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조개가 가장 많이 나는 섬 학림도의 원래 이름은 ‘새섬’이다. 한자명은 새섬을 훈차한 ‘조도鳥島’. 1872년 제작된 통영 지도에도 조도란 지명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조도등대’, 달아마을, 척포마을과 학림도 사이의 물길은 지금도 ‘조도수로’라고 불린다. 1900년대 초, 울창한 솔숲에 학이 많이 찾아와 서식하면서 학림도鶴林島라고 개명했으나 아직도 섬사람들은 새섬이라고 부른다.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새의 모양을 닮은 새섬. 이 새섬에 조개가 무수히 많이 나는 것은 운명일까, 우연일까?
중국 유교의 경전인 <예기>에서는 “꿩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큰 조개가 되고, 참새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작은 조개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1803년 김려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에서도 새와 조개의 관계를 “조개는 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새가 변해서 된 것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 새조개의 경우 조갯살의 모양이 마치 새의 부리나 날개의 모양과 흡사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새조개에 대해 ‘조가비가 두껍고 미끄러우며 참새 빛깔에 무늬가 참새 털과 비슷하여 참새가 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된다’고 기록할 정도다.
직접 조개밭에서 조개를 캐보면, 좀 더 선조들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조개밭에는 작은 게와 작은 생선, 고동 등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많아 갈매기를 비롯한 새들이 자주 내려앉기 때문이다. 조개밭을 자주 찾는 새들과 새를 닮은 조갯살 모양까지. 선조들이 새가 변해 조개가 된다고 기록하고도 남을 만하다.
섬사람들의 삶을 채워주는 부엌, 큰시미
학림도는 섬 전체가 조개밭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언제부터 조개가 많았습니까”하고 여쭈니 “우리 할매에 할매, 그 할매에 할매 때부터……”란 대답이 돌아온다. 섬에 사람이 살기 전부터 조개가 많았으리라.
조개는 학림도 사람들에게 소중한 재산이자 그들만의 삶 깊숙이 스며든 문화다. 지난해 방문한 학림도에서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한여름도 지났으니 적조가 찾아왔을 리도 만무한데 학림도 주변의 바닷물 빛이 온통 붉은 색깔로 변한 게 아닌가! 마침 지나가는 섬 주민에게 물었다.
“저거요. 조개가 난(알)을 싸서 그렇심니다.”
조개가 산란한 알이 바닷물에서 수정해 2~3주간 부유 생활을 하는데, 학림도 전체에 얼마나 조개가 많은지 학림도 주변 바다 빛이 온통 붉게 변한 것이었다. 그 바다가 학림도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부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을 주민들이 조개를 캐거나, 치패를 뿌려 기르는 곳을 조개밭이라고 하는데, 학림도는 큰시미(학림도 앞 조개밭의 이름), 작은시미, 마을 앞 갯벌까지 모두 조개밭이다. 마을 앞 갯벌은 매립해 물양장이 되었지만 큰시미, 작은시미 조개밭은 굉장히 넓다. 특히 큰시미 해안은 썰물이 되면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물이 1킬로미터도 넘게 빠진다. 광활하게 드러난 모래벌판은 넓고 평평해 바닷가 갯벌이 아니라 평야 같은 느낌을 준다. 작은시미 또한 큰시미보다 좁지만, 웬만한 섬이나 통영 바닷가보다 넓다.
이 바다에서는 얼마나 많은 조개가 생산되는 걸까? 박능출(62) 학림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모두 바지락을 파도 좋다는 영令을 내리면, 30여 호 정도가 큰시미에서 바지락을 캐는데 이틀간 벌이가 천만 원이 넘는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그뿐만 아니라 조개의 품질에도 자부심을 보인다.
“학림도 모래질에서 큰 바지락은 서해안 뻘에서 자란 조개와는 달리, 알이 굵고 여물다. 바닷물에 2~3일만 해감하면 모래가 하나도 씹히질 않는다. 껍데기 역시 크고 색깔이 선명해 일본인들이 수입해 갈 정도다. 조개 상인들 역시 일본에서 구매 요청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여기 학림도 조개부터 찾는다.”
전복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학림도 바지락
조개의 섬 학림도에서 최고의 조개는 단연 바지락이다. 주민들도 임의로 바지락을 캘 수 없고 반드시 마을의 영이 내려야 캘 수 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반면 개조개는 물 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면 주민 누구나 캘 수 있다.
요리 방법 또한 다르다. 개조개는 해물탕이나 유곽이 대표적인 요리다. 그 이유는 조갯살이 많은 반면 질기기 때문이다. 개조개가 몇 개만 들어가도 해물탕이 풍성해진다. 개조개 유곽은 개조개 살을 잘게 다져 볶은 후 방아잎, 달걀, 밀가루, 된장을 주재료로 한 양념장과 고루 섞고, 조개 껍데기에 다시 담아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바지락은 다양한 요리가 전해진다. 바지락을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이틀 정도 해감한 다음 물을 붓고 끓여 내는 바지락국은 깔끔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바지락 자체의 맛이 좋으니, 별다른 재료 없이 국이 한소끔 끓을 때쯤 쪽파를 썰어 넣어주면 색감도 좋고, 입맛도 돋운다.
통영의 명절과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나물 중 탕수의 기본 재료가 바로 바지락이다. 적당한 크기의 바지락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볶아, 물을 붓고 끓인다. 깔끔한 탕수는 적게는 일곱 가지 많게는 열한 가지 넘는 재료로 만드는 통영 나물과 잘 어울린다.
학림도 섬사람들만 먹는 음식도 있다. 바로 ‘바지락 회무침’. 바지락 산지인 학림도에서는 신선한 바지락을 회로 바로 먹는다. 껍데기에서 깐 바지락 조갯살을 미나리, 배와 함께 초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먹는다. 시원하고 아삭한 배의 식감과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의 맛이 달큰하면서도 쫀득한 바지락 속살과 잘 어울린다. 심지어 학림도 사람들은 바지락 껍데기를 까다가 생 조갯살을 그대로 먹기도 한다.
바지락죽은 전복죽과 마찬가지로 조갯살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서, 불린 멥쌀과 함께 물을 붓고 끓여 낸다. 학림도 사람들은 “학림도 바지락 맛이 워낙 풍부하고 살이 많아서 전복죽 하고 바지락죽하고 같이 올려놓으면 바지락죽부터 묵는다”고 말할 정도로, 바지락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요즘이야 바지락을 많이 캐면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저장 방법이 별로 없었다. 말리는 방법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바지락 코(입수공)를 가늘고 길게 자른 대나무에 꿰어 이틀 정도 말린 바지락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이송도 편해 냉장고가 등장하기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약한 연탄불이나 장작불에 살짝 구운 바지락 꼬치는 맑은 소주나 청주 안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 맛도 맛이지만 꼬챙이에서 하나씩 빼 먹는 재미도 잊을 수 없다.
섬의 생태계와 문화를 지키는 지혜
학림도 역시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70~80대 노인층이 대부분이라 이젠 조개를 캘 여력이 없다. 조개가 무진장 쏟아져 나오는 황금어장을 바로 마을 앞에 두고도 주민들이 캐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는 ‘갯벌 체험’의 바지락 캐기 체험에 눈을 돌렸다. 일부 바지락 캐기 갯벌 체험장에서는 많은 체험객 유입으로 인해 갯벌이 상하거나 조개가 사라지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학림도 사람들은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큰시미와 외지 관광객들이 바지락 캐기 체험을 즐기는 작은시미를 구별해, 무분별한 바지락의 채취를 막아 갯벌을 보호하고 있다. 섬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섬 환경을 기반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섬 생활 문화 역시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학림도 주민들의 지혜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
통영에서 조개가 가장 많이 나는 섬 학림도의 원래 이름은 ‘새섬’이다. 한자명은 새섬을 훈차한 ‘조도鳥島’. 1872년 제작된 통영 지도에도 조도란 지명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 건설된 ‘조도등대’, 달아마을, 척포마을과 학림도 사이의 물길은 지금도 ‘조도수로’라고 불린다. 1900년대 초, 울창한 솔숲에 학이 많이 찾아와 서식하면서 학림도鶴林島라고 개명했으나 아직도 섬사람들은 새섬이라고 부른다.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새의 모양을 닮은 새섬. 이 새섬에 조개가 무수히 많이 나는 것은 운명일까, 우연일까?
중국 유교의 경전인 <예기>에서는 “꿩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큰 조개가 되고, 참새가 물속으로 들어가면 작은 조개가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1803년 김려가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 <우해이어보>에서도 새와 조개의 관계를 “조개는 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새가 변해서 된 것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실제로 새조개의 경우 조갯살의 모양이 마치 새의 부리나 날개의 모양과 흡사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새조개에 대해 ‘조가비가 두껍고 미끄러우며 참새 빛깔에 무늬가 참새 털과 비슷하여 참새가 변한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된다’고 기록할 정도다.
직접 조개밭에서 조개를 캐보면, 좀 더 선조들의 생각에 공감하게 된다. 조개밭에는 작은 게와 작은 생선, 고동 등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가 많아 갈매기를 비롯한 새들이 자주 내려앉기 때문이다. 조개밭을 자주 찾는 새들과 새를 닮은 조갯살 모양까지. 선조들이 새가 변해 조개가 된다고 기록하고도 남을 만하다.
섬사람들의 삶을 채워주는 부엌, 큰시미
학림도는 섬 전체가 조개밭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에게 “언제부터 조개가 많았습니까”하고 여쭈니 “우리 할매에 할매, 그 할매에 할매 때부터……”란 대답이 돌아온다. 섬에 사람이 살기 전부터 조개가 많았으리라.
조개는 학림도 사람들에게 소중한 재산이자 그들만의 삶 깊숙이 스며든 문화다. 지난해 방문한 학림도에서 신기한 장면을 보았다. 한여름도 지났으니 적조가 찾아왔을 리도 만무한데 학림도 주변의 바닷물 빛이 온통 붉은 색깔로 변한 게 아닌가! 마침 지나가는 섬 주민에게 물었다.
“저거요. 조개가 난(알)을 싸서 그렇심니다.”
조개가 산란한 알이 바닷물에서 수정해 2~3주간 부유 생활을 하는데, 학림도 전체에 얼마나 조개가 많은지 학림도 주변 바다 빛이 온통 붉게 변한 것이었다. 그 바다가 학림도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부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을 주민들이 조개를 캐거나, 치패를 뿌려 기르는 곳을 조개밭이라고 하는데, 학림도는 큰시미(학림도 앞 조개밭의 이름), 작은시미, 마을 앞 갯벌까지 모두 조개밭이다. 마을 앞 갯벌은 매립해 물양장이 되었지만 큰시미, 작은시미 조개밭은 굉장히 넓다. 특히 큰시미 해안은 썰물이 되면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물이 1킬로미터도 넘게 빠진다. 광활하게 드러난 모래벌판은 넓고 평평해 바닷가 갯벌이 아니라 평야 같은 느낌을 준다. 작은시미 또한 큰시미보다 좁지만, 웬만한 섬이나 통영 바닷가보다 넓다.
이 바다에서는 얼마나 많은 조개가 생산되는 걸까? 박능출(62) 학림 이장은 “마을 주민들에게 모두 바지락을 파도 좋다는 영令을 내리면, 30여 호 정도가 큰시미에서 바지락을 캐는데 이틀간 벌이가 천만 원이 넘는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그뿐만 아니라 조개의 품질에도 자부심을 보인다.
“학림도 모래질에서 큰 바지락은 서해안 뻘에서 자란 조개와는 달리, 알이 굵고 여물다. 바닷물에 2~3일만 해감하면 모래가 하나도 씹히질 않는다. 껍데기 역시 크고 색깔이 선명해 일본인들이 수입해 갈 정도다. 조개 상인들 역시 일본에서 구매 요청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여기 학림도 조개부터 찾는다.”
전복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 학림도 바지락
조개의 섬 학림도에서 최고의 조개는 단연 바지락이다. 주민들도 임의로 바지락을 캘 수 없고 반드시 마을의 영이 내려야 캘 수 있을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는다. 반면 개조개는 물 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면 주민 누구나 캘 수 있다.
요리 방법 또한 다르다. 개조개는 해물탕이나 유곽이 대표적인 요리다. 그 이유는 조갯살이 많은 반면 질기기 때문이다. 개조개가 몇 개만 들어가도 해물탕이 풍성해진다. 개조개 유곽은 개조개 살을 잘게 다져 볶은 후 방아잎, 달걀, 밀가루, 된장을 주재료로 한 양념장과 고루 섞고, 조개 껍데기에 다시 담아 석쇠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바지락은 다양한 요리가 전해진다. 바지락을 바닷물이나 소금물에 이틀 정도 해감한 다음 물을 붓고 끓여 내는 바지락국은 깔끔하면서도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바지락 자체의 맛이 좋으니, 별다른 재료 없이 국이 한소끔 끓을 때쯤 쪽파를 썰어 넣어주면 색감도 좋고, 입맛도 돋운다.
통영의 명절과 제사상에 반드시 오르는 나물 중 탕수의 기본 재료가 바로 바지락이다. 적당한 크기의 바지락을 자르지 않고 그대로 볶아, 물을 붓고 끓인다. 깔끔한 탕수는 적게는 일곱 가지 많게는 열한 가지 넘는 재료로 만드는 통영 나물과 잘 어울린다.
학림도 섬사람들만 먹는 음식도 있다. 바로 ‘바지락 회무침’. 바지락 산지인 학림도에서는 신선한 바지락을 회로 바로 먹는다. 껍데기에서 깐 바지락 조갯살을 미나리, 배와 함께 초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먹는다. 시원하고 아삭한 배의 식감과 새콤달콤한 초고추장의 맛이 달큰하면서도 쫀득한 바지락 속살과 잘 어울린다. 심지어 학림도 사람들은 바지락 껍데기를 까다가 생 조갯살을 그대로 먹기도 한다.
바지락죽은 전복죽과 마찬가지로 조갯살을 참기름에 달달 볶아서, 불린 멥쌀과 함께 물을 붓고 끓여 낸다. 학림도 사람들은 “학림도 바지락 맛이 워낙 풍부하고 살이 많아서 전복죽 하고 바지락죽하고 같이 올려놓으면 바지락죽부터 묵는다”고 말할 정도로, 바지락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요즘이야 바지락을 많이 캐면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저장 방법이 별로 없었다. 말리는 방법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바지락 코(입수공)를 가늘고 길게 자른 대나무에 꿰어 이틀 정도 말린 바지락은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고, 이송도 편해 냉장고가 등장하기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약한 연탄불이나 장작불에 살짝 구운 바지락 꼬치는 맑은 소주나 청주 안주로 안성맞춤이었다. 그 맛도 맛이지만 꼬챙이에서 하나씩 빼 먹는 재미도 잊을 수 없다.
섬의 생태계와 문화를 지키는 지혜
학림도 역시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젊은 사람들이 떠나면서, 70~80대 노인층이 대부분이라 이젠 조개를 캘 여력이 없다. 조개가 무진장 쏟아져 나오는 황금어장을 바로 마을 앞에 두고도 주민들이 캐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외지 관광객을 유치하는 ‘갯벌 체험’의 바지락 캐기 체험에 눈을 돌렸다. 일부 바지락 캐기 갯벌 체험장에서는 많은 체험객 유입으로 인해 갯벌이 상하거나 조개가 사라지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학림도 사람들은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큰시미와 외지 관광객들이 바지락 캐기 체험을 즐기는 작은시미를 구별해, 무분별한 바지락의 채취를 막아 갯벌을 보호하고 있다. 섬의 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섬 환경을 기반으로 차곡차곡 쌓아온 섬 생활 문화 역시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학림도 주민들의 지혜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