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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스튜가 함께한 여행의 추억들 - 통영 홍합



통영에 내려와 살면서 가끔씩 결핍을 느낄 때가 있다. 대부분은 서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것들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음식에 대한 목마름인데, 특히 신혼생활을 했던 홍대 근처에서 무시로 드나들던 유럽식, 일본식 혹은 인도식 음식에 대한 갈증은 부산에나 가야 그나마 조금 풀릴 정도다. 그래서 가끔씩 우리 부부는 “이래서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나온 모양”이라며 웃곤 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것들, 그러니까 스페인식 샌드위치라든지 일본식 냉라면, 인도에서 온 주방장이 만든 커리와 난 같은 것들을 아예 모른 채 살았다면 문득 배 속 어딘가가 아니라 마음 속 어딘가에 구멍이 난 것 같은 허기를 느끼지 않아도 좋았을 거라는 뜻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빠다 맛’에 대한 향수는 평생을 가도 지우기 힘든 것일 테니 다시 서울로 혹은 대도시로 돌아가 살지 않는 이상 참는 수밖에.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간단한 건 우리가 만들어 먹을 수도 있잖아?”
중앙시장에 무더기로 쌓여 있던 홍합을 보며 아내가 내게 건넨 말이었다.

 

우선 홍합을 샀다. 일반적으로는 반양식 혹은 반자연산이라 불리는 것과 달리 커다란 자연산 홍합이었다. 통영에서는 멍게 혹은 굴을 키우기 위해 바다 속에 내려놓은 종패나 수화연(종패를 매달아 놓은 밧줄)에서 홍합이 저절로 자란다. 다른 곳에서는 종패장 등에서 인공적으로 키운 홍합을 부착시켜 바다에 내리는 것과 달리 통영 바다에서는 별다른 작업이 없어도 시기에 따라 알아서 잘 큰다. 하지만 기왕 해먹는 김에 좀 더 맛있는 홍합으로 요리를 해보자는 생각에 한 손으로 다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홍합들을 골랐다. 좌판의 아주머니는 “이리 큰 기는 해녀들도 못 따고 남자 잠수부들이 들어가 따오는 기라”라며 홍합의 품질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물 좋은 홍합이 손질하기도 좋은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바닷속에서 살아온 놈들이다 보니 껍데기에 지저분한 것들이 많이 붙어 있었는데, 그것들을 모두 제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신 초기인 아내가 먹을 것이었으니 다른 때보다 훨씬 더 정성을 들여야 했다. 그랬으니 홍합을 씻는 데에 동원된 기구들만 해도 철수세미, 가위, 칼, 식사용 나이프 등등 족히 대여섯 개는 됐다.

 

함께한 여행의 추억을 소스로 한 홍합 스튜 
내가 그 괴물 같은 홍합들과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아내는 밑준비를 하고 있었다. 냄비에 레몬과 대파, 무, 월계수잎, 후추 등을 넣고 화이트 와인으로 채운 후 내가 다듬어놓은 홍합을 모두 올린 후 뚜껑을 닫았다. 우선 첫 번째 과정이 끝났다. 냄비가 한 번 팔팔 끓어오르길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괜히 신이 났다. 오랜만에 색다른 음식을 먹게 되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아울러 홍합을 끓이고 있는 냄비의 진가 역시 오랜만에 빛을 발하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무겁고 두꺼운 주물 냄비를 절실히(!) 원했던 건 아내가 아니라 나였다.

 

 

결혼 2년 차가 되던 해에 우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원래 신혼여행 목적지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자리를 구할 수가 없어 가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랬으니 시간이 흘러 그곳으로 향하기 전의 우리에게는 이런저런 계획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드리드 근처의 아울렛에서 몇 가지 주방용품을 구입하는 것도 꼭 해야 할 일 중 하나였다(물론 그 역시 내가 세운 계획이었다). 아마 지금 다시 사오라 하면 절대 못 할 일이었다. 부피도 부피거니와 그 주물 냄비와 그릴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물론 당시에도 꽤나 고생을 했다. 그 많은 짐을 짊어지고 또 끌면서 포르투와 리스본을 거쳐 한국까지 돌아왔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수고스러움 덕분에 우리는 꽤 그럴듯한 홍합 스튜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며 몇 년 전의 무모함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마드리드에서 먹었던 빠에야도 떠올랐고 포르투 특산인 삼십 년 산 포트와인의 달콤함과 향기로움도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에그타르트의 고향인 리스본에서 먹은 청어 구이와 안심 스테이크의 부드러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지경에 이르자 나와 아내는 어서 홍합 스튜가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우리 마음속의 ‘빠다향’에 대한 그리움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었다.

 

한소끔 끓어올랐던 냄비 속 내용물을 받쳐둔 체에 걸러냈다. 아직 뜨거운 냄비에 이번에는 올리브유를 두르고 양파와 마늘, 토마토와 쥐똥고추를 넣고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를 붓고 이어서 레드와인과 육수를 첨가한 후 파슬리를 뿌렸다. 조금씩 끓기 시작할 무렵 입을 쩍쩍 벌리고 있던 홍합들과 시장에서 껍질을 벗겨 팔던 새우를 투하했다. 이미 한 번 익힌 것이기에 이 역시 한소끔 끓이기만 하면 충분했다. 그리고는 미리 차려놓은 상에 냄비를 올려놓고 힘들게 다듬었던 홍합의 속살을 포크로 꾹 찔렀다. 보통의 홍합들보다 훨씬 깊게 포크가 박혔다. 살의 탄력 역시 술집에서 기본적으로 깔아주는 홍합탕의 그것과는 천양지차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 커다랗고 두터운 홍합을 입 안에 넣었을 때의 충만감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 게다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국적 밥상의 향기 덕분에 나와 아내는 홍합을 까먹는 내내 우리가 함께 다녔던 여행에 대해 그리고 그곳에서 먹었던 음식에 대해 더 이상의 갈증이나 아쉬움을 느낄 필요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물론 상을 정리할 무렵에는 “나가사키에서 먹었던 카스테라가 참 맛있었는데 말이지”라는 한숨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기도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 이야기의 주인은 나였고.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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