트 브랜드 한림수직으로 여성들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황무지였던 중산간 지역은 드넓은 초원으로 뒤바뀌고, 마을에는 활기가 돌았다.

이 책은 임피제 신부가 아일랜드를 떠나 제주에 도착한 때부터 이시돌 목장의 탄생과 역사,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70여 년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룬다. 단순히 임피제 신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제주의 역사부터 아일랜드에서 출발한 성골롬반외방선교회의 영향이 어떻게 제주 한림에서 이시돌 목장으로 이어졌는지 그 필연성의 근거를 좇아가며 이야기를 서술하여 이해의 폭과 깊이를 넓혔다. 21세기 이시돌 목장의 변화와 비전을 이야기하는 마이클 신부(현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의 인터뷰도 함께 담았다. 또한 생전 임피제 신부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작가 준초이의 사진 화보와 글이 더해져 더욱 생생하게  이시돌 목장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책의 수익금 일부는 이시돌 복지의원에 기부된다.



<저자 소개>

글쓴이 김태훈

지역문화정책과 문화콘텐츠에 관심이 많다. 경남도민일보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등에서 일했으며, 2011년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를 만들어 지역공동체와 로컬 기업 관련 강의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2016),  <지역공동체와 미디어>(2017), <야구하자 이상훈>(2019), <동네 철공소, 벤츠에 납품하다>(2021), <누구에게나 인권이 있을까?>(2022), <우리 국경일 제대로 알기>(2024) 등이 있다.


사진작가 준초이

동경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뉴욕에서 생업으로 광고 사진 실전을 쌓았다. 어느덧 사진 인생 50년, 점점 눈앞의 아름다움보다 대상이 보여 주는 삶의 서사에 매혹되어 사진 작업에 빠져들고 있다. 큐슈 국립 박물관, 파리 유네스코 미술관, 부산 시립 미술관, 스위스 다보스 등에서 전시했고, <백제>(2007), <수원화성>(2009) 등의 도록과 사진 에세이 <메이드 바이 준초이>(2004), <해녀와 나>(2020)를 출간했다.



<추천사>

 

“ 읽는 내내 마음이 뜨겁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감동적인 책!

넓은 사랑, 깊은 신앙, 초인적인 인내가 이루어 낸 기적의 기록.

다시 일어서는 희망의 푸른 섬을 독자에게 전하는 책입니다.”

이해인 수녀, 시인


“ 이 책은 스물다섯 살 아일랜드의 한 청년 신부가 제주도에서 90 평생을 살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복음서다. 그는 한국인보다 더 제주도와 제주도민을 사랑했다. 가난과 빈곤에 허덕이는 배고픈 양떼를 예수님처럼 돌보고 배불리 먹이신 선한 목자. 삶의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찾아준 그의 거룩한 삶은 왜 인생에서 이웃을 위한 무한한 사랑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지 진정 깨닫게 해준다.”

정호승 시인


“파란 눈의 아일랜드 신부님은 제주의 아픔을 보듬고 치유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신부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과 포용, 나눔의 메시지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이어 가겠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책 속에서>


아이들은 한참을 웃고 떠들다가 “미국놈, 미국놈” 외치며 급기야 손가락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어설프게나마 한국어를 배운 패트릭도 그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발걸음을 휙 돌려 다가서자 꼬마들은 흠칫 긴장된 표정으로 얼어 버렸다. 잔뜩 확장된 아이들의 동공은 온통 그의 입에 주목했다.

“나는 미국 놈 아니에요. 아일랜드 놈이에요. 그러니 아일랜드 놈이라고 불러 주세요.”

앙다물었던 아이들의 입술이 푸하하하 폭발했다. 몇몇은 배꼽을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p.57 제2장 아일랜드 놈 중에서

 

임 신부는 복음 전파보다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제주도는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조금만 노력하면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는 늘 제주도와 쏙 닮은 고향 아일랜드 도니골을 떠올렸다. 기근과 독립전쟁, 그리고 내전까지 겪은 아일랜드는 어렵사리 사회 안정을 찾았지만 경제적으로는 암흑기라 불릴 정도로 여전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북부 도니골은 지리적으로 고립된 곳이라 아일랜드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였다. 그곳에서 자란 임 신부는 ‘최소한의 삶의 조건’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p.76 제3장 돼지 신부 중에서


4월 초 중산간 일대는 초록보다 갈색이 훨씬 더 많기 마련인데 유독 이시돌 목장의 들판은 푸른 목초가 풍성하게 자라나 있었다. 급하게 달려 나온 임 신부 안내로 오 수석은 목장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축사에는 2만 마리에 가까운 돼지들이 몸집을 한껏 불리고 있었고, 들판에는 수천 마리 양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이 돼지들이 홍콩과 일본에 수출된다는 사실에 오 수석은 깜짝 놀랐다. 수출에 모든 걸 걸고 있던 정부 입장에서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림수직을 통해 천 명이 넘는 여성들의 일자리가 생겼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p.141 제5장 목장 중에서


이시돌 목장의 개척 농가 프로젝트는 정부의 원주지 복귀 사업과는 완전히 별개로 진행됐다. 정부 지원 사업이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시돌 목장의 개척 농가 프로젝트는 주택은 물론 창고와 돈사 등 부대시설, 그리고 넉넉한 토지와 가축을 처음부터 지급했고, 축산과 목초지 관리에 관한 교육까지 시켜 주는 파격적인 원스톱 서비스였다. 물론 개척 농가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수월한 과제는 아니었다. 당장 개인 농장으로 주어진 토지 3만 평을 거의 손수 개간해야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p.174 제6장 개척 농가 중에서


26세에 제주를 찾아온 임 신부는 본인이 만난 제주 사람들의 생애주기에 맞춰 관심을 확대해 나갔다. 20~40대까지 빈곤 탈출과 경제적 자립에 초점을 맞췄다면, 50대부터는 비영리 사업, 즉 복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임 신부가 60대에 접어들었을 때, 그와 처음 인연을 맺었던 제주 사람 대부분이 인생의 마지막 황혼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그분들의 마지막 순간에 집중됐다. 호스피스 병동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임무라고 생각했다.

p.205 제7장 돌봄 중에서


20세기에 이시돌 목장은 제주도와 한국 사회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존재였다. 해외 원조를 끌어다가 산업 기반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했다. 교육으로 주민을 성장시키고 땅을 나눠 자립을 도왔다. 국가와 사회가 외면하는 약자들을 돌보기 위해 비영리 사업을 펼치고, 영리 사업을 백분 활용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시돌 목장’이라는 이름을 하나의 브랜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오랜 실천으로 쌓아 온 신뢰가 이시돌 목장이라는 브랜드의 저력으로 자리 잡았다. 21세기 들어 기존의 영리 사업에 큰 변동이 일어났다. 일부러 없앤 것도 있고 스스로 사라진 것도 있다. 돌봄 사업의 요구는 높아지는데 영리 사업은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나 이시돌 목장이 쌓은 브랜드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청년 혁신가들을 불러 모았다. 이제 사람들은 이시돌 목장이 쌓은 유산 위에서 그들만의 시각으로 새로운 기회와 비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시돌 목장을 새로운 플랫폼으로 재발견한 것이다.

p.236 제8장 새로운 세대 중에서


“사실 임 신부님이 가장 뿌듯해하신 일 중 하나가 황무지였던 제주의 땅을 초록으로 물들인 것입니다. 이시돌 목장은 지속가능한 생태적인 농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전혀 안 쓰고, 땅도 갈지 않습니다. 자체 순환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친환경 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볼 수는 없어요. 우리도 수입산을 써야 할 때도 있고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도 쓰고 기름도 써야 하니까요. 어쩌면 우리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있는 거죠. 다만 수익성보다는 어떻게 하면 좀 더 환경에 도움 되는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p.266 인터뷰 중에서


바닷가에서 만난 해녀 할머니들과 임 신부님은 오랜동안 떨어져 살던 이산 가족 상봉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묻지도 않았는데 해녀 할머니 한 분이 내게 크게 소리지른다.

“우리에게 밥을 먹게 해 주셨지! 임피제 신부님이.”

생각해 보니 세끼 밥을 넘어서는 사랑이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p.301  사진작가 준초이가 만난 임피제 신부님과 성 이시돌 목장 중에서



<목차>

 

프롤로그          1954년 목포항 

제1장              두 개의 섬

제2장              아일랜드 놈

제3장              돼지 신부

제4장              소녀의 꿈

제5장              목장 

제6장              개척 농가

제7장              돌봄 

제8장              새로운 세대

에필로그          타인을 도우려는 마음 

 

인터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 

사진작가 준초이가 만난 임피제 신부님과 성 이시돌 목장 

임피제 신부와 이시돌 목장 연대기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