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에서 첫 겨울을 맞았던 때, 우리 부부는 시장에서 아주 이상하게 생긴 생선을 봤다. 마치 몸에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흐물했을 뿐 아니라 입은 넓적하고 가장 멀리 위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양쪽 눈알은 그야말로 바늘귀만큼이나 작았다. 수염만 붙여놓으면 영락없는 메기처럼 생긴 그 생선은, 심지어 물도 없는 시장 바닥에서 살아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꽤나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칼집을 내어놓은 것을 보니 불투명한 살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도대체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것을 어떻게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아둬야겠다 싶어 물었더니 한창 큰 칼로 그 물컹한 살을 도려내고 있던 아주머니가 고개도 들지 않고 답을 했다.
“미기(메기), 물미기다.”
통영 시장에 넘실대는 물메기의 물결
첫 만남이 이러했으니 물메기에 대한 호감이 생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겨울 내내 통영은 물메기판이었다. 물론 겨울의 황제 대구가 좌판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위엄을 보여줬지만 물메기의 물량공세 속에는 속수무책이었을뿐더러 사람들 역시 비싼 대구보다는 저렴한 물메기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뿐만이 아니었다. 식당들 역시 물메기탕을 끓이기 시작했다는 안내를 하기 시작했는데, 생선을 취급하는 식당 치고 그렇지 않은 집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그러니 통영 전체가 온통 물메기로 뒤덮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자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생선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물메기를 원하는 건지 궁금해졌던 게다. 대상에 대한 비호감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 언제나 진취적인 아내의 제안에 나는 마침내 물메기탕을 한 그릇 앞에 놓고 앉게 되었다.
도다리쑥국과 대구탕이 그러하듯, 물메기탕 역시 특별한 조리법은 없었다. 맹물에 무와 쑥갓 같은 채소, 마늘과 고추 같은 양념을 조금 넣고 물메기와 함께 끓이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역시 통영 사람들이 사랑하는 많은 탕과 마찬가지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니까 물메기가 갖고 있는 ‘외모 디스카운트’를 넘어설 정도의 개운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를 허탈하게 만든 것이다. 고작 반 년이나마 통영에 살면서 어지간한 생선은 한 번씩 맛을 보아왔다고 자부했던 터라 내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생선의 육질’이라 생각하던 것들과 천양지차의 식감을 보여주는 그 푸딩 같은 살이, 물렁한 걸 싫어해 가지무침 같은 반찬조차 먹지 않는 내게 새로운 맛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담백하고도 감칠맛 넘치는 물메기의 재발견
보통의 경우, 흰살 생선으로 국물을 끓여먹을 때 우리는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물메기의 경우는 그보다 더 담백했다. 거의 무미(無味)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담백했으니 비린내 같은 것은 언급하기조차 불경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칠맛과 시원함은 능히 대구와 같은 반열에 올릴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물메기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물메기가 각광받기 시작한 건 대구의 수가 급감했을 무렵부터란다. 대구가 잘 잡힐 때는 물메기가 잡히는 족족 다시 바다에 버렸다고 하니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대구가 멸종 위기까지 몰리며 자취를 감추자 사람들은 겨울 밥상에 올릴 ‘대구의 대체제’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물메기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래서 통영의 오십대 이상의 어른들은 젊은 시절 물메기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회상하는 경우가 많다. 물메기는 경상남도 사람들이 결핍으로 말미암아 재발견하게 된 어종인 셈이다.
그런 ‘반전 있는 생선’ 물메기의 집산지인 추도를 찾게 된 건 통영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을 때였다. 추도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었다. 겨울이라 살풍경하긴 했지만 봄부터는 걷기 좋은 곳임에 틀림없는 곳이었다. 물메기 산지로만 알려지는 게 억울할 수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겨울 이후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지금은 집집마다 골목마다 온통 주렁주렁 매달린 건 오직 물메기뿐이었으니까.
좋은 물, 사람의 정성으로 깊어지는 맛
섬을 한 바퀴 돌고나니 그제야 물메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에서 보던 것보다 월등히 큰 것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것들로만 열 마리를 묶어 한 축을 만들어놓으면 시장에서는 이십만 원 정도에 팔린단다. 물론 산지에서는 그보다 좀 싸게 구입할 수는 있지만 비싸다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았다. 마침 포구에 들어온 배에서 물메기를 트럭에 옮겨 싣는 것을 보니 ‘이렇게 흔한 게 왜 그렇게 비싸?’라는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갔다. 뿐만 아니라 통영에 섬이 추도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추도에서 난 물메기만 그리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인지, 볼수록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마침 배에서 내리던 선장님에게 물었다.
“물메기가 연화도 근처에서도 많이 잡힌다면서요?”
말해놓고 보니 내 목소리에 심술이 잔뜩 배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기야 통영에서만 잡히나. 전라도 보성 앞바다에서도 잡히지.”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는 선장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근데 통영 바다가 깨끗하고 물살이 빨라가 딴 데서 잡는 기보다 맛이 좋은 기지. 글고 연화도 근처에서는 미기를 잡아봤자 손질을 몬 한다. 그기는 사람 묵을 물도 없는데 미기 씨칠 물이라고 있겠나.”
그러고 보니 포구 근처에는 물탱크가 몇 개나 있었는데 모두 물을 틀어놓은 상태였다. 미조항의 반대편에 위치한 대명항의 화장실에서도 잠겨 있는 수도꼭지가 없었다.
“추도 물이 얼매나 좋은지 아나? 사람이 그냥 마셔도 좋은 약수다. 이 물로 미기를 깨끗이 씨치가 바닷바람에 말리니 맛이 좋아지는 거지 암 데서나 이리 못 만든다.”
추도는 여느 섬과 다르게 물이 굉장히 풍부한 섬이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그 물이 좋다고 한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오염된 물질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새벽같이 나간 배들이 물메기를 가득 싣고 돌아오면 마을 모두가 정신없이 바빠진다. 실어 나른 물메기들이 그득히 쌓여 있는 작업장, 메기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 그것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우선 등에 칼을 넣고 반으로 가른다. 아가미와 내장, 알을 빼내는데 그 중 아가미와 알은 젓갈을 만들 것이기에 따로 모아놓는다. 이어서 척추뼈에서 뻗어 나온 굵은 가시를 칼로 한 번 그어 잘라주는데, 말리는 과정에서 오그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다. 이어 대가리 역시 반으로 갈라서 몸통 전체를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펴놓는다. 그리고 추도의 맑은 물로 다섯 번 씻어낸다. 이 과정을 거친 물메기는 비로써 건조대에 걸리게 되는데, 한 번 걸어놓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건조과정에 따라 뒤집어 놓거나 거꾸로 매달아야 한다. 이 기간이 적어도 일주일 정도. 손이 무척이나 많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더군다나 그 모든 일들은 찬바람이 부는 밖에서 이뤄진다. 그제야 잘 말린 큼직한 물메기 한 축이 십만 원 이상씩 팔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울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추도의 밥상
대략 삼십 분 정도를 작업장 근처에서 서성이며 구경을 하던 중, 나와 아내는 자리를 뜨기로 했다. 선장님은 “미기국 묵고 가지 어델 가노”라며 우리를 잡았지만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물메기의 손질이 끝나야 국 끓일 물이라도 올릴 게 틀림없는 상황인 데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왔던 길을 거꾸로 되짚어 걷더라도 우선 좀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도착한 섬의 반대편 대명항에서 우리는 아까 봐두었던 식당엘 들어갔다. 그곳엔 우리 말고도 점심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더 있었다. 평소에는 민박집에서 간단한 식사도 내주곤 했지만 제철을 만난 물메기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는 주민들에게는 밥 지을 시간도 모자랐던 탓에 결국 굶주린 여행객들은 추위에 떨며 한 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임에도 불구하고 ‘서글픈 추위’가 가득했던 추도에서의 반나절에 대해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인 것은 단출하지만 따뜻한 음식들이었다. 말린 물메기로 국을 끓이고 또 찜을 했다. 국은 담백했고 찜은 감칠맛이 가득했다. 거기에 소주가 몇 순배 돌았다. 금세 몸이 훈훈해지며 기분도 좋아졌다. 거제, 진해, 울산에서 온 사십대, 오십대, 칠십대의 부부들 틈에서 우리 부부 역시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갓 지은 밥과 함께 물메기 요리를 잘도 먹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그만큼 맛있지도 고맙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한 겨울 외딴 섬에서의 오후는 그렇게 푸딩처럼, 아니 물메기살처럼 말랑말랑하게 지나갔다.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
통영에서 첫 겨울을 맞았던 때, 우리 부부는 시장에서 아주 이상하게 생긴 생선을 봤다. 마치 몸에 뼈가 없는 것처럼 흐물흐물했을 뿐 아니라 입은 넓적하고 가장 멀리 위치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양쪽 눈알은 그야말로 바늘귀만큼이나 작았다. 수염만 붙여놓으면 영락없는 메기처럼 생긴 그 생선은, 심지어 물도 없는 시장 바닥에서 살아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꽤나 괴기스러운 장면이었다. 게다가 바로 옆에 칼집을 내어놓은 것을 보니 불투명한 살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도대체 저렇게 이상하게 생긴 것을 어떻게 먹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름이라도 알아둬야겠다 싶어 물었더니 한창 큰 칼로 그 물컹한 살을 도려내고 있던 아주머니가 고개도 들지 않고 답을 했다.
“미기(메기), 물미기다.”
통영 시장에 넘실대는 물메기의 물결
첫 만남이 이러했으니 물메기에 대한 호감이 생길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겨울 내내 통영은 물메기판이었다. 물론 겨울의 황제 대구가 좌판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위엄을 보여줬지만 물메기의 물량공세 속에는 속수무책이었을뿐더러 사람들 역시 비싼 대구보다는 저렴한 물메기를 찾는 경우가 많았다. 시장뿐만이 아니었다. 식당들 역시 물메기탕을 끓이기 시작했다는 안내를 하기 시작했는데, 생선을 취급하는 식당 치고 그렇지 않은 집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그러니 통영 전체가 온통 물메기로 뒤덮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자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겼다. 도대체 어떤 생선이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물메기를 원하는 건지 궁금해졌던 게다. 대상에 대한 비호감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새로운 음식에 대해서 언제나 진취적인 아내의 제안에 나는 마침내 물메기탕을 한 그릇 앞에 놓고 앉게 되었다.
도다리쑥국과 대구탕이 그러하듯, 물메기탕 역시 특별한 조리법은 없었다. 맹물에 무와 쑥갓 같은 채소, 마늘과 고추 같은 양념을 조금 넣고 물메기와 함께 끓이기만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역시 통영 사람들이 사랑하는 많은 탕과 마찬가지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그러니까 물메기가 갖고 있는 ‘외모 디스카운트’를 넘어설 정도의 개운하고 부드러운 맛이 나를 허탈하게 만든 것이다. 고작 반 년이나마 통영에 살면서 어지간한 생선은 한 번씩 맛을 보아왔다고 자부했던 터라 내가 받은 충격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생선의 육질’이라 생각하던 것들과 천양지차의 식감을 보여주는 그 푸딩 같은 살이, 물렁한 걸 싫어해 가지무침 같은 반찬조차 먹지 않는 내게 새로운 맛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담백하고도 감칠맛 넘치는 물메기의 재발견
보통의 경우, 흰살 생선으로 국물을 끓여먹을 때 우리는 “시원하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물메기의 경우는 그보다 더 담백했다. 거의 무미(無味)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담백했으니 비린내 같은 것은 언급하기조차 불경스러운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칠맛과 시원함은 능히 대구와 같은 반열에 올릴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사랑받고 있는 물메기가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물메기가 각광받기 시작한 건 대구의 수가 급감했을 무렵부터란다. 대구가 잘 잡힐 때는 물메기가 잡히는 족족 다시 바다에 버렸다고 하니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대구가 멸종 위기까지 몰리며 자취를 감추자 사람들은 겨울 밥상에 올릴 ‘대구의 대체제’를 찾게 되었고 그 결과 물메기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었다. 그래서 통영의 오십대 이상의 어른들은 젊은 시절 물메기를 먹어본 기억이 없다고 회상하는 경우가 많다. 물메기는 경상남도 사람들이 결핍으로 말미암아 재발견하게 된 어종인 셈이다.
그런 ‘반전 있는 생선’ 물메기의 집산지인 추도를 찾게 된 건 통영에서 두 번째 겨울을 맞이했을 때였다. 추도는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섬이었다. 겨울이라 살풍경하긴 했지만 봄부터는 걷기 좋은 곳임에 틀림없는 곳이었다. 물메기 산지로만 알려지는 게 억울할 수도 있을 정도로.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겨울 이후에나 어울릴 법한 이야기였다. 어쨌든 지금은 집집마다 골목마다 온통 주렁주렁 매달린 건 오직 물메기뿐이었으니까.
좋은 물, 사람의 정성으로 깊어지는 맛
섬을 한 바퀴 돌고나니 그제야 물메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시장에서 보던 것보다 월등히 큰 것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것들로만 열 마리를 묶어 한 축을 만들어놓으면 시장에서는 이십만 원 정도에 팔린단다. 물론 산지에서는 그보다 좀 싸게 구입할 수는 있지만 비싸다는 생각이 떨쳐지질 않았다. 마침 포구에 들어온 배에서 물메기를 트럭에 옮겨 싣는 것을 보니 ‘이렇게 흔한 게 왜 그렇게 비싸?’라는 생각은 점점 커져만 갔다. 뿐만 아니라 통영에 섬이 추도밖에 없는 것도 아닌데 왜 추도에서 난 물메기만 그리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인지, 볼수록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마침 배에서 내리던 선장님에게 물었다.
“물메기가 연화도 근처에서도 많이 잡힌다면서요?”
말해놓고 보니 내 목소리에 심술이 잔뜩 배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미기야 통영에서만 잡히나. 전라도 보성 앞바다에서도 잡히지.”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는 선장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근데 통영 바다가 깨끗하고 물살이 빨라가 딴 데서 잡는 기보다 맛이 좋은 기지. 글고 연화도 근처에서는 미기를 잡아봤자 손질을 몬 한다. 그기는 사람 묵을 물도 없는데 미기 씨칠 물이라고 있겠나.”
그러고 보니 포구 근처에는 물탱크가 몇 개나 있었는데 모두 물을 틀어놓은 상태였다. 미조항의 반대편에 위치한 대명항의 화장실에서도 잠겨 있는 수도꼭지가 없었다.
“추도 물이 얼매나 좋은지 아나? 사람이 그냥 마셔도 좋은 약수다. 이 물로 미기를 깨끗이 씨치가 바닷바람에 말리니 맛이 좋아지는 거지 암 데서나 이리 못 만든다.”
추도는 여느 섬과 다르게 물이 굉장히 풍부한 섬이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그 물이 좋다고 한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오염된 물질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새벽같이 나간 배들이 물메기를 가득 싣고 돌아오면 마을 모두가 정신없이 바빠진다. 실어 나른 물메기들이 그득히 쌓여 있는 작업장, 메기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 앉아 그것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우선 등에 칼을 넣고 반으로 가른다. 아가미와 내장, 알을 빼내는데 그 중 아가미와 알은 젓갈을 만들 것이기에 따로 모아놓는다. 이어서 척추뼈에서 뻗어 나온 굵은 가시를 칼로 한 번 그어 잘라주는데, 말리는 과정에서 오그라들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다. 이어 대가리 역시 반으로 갈라서 몸통 전체를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펴놓는다. 그리고 추도의 맑은 물로 다섯 번 씻어낸다. 이 과정을 거친 물메기는 비로써 건조대에 걸리게 되는데, 한 번 걸어놓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 건조과정에 따라 뒤집어 놓거나 거꾸로 매달아야 한다. 이 기간이 적어도 일주일 정도. 손이 무척이나 많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더군다나 그 모든 일들은 찬바람이 부는 밖에서 이뤄진다. 그제야 잘 말린 큼직한 물메기 한 축이 십만 원 이상씩 팔리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겨울 추위를 녹이는 따뜻한 추도의 밥상
대략 삼십 분 정도를 작업장 근처에서 서성이며 구경을 하던 중, 나와 아내는 자리를 뜨기로 했다. 선장님은 “미기국 묵고 가지 어델 가노”라며 우리를 잡았지만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물메기의 손질이 끝나야 국 끓일 물이라도 올릴 게 틀림없는 상황인 데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서 있기에는 날이 너무 추웠다. 왔던 길을 거꾸로 되짚어 걷더라도 우선 좀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도착한 섬의 반대편 대명항에서 우리는 아까 봐두었던 식당엘 들어갔다. 그곳엔 우리 말고도 점심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더 있었다. 평소에는 민박집에서 간단한 식사도 내주곤 했지만 제철을 만난 물메기를 손질하느라 여념이 없는 주민들에게는 밥 지을 시간도 모자랐던 탓에 결국 굶주린 여행객들은 추위에 떨며 한 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끼리임에도 불구하고 ‘서글픈 추위’가 가득했던 추도에서의 반나절에 대해 서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 앞에 놓인 것은 단출하지만 따뜻한 음식들이었다. 말린 물메기로 국을 끓이고 또 찜을 했다. 국은 담백했고 찜은 감칠맛이 가득했다. 거기에 소주가 몇 순배 돌았다. 금세 몸이 훈훈해지며 기분도 좋아졌다. 거제, 진해, 울산에서 온 사십대, 오십대, 칠십대의 부부들 틈에서 우리 부부 역시 함께 웃고 이야기하며 갓 지은 밥과 함께 물메기 요리를 잘도 먹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그만큼 맛있지도 고맙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한 겨울 외딴 섬에서의 오후는 그렇게 푸딩처럼, 아니 물메기살처럼 말랑말랑하게 지나갔다.
글.사진_정환정(j144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