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는 통영에서 유일하게 남해안별신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의 전통을 잇는 섬이다. 통영의 섬에는 본래 남해안별신굿이 성했다. 2박3일은 기본, 5~7일 가량 굿이 펼쳐질 정도로 굿의 규모가 컸다. 나머지 섬에선 모두 사라진 남해안별신굿이 유일하게 죽도에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척박한 섬 환경의 특성상 큰 비용이 드는 남해안별신굿을 유지하기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죽도는 별신굿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부를 누리고 있었다. ‘돈섬’으로 불릴 정도로 죽도가 부를 축적하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은 바로 삼치잡이였다.
풍요를 불어온 삼치
욕지도에 고등어, 추도에 물메기가 있다면 죽도(대섬)에는 ‘삼치’가 있다. 통영 죽도는 마을 전체 40여 가구, 집집마다 삼치잡이배가 출어에 나설 정도로 삼치잡이로 유명세를 떨쳤다. 삼치잡이에 나선 배에는 선주와 선원 두세 명이 함께 작업했으니, 실로 마을 주민 전체가 삼치잡이에 종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도를 중심으로 용초도, 추봉도, 장사도, 매물도 일대가 삼치어장인데 그 중에서도 죽도 앞바다가 삼치 황금어장이었다. ‘삼치 떼가 나타났다’며 배 한 척이 포구를 나서면 30~40척의 배가 잇달아 출항해 죽도 앞바다를 가득 메웠으니, 실로 장관이었다. 멀리 조업을 나갈 필요도 없었다.
새벽 날 새기 전에 조업에 나선 삼치잡이 어선은 낚싯바늘이 60여 개가 이어진 공갈낚시를 물밑으로 드리웠다. 공갈낚시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보통 낚시가 갯지렁이나 새우 같은 미끼를 쓰는 반면 삼치낚시는 낚시 바늘에 은빛 비닐을 끼운 게 미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본래 삼치가 맬치(멸치)를 묵는다꼬. 그래서 맬치 떼를 쫓는 기라. 공갈낚시 바늘에다가 은빛 비닐로 끼워서, 배가 앞으로 나가고 물살에 팔랑팔랑 거리면서 맛있는 맬치가 눈앞에 노는 것 맨치 보이는 기라. 그기 맬치인 줄 알고 덥썩 물모 삼치가 잽히는 기지.”
전체 길이 70~80미터 가량인 삼치 낚싯줄을 한 번 풀었다가 감는 데는 30분가량 걸린다. 서너 번만 끄신바리(채낚기 조업)를 하면 배 어창은 물론 갑판이 가득 찰 정도로 풍어가 이어졌다.
‘조선 좋은 (물)고기는 모두 일본으로 간다’는 말처럼 삼치 역시 일본으로 수출되는 대표적인 수산물이었다. 일본에서 삼치는 초밥용 재료와 구이용 생선으로 각광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삼치 한 마리 가격이 80kg 쌀 한 가마니에 맞먹었다.죽도 주민들은 큰 부를 떠안겨 준 삼치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하다. 삼치는 죽도 사람들의 부엌과 바깥 살림을 책임지며 생활에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삼치의 변신은 무죄! 죽도의 삼치요리
이렇게 죽도의 번성에 큰 몫을 한 삼치이다보니 죽도에선 중요한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삼치를 꼭 올린다. 아무리 산해진미가 준비돼도 삼치 요리가 빠지면 2퍼센트, 아니 아예 상을 제대로 못 받은 것처럼 섭섭해한다.
삼치를 활용한 주요리는 삼치구이. 길이가 1미터 넘는 삼치는 몸통 전체를 한꺼번에 구을 수 없다. 그래서 머리와 꼬리 사이 몸통을 절반 크기 정도로 잘라낸 다음 가운데 뼈를 중심으로 포를 뜨듯이 잘라낸다. 한쪽 살만해도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합쳐도 못 덮을 정도. 불이 활활 타는 꽃불을 지나 약해진 불에, 석쇠에 넣은 삼치를 노릇노릇 구워 낸다.
제사상에는 삼치찜을 올린다. 찜통 위에 삼치를 넣어 찌는데, 제일 중요한 건 물이 삼치살에 튀지 않아야 한다. 30분 남짓 알맞게 익은 삼치에는 붉은 실고추와 통깨를 얹어 상에 올렸다.
살이 많은 삼치는 맑은 탕(지리)이나 매운탕 모두가 맛있다. 살이 많아서 기름기가 많을 것 같은데, 고등어 같은 붉은 살 생선과는 달리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무를 삐지게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된장을 풀어 조리는 삼치조림 역시 한번 먹으면 자꾸만 입맛 당기는 요리다.
삼치구이나 삼치찜, 삼치조림은 꼭 죽도가 아니라도 먹어볼 수 있다. 하지만 죽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바로 삼치회와 삼치초밥. 삼치를 잡는 현장, 바다가 바로 마을 앞이니, 신선도가 뛰어나기에 가능한 요리다. 두툼하게 썰어낸 삼치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특히 삼치초밥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일본 수출이 한창이던 80년대까지만 해도 섬 주민들이 입에 댈 초밥용 삼치가 남질 않았다. 요 근래 일본 수출이 줄어들면서, 섬 주민들도 가을 삼치 철에는 삼치를 초밥으로 즐긴다.
삼치는 설, 추석과 같은 명절과 집의 제사뿐 아니라 섬의 수호신 당산할매를 위해 차리는 밥상에 이르기까지, 죽도에서 치르는 모든 상에 오르는 음식이었다. 이렇듯 섬의 환경은 부엌과 음식 문화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밀접하고 있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
죽도는 통영에서 유일하게 남해안별신굿(중요무형문화재 제82-4호)의 전통을 잇는 섬이다. 통영의 섬에는 본래 남해안별신굿이 성했다. 2박3일은 기본, 5~7일 가량 굿이 펼쳐질 정도로 굿의 규모가 컸다. 나머지 섬에선 모두 사라진 남해안별신굿이 유일하게 죽도에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척박한 섬 환경의 특성상 큰 비용이 드는 남해안별신굿을 유지하기 힘들었으리라. 하지만 죽도는 별신굿에 소요되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부를 누리고 있었다. ‘돈섬’으로 불릴 정도로 죽도가 부를 축적하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은 바로 삼치잡이였다.
풍요를 불어온 삼치
욕지도에 고등어, 추도에 물메기가 있다면 죽도(대섬)에는 ‘삼치’가 있다. 통영 죽도는 마을 전체 40여 가구, 집집마다 삼치잡이배가 출어에 나설 정도로 삼치잡이로 유명세를 떨쳤다. 삼치잡이에 나선 배에는 선주와 선원 두세 명이 함께 작업했으니, 실로 마을 주민 전체가 삼치잡이에 종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죽도를 중심으로 용초도, 추봉도, 장사도, 매물도 일대가 삼치어장인데 그 중에서도 죽도 앞바다가 삼치 황금어장이었다. ‘삼치 떼가 나타났다’며 배 한 척이 포구를 나서면 30~40척의 배가 잇달아 출항해 죽도 앞바다를 가득 메웠으니, 실로 장관이었다. 멀리 조업을 나갈 필요도 없었다.
새벽 날 새기 전에 조업에 나선 삼치잡이 어선은 낚싯바늘이 60여 개가 이어진 공갈낚시를 물밑으로 드리웠다. 공갈낚시란 별명이 붙은 이유는 보통 낚시가 갯지렁이나 새우 같은 미끼를 쓰는 반면 삼치낚시는 낚시 바늘에 은빛 비닐을 끼운 게 미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본래 삼치가 맬치(멸치)를 묵는다꼬. 그래서 맬치 떼를 쫓는 기라. 공갈낚시 바늘에다가 은빛 비닐로 끼워서, 배가 앞으로 나가고 물살에 팔랑팔랑 거리면서 맛있는 맬치가 눈앞에 노는 것 맨치 보이는 기라. 그기 맬치인 줄 알고 덥썩 물모 삼치가 잽히는 기지.”
전체 길이 70~80미터 가량인 삼치 낚싯줄을 한 번 풀었다가 감는 데는 30분가량 걸린다. 서너 번만 끄신바리(채낚기 조업)를 하면 배 어창은 물론 갑판이 가득 찰 정도로 풍어가 이어졌다.
‘조선 좋은 (물)고기는 모두 일본으로 간다’는 말처럼 삼치 역시 일본으로 수출되는 대표적인 수산물이었다. 일본에서 삼치는 초밥용 재료와 구이용 생선으로 각광을 받았다. 일제 강점기 삼치 한 마리 가격이 80kg 쌀 한 가마니에 맞먹었다.죽도 주민들은 큰 부를 떠안겨 준 삼치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대단하다. 삼치는 죽도 사람들의 부엌과 바깥 살림을 책임지며 생활에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존재인 것이다.
삼치의 변신은 무죄! 죽도의 삼치요리
이렇게 죽도의 번성에 큰 몫을 한 삼치이다보니 죽도에선 중요한 잔칫상이나 제사상에 삼치를 꼭 올린다. 아무리 산해진미가 준비돼도 삼치 요리가 빠지면 2퍼센트, 아니 아예 상을 제대로 못 받은 것처럼 섭섭해한다.
삼치를 활용한 주요리는 삼치구이. 길이가 1미터 넘는 삼치는 몸통 전체를 한꺼번에 구을 수 없다. 그래서 머리와 꼬리 사이 몸통을 절반 크기 정도로 잘라낸 다음 가운데 뼈를 중심으로 포를 뜨듯이 잘라낸다. 한쪽 살만해도 어른 손바닥 두 개를 합쳐도 못 덮을 정도. 불이 활활 타는 꽃불을 지나 약해진 불에, 석쇠에 넣은 삼치를 노릇노릇 구워 낸다.
제사상에는 삼치찜을 올린다. 찜통 위에 삼치를 넣어 찌는데, 제일 중요한 건 물이 삼치살에 튀지 않아야 한다. 30분 남짓 알맞게 익은 삼치에는 붉은 실고추와 통깨를 얹어 상에 올렸다.
살이 많은 삼치는 맑은 탕(지리)이나 매운탕 모두가 맛있다. 살이 많아서 기름기가 많을 것 같은데, 고등어 같은 붉은 살 생선과는 달리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무를 삐지게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된장을 풀어 조리는 삼치조림 역시 한번 먹으면 자꾸만 입맛 당기는 요리다.
삼치구이나 삼치찜, 삼치조림은 꼭 죽도가 아니라도 먹어볼 수 있다. 하지만 죽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바로 삼치회와 삼치초밥. 삼치를 잡는 현장, 바다가 바로 마을 앞이니, 신선도가 뛰어나기에 가능한 요리다. 두툼하게 썰어낸 삼치는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특히 삼치초밥은 일본 사람들이 많이 좋아했는데,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일본 수출이 한창이던 80년대까지만 해도 섬 주민들이 입에 댈 초밥용 삼치가 남질 않았다. 요 근래 일본 수출이 줄어들면서, 섬 주민들도 가을 삼치 철에는 삼치를 초밥으로 즐긴다.
삼치는 설, 추석과 같은 명절과 집의 제사뿐 아니라 섬의 수호신 당산할매를 위해 차리는 밥상에 이르기까지, 죽도에서 치르는 모든 상에 오르는 음식이었다. 이렇듯 섬의 환경은 부엌과 음식 문화 그리고 사람의 마음에 밀접하고 있다.
글.사진_김상현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