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으로 놀러오는 가족,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꽤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그래서 충무김밥은 어디 거가 제일 맛있냐?”는 것이다. 충무김밥. 사실 나는 이 충무김밥을 그리 좋아하질 않았다. 우선 그 돈 내고 사먹는 음식 중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현저히 낮았고 자연스레 포만감 역시 오래 가지, 아니 아예 생기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기왕 김밥을 먹어야 한다면, 충무김밥을 사먹느니 같은 가격으로 보통 김밥 두 줄을 사먹는 편을 훨씬 선호했다. 게다가 무릇 김밥이란, 옛날 분홍 소시지만큼이나 굵게 말아놓은 것을 그대로 움켜쥔 후 될 수 있는 한 입안 가득히 들이밀고 볼이 터져라 우걱우걱 씹어 먹어야 제 맛이라 믿고 있는 내게 충무김밥의 그 자잘한 크기가 특정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리 만무했다. 그런데 통영에서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며 ‘본의 아니게’ 충무김밥을 자주 먹다 보니 슬슬 그 매력을 알게 되었다.
여행객들이 반한 풍요로운 바다의 맛
지금은 통영으로 불리지만 원래 이곳은 통영군과 충무시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니까 충무김밥은 아직 통영과 충무가 서로 분리되어 있던 시절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부산에서 출발해 통영(당시 충무)과 비진도, 연화도, 욕지도 등의 섬을 한 바퀴 돌아오던 명성호의 기항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게 천구백육십 년대 초반.워낙 바다가 풍요로운 곳이었기에 당시 많이 잡히던 꼴뚜기와 주꾸미, 홍합 등을 양념에 버무려 무김치와 함께 여객선 승객들에게 팔기 시작했는데, 김밥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찬 형식으로 따로 분리를 한 것은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만든 충무김밥을 파는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거의 대부분 아낙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가 워낙에 많아 명성호 혹은 부산과 여수를 오가던 금성호가 지금의 통영여객터미널에 접안하면 일대는 온통 그들의 ‘고무 다라이’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도 ‘충무김밥 거리’로 인식되고 있는 곳이 바로 충무김밥의 발상지인 셈이다.
충무김밥 시식회, 누구와 어떻게?
이렇게 시작된 충무김밥이 이제는 그야말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오랫동안 통영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제 그 모습과 맛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제 충무김밥은 먹을 게 못 된다”며 서글픈 표정을 짓기도 한다. 실제 처음 충무김밥이 만들어졌을 때는 꼴뚜기, 주꾸미, 참홍합 등이 주재료였지만 팔십 년대에는 갑오징어로, 이제는 일반 오징어와 공장에서 만든 ‘오뎅’(물론 어묵이 맞는 말이지만 어감 때문에 식감이 저하되는 현상 때문에 나는 가끔 오뎅을 고집하곤 한다.)으로 바뀌었으니 재료의 구성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양 역시 지금은 예전 것에 댈 것이 아닐 정도로 형편없이 적어졌단다. 하지만 비교할 기억 혹은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이도 했다. 그래서 제대로 충무김밥의 맛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어떤 곳의 충무김밥을 선택하느냐는 문제였다. 워낙에 충무김밥집이 많다 보니 몇 곳을 추리는 데에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역사와 지명도 등을 고려해 다섯 곳을 선정했다.
그 다음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느냐는 것이었다. 맛이라는 게 워낙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았고, 덕분에 총 열 명의 평가단(!)을 꾸릴 수 있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이십대와 오십대 여성 각 한 명, 서울 출생으로 통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삼사십대 남성 세 명과 여성 두 명, 충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살고 있는 사십대 남성과 서울토박이 육십대 부부가 바로 그들이었다. 전라도와 강원도 출신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어쨌든 될 수 있는 한 지역안배(!)를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부탁한 평가 항목은 김밥의 식감, 해물무침과 김치의 맛, 그리고 매운 정도와 보기 좋은 정도 등이었다.
감별방식은 단순했다. 어느 집에서 사온 건지 알 수 없도록 해놓은 다섯 개의 김밥을 펼쳐놓고 자유롭게 먹으며 선호하는 김밥을 순서대로 적어 넣으면 되는 거였는데, 실제 진행은 그리 쉽게 되질 않았다. 하나씩 놓고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해 보였던 김밥들을 모아놓으니 이상하게 심각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먹어본 것을 다시 먹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입을 몇 번이나 헹구기도 했다. 그저 재미삼아 시작했던 일이었건만, 분위기는 이상하게 달구어졌다. 덕분에 충무김밥 품평회를 마치고 먹기로 한 한우 등심이 이미 다 익었다는 소식을 몇 차례 전했음에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뜰 생각을 않고 여전히 김밥을, 해물들을, 무김치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집중력이 오래 갈 수는 없는 법. 나중에 가서는 “아 몰라 몰라!”하는 푸념도 들리고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라며 울상을 짓거나 “다 맛있으니까 얼른 가서 고기 먹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아예 초반부터 “이렇게 애써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바비큐 그릴에 불을 붙이고 한우 등심에 밑간을 하던 참가자도 있었다. 처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이날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엉성했다.
비슷한 듯 개성 있는 충무김밥의 세계!
아무튼 그렇게 해서 취합한 결과는, 꽤나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명성을 자랑하는 맛답게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으며 뚱보할매김밥과 한일김밥, 풍화김밥 모두 고른 점수를 받았고, 옛날충무꼬지김밥은 전통적인 충무김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에 주목을 받았으며 엄마손 김밥은 다른 곳보다 재료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는 점에서 이채롭다는 평가가 많았다. 연령보다는 출신 지역에 따른 선호도 차이가 더 컸는데, 서울에서 생활해온 사람들은 풍화김밥을, 통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뚱보할매김밥을 선호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풍화김밥이 다른 것들보다 좀 더 단맛이 났고, 뚱보할매김밥은 김밥의 식감이 고들고들하며 김치와 해물무침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야말로 통영다운 맛을 자랑했다. 한일김밥 역시 ‘통영다움’에 속하는 맛이었는데, 덕분에 지금은 통영에서도 가장 큰 충무김밥집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게 통영 토박이들의 전언이었다. 통영에서 진정한 골수팬을 거느린 건 다름 아닌 옛날충무꼬지김밥이라고 한다. 처음 충무김밥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홍합과 오징어 등을 일일이 꼬치에 꿰어서 팔고 있었는데, 이곳은 좀 더 ‘하드코어’한 통영의 맛을 보여주고 있으니 기존 충무김밥에 식상해진 사람들이 도전하기 좋을 듯 싶었다. 엄마손 충무김밥의 경우 모나지 않은 맛이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의 입맛이란 그 성격만큼이나 제 각각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우리가 맛보았던 충무김밥 중 “맛없어서 못 먹겠다”는 평을 받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모아놓은 충무김밥들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충무김밥이 오랫동안 해안선을 따라 남해를 오가던 사람들의, 그리고 이제는 전국에서 몰려든 많은 여행자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 품평회에 참여해주신 고왕인 박사님, 이정희 YWCA 이사님, 휴석재 이상희 선생님, 하정선 작가님, 정보휘 실장님, 도남사회복지관 강미소 님, CSI 강용상 대표님과 남해의봄날 가족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
통영으로 놀러오는 가족,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꽤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그래서 충무김밥은 어디 거가 제일 맛있냐?”는 것이다. 충무김밥. 사실 나는 이 충무김밥을 그리 좋아하질 않았다. 우선 그 돈 내고 사먹는 음식 중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현저히 낮았고 자연스레 포만감 역시 오래 가지, 아니 아예 생기질 않았으니까. 그래서 기왕 김밥을 먹어야 한다면, 충무김밥을 사먹느니 같은 가격으로 보통 김밥 두 줄을 사먹는 편을 훨씬 선호했다. 게다가 무릇 김밥이란, 옛날 분홍 소시지만큼이나 굵게 말아놓은 것을 그대로 움켜쥔 후 될 수 있는 한 입안 가득히 들이밀고 볼이 터져라 우걱우걱 씹어 먹어야 제 맛이라 믿고 있는 내게 충무김밥의 그 자잘한 크기가 특정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리 만무했다. 그런데 통영에서 수많은 손님을 맞이하며 ‘본의 아니게’ 충무김밥을 자주 먹다 보니 슬슬 그 매력을 알게 되었다.
여행객들이 반한 풍요로운 바다의 맛
지금은 통영으로 불리지만 원래 이곳은 통영군과 충무시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니까 충무김밥은 아직 통영과 충무가 서로 분리되어 있던 시절에 생겨났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유추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부산에서 출발해 통영(당시 충무)과 비진도, 연화도, 욕지도 등의 섬을 한 바퀴 돌아오던 명성호의 기항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게 천구백육십 년대 초반.워낙 바다가 풍요로운 곳이었기에 당시 많이 잡히던 꼴뚜기와 주꾸미, 홍합 등을 양념에 버무려 무김치와 함께 여객선 승객들에게 팔기 시작했는데, 김밥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반찬 형식으로 따로 분리를 한 것은 쉽게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만든 충무김밥을 파는 사람들은,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거의 대부분 아낙들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가 워낙에 많아 명성호 혹은 부산과 여수를 오가던 금성호가 지금의 통영여객터미널에 접안하면 일대는 온통 그들의 ‘고무 다라이’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도 ‘충무김밥 거리’로 인식되고 있는 곳이 바로 충무김밥의 발상지인 셈이다.
충무김밥 시식회, 누구와 어떻게?
이렇게 시작된 충무김밥이 이제는 그야말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지만, 오랫동안 통영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제 그 모습과 맛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한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제 충무김밥은 먹을 게 못 된다”며 서글픈 표정을 짓기도 한다. 실제 처음 충무김밥이 만들어졌을 때는 꼴뚜기, 주꾸미, 참홍합 등이 주재료였지만 팔십 년대에는 갑오징어로, 이제는 일반 오징어와 공장에서 만든 ‘오뎅’(물론 어묵이 맞는 말이지만 어감 때문에 식감이 저하되는 현상 때문에 나는 가끔 오뎅을 고집하곤 한다.)으로 바뀌었으니 재료의 구성에서부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양 역시 지금은 예전 것에 댈 것이 아닐 정도로 형편없이 적어졌단다. 하지만 비교할 기억 혹은 추억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 이야기이도 했다. 그래서 제대로 충무김밥의 맛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어떤 곳의 충무김밥을 선택하느냐는 문제였다. 워낙에 충무김밥집이 많다 보니 몇 곳을 추리는 데에 고민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는데, 역사와 지명도 등을 고려해 다섯 곳을 선정했다.
그 다음은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느냐는 것이었다. 맛이라는 게 워낙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 다양한 연령대와 배경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찾았고, 덕분에 총 열 명의 평가단(!)을 꾸릴 수 있었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이십대와 오십대 여성 각 한 명, 서울 출생으로 통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삼사십대 남성 세 명과 여성 두 명, 충북에서 태어나 통영에서 살고 있는 사십대 남성과 서울토박이 육십대 부부가 바로 그들이었다. 전라도와 강원도 출신이 없는 게 아쉬웠지만, 어쨌든 될 수 있는 한 지역안배(!)를 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부탁한 평가 항목은 김밥의 식감, 해물무침과 김치의 맛, 그리고 매운 정도와 보기 좋은 정도 등이었다.
감별방식은 단순했다. 어느 집에서 사온 건지 알 수 없도록 해놓은 다섯 개의 김밥을 펼쳐놓고 자유롭게 먹으며 선호하는 김밥을 순서대로 적어 넣으면 되는 거였는데, 실제 진행은 그리 쉽게 되질 않았다. 하나씩 놓고 봤을 때는 그저 평범해 보였던 김밥들을 모아놓으니 이상하게 심각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번 먹어본 것을 다시 먹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입을 몇 번이나 헹구기도 했다. 그저 재미삼아 시작했던 일이었건만, 분위기는 이상하게 달구어졌다. 덕분에 충무김밥 품평회를 마치고 먹기로 한 한우 등심이 이미 다 익었다는 소식을 몇 차례 전했음에도 사람들은 쉽게 자리를 뜰 생각을 않고 여전히 김밥을, 해물들을, 무김치를 우물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집중력이 오래 갈 수는 없는 법. 나중에 가서는 “아 몰라 몰라!”하는 푸념도 들리고 “내가 뭘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나요.”라며 울상을 짓거나 “다 맛있으니까 얼른 가서 고기 먹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아예 초반부터 “이렇게 애써 만들어 놓은 음식들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바비큐 그릴에 불을 붙이고 한우 등심에 밑간을 하던 참가자도 있었다. 처음의 원대한 포부와 달리 이날 평가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더 이상 그럴 수 없을 만큼 엉성했다.
비슷한 듯 개성 있는 충무김밥의 세계!
아무튼 그렇게 해서 취합한 결과는, 꽤나 흥미로운 모습이었다. 명성을 자랑하는 맛답게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으며 뚱보할매김밥과 한일김밥, 풍화김밥 모두 고른 점수를 받았고, 옛날충무꼬지김밥은 전통적인 충무김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에 주목을 받았으며 엄마손 김밥은 다른 곳보다 재료에 신경을 더 많이 썼다는 점에서 이채롭다는 평가가 많았다. 연령보다는 출신 지역에 따른 선호도 차이가 더 컸는데, 서울에서 생활해온 사람들은 풍화김밥을, 통영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뚱보할매김밥을 선호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풍화김밥이 다른 것들보다 좀 더 단맛이 났고, 뚱보할매김밥은 김밥의 식감이 고들고들하며 김치와 해물무침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는, 그야말로 통영다운 맛을 자랑했다. 한일김밥 역시 ‘통영다움’에 속하는 맛이었는데, 덕분에 지금은 통영에서도 가장 큰 충무김밥집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게 통영 토박이들의 전언이었다. 통영에서 진정한 골수팬을 거느린 건 다름 아닌 옛날충무꼬지김밥이라고 한다. 처음 충무김밥이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홍합과 오징어 등을 일일이 꼬치에 꿰어서 팔고 있었는데, 이곳은 좀 더 ‘하드코어’한 통영의 맛을 보여주고 있으니 기존 충무김밥에 식상해진 사람들이 도전하기 좋을 듯 싶었다. 엄마손 충무김밥의 경우 모나지 않은 맛이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의 입맛이란 그 성격만큼이나 제 각각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우리가 맛보았던 충무김밥 중 “맛없어서 못 먹겠다”는 평을 받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모아놓은 충무김밥들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충무김밥이 오랫동안 해안선을 따라 남해를 오가던 사람들의, 그리고 이제는 전국에서 몰려든 많은 여행자들의 입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 품평회에 참여해주신 고왕인 박사님, 이정희 YWCA 이사님, 휴석재 이상희 선생님, 하정선 작가님, 정보휘 실장님, 도남사회복지관 강미소 님, CSI 강용상 대표님과 남해의봄날 가족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