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작은 책방에서 시작된 작은 회사 열풍은 해를 넘기면서 또 다른 진기록을 낳았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사무실을 옮기느라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대선을 딱 하루 앞둔 저녁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선물을 안겨줬다. 최종 본심 후보작 열편에 올랐다는 소식만으로도 감사하며 그 이상의 기대는 품지도 않았기에 너무 뜻밖이었다.
지역의 작은 출판사가 이룬 작은 기적
출판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대상 공동수상. 지역의 작은 출판사가 발행한 두 번째 책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가 이룬 작은 기적이다. 얼떨떨했지만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겁도 없이 뛰어든 출판계에서, 머나 먼 통영에서 서울을 오가며 힘들게, 그러나 즐겁게 일했던 일 년 여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한순간 눈물도 핑 돌았다. 출판계 역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했고,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굴러가는 출판 유통의 높은 문턱 앞에서 만만치 않은 현실을 느끼며 작고 힘없는 시골 출판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염려하면서 직원들에게는 내색하지 못하고 잠시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을 만큼 힘겨울 때, 딱 그 때 찾아온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주최측에서도 고작 세 권의 책을 내고 기획한 작은 지역 출판사의 수상은 역대 이례적인 일이라고 강조할 만큼 우리에게도 이례적이었지만 힘내서 더 열심히 해보라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응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힘을 내서 새해를 맞자고 마음을 추슬렀고,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작은 출판사의 생각, 도서정가제 바라보기
지금 출판계의 최대 이슈는 도서정가제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다. 우리가 지역 출판사로서 첫 걸음을 시작한 지난 해 출판계에 들려온 소식은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했다. 오랜 기간 서점과 출판사들의 협력자로 일해온 도매상들이 문을 닫았고, 힘없는 출판사들도, 동네 책방들도 하나둘 폐업신고를 했다. 대형 출판사를 보유한 웅진그룹의 부도 소식은 북센 등 관련 회사와 거래하는 출판사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한동안 출판계를 술렁이게 했고, 한 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여간해서는 자리바꿈을 하지 않는 기이한 현상도 계속 되었다. 어떻게 그 많은 신간들, 좋은 양서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팔리는 책만 계속 팔릴 수 있는 것일까? 독자로 살 때는 의문을 갖지 않았던 의혹들을 하나둘 접하고, 그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출판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우리나라 출판계에 닥친 위기감이 출판 새내기인 나에게도 전해져왔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좋은 책이지만 가난한 책은 외면하고 광고비를 쏟아 붓는 책만 독자와 만날 수 있는 현실. 그 안에서 독자들은 좋은 책을 보는 기준도 점점 더 잃어가고, 출판인들도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의지와 노력을 점점 놓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 1년을 갓 넘긴 작은 출판사 사장인 나 역시 희망찬 미래보다는 암울한 미래를 곧잘 떠올리는 모습을 발견하며 멈칫한다. 그러한 가운데 다시 부각된 도서정가제는 모든 출판인들의 공생을 위한 작은 씨앗이 될 수 있고, 당장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얽히고 설킨 지금의 기형적 유통구조가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닫혔던 동네 서점도 하나둘 문을 열고, 우리 아이들도, 우리들도 가까이에서 마음껏 책을 펼쳐 볼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공유하는 지식자산, 그래서 제 값을 주고 사야 한다
독자일 때는 몰랐다. 그러나 고작 1년을 출판사를 운영한 내게도 출판계의 위기는 심각하게 느껴질 만큼 출판인들의 마음은 곪아 있다. 이미 반값 할인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제 값을 주고 책을 사야한다는 게 마치 도둑질 당하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식료품이나 공산품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두고두고 우리 문화와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길 지식자산이기에 동일한 잣대로 단가를 후려치는 판매는 금지되어야 한다.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책들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책은 제 값에 주고 사는 것이다. 누군가 수 년 동안 피땀 흘려 녹여낸 삶의 기록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지불하는 만 얼마의 돈이 아까워 할인을 기다리고, 끼워주기 식의 선물을 기대하는 지금의 판매풍토는 책의 가치를 점점 더 떨어뜨리고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한 할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책은 가격이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일반 독자는 알 길이 없는 온오프 서점에 출판사가 주어야 하는 마진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그래도 광고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진열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게 현재의 출판계 실정이다. 그런데 만약 도서정가제가 현실화된다면?
첫째, 장기적으로 책값은 안정화되면서 거품이 빠지게 될 것이다. 무분별한 할인을 하지 않으면 유통 마진도 조정될 것이고, 할인이 아닌 다른 좋은 방법으로 책을 소개하려는 시도들도 늘어날 것이니 독자들은 가치 있는 책을 접할 기회가 더 늘게 될 것이다. 당장은 안 그러더라도 분명 그리 될 것이다. 나부터 더 저렴하게 책을 판매할 테니까 말이다.
둘째, 굳이 온라인 서점이 아니어도 동네 책방에서도 동일한 값으로 책을 판매하니 서점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많아져 하나둘 책방들이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책 전문서점이나 기독서점, 또는 동네 카페에서도 책을 팔기 시작할 것이고,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독서인구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출판인들, 저자들이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독과점 역시 방향전환이 필요할 것이기에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더 좋은 상생의 방법을 연구하는 시장 다변화가 정착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 또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원래 변화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상생을 꿈꾸다
남해의봄날은 출판 두 해를 맞아 본격적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비전북스와 함께 지역 출판사로서 더 다양한 열매를 거두기 위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이 또 어떻게 독자들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작은 회사 책을 홍보하면서 많은 언론들과 이벤트를 통해 우리는 독자들과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역의 유력신문에도 대서특필되면서 우체국에서까지 얼굴을 알아보는 유명세를 치를 만큼 선전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의 미래도 한 솥밥을 먹는 출판계의 미래와 맞닿아 있기에 더불어 상생하는 것이 항상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출판계의 산고가 부디 모두에게 이로운 열매를 맺길 기도한다.
대다수가 걷는 길이기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작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작은 회사 두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시간은 걸리지만 작은 변화의 희망을 만났다. 예전에 통영에 와서 강의한 한비야 선생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세상은 힘과 자본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생이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고. 그 힘을 간과하지 말라고. 지금 이 시간에도 작지만 열정과 노력을 다해 좋은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판매하고, 또 구매하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역에서 출판하기 4편은 봄호에 이어집니다.
글/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
홍대 앞 작은 책방에서 시작된 작은 회사 열풍은 해를 넘기면서 또 다른 진기록을 낳았다. 새로운 보금자리로 사무실을 옮기느라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대선을 딱 하루 앞둔 저녁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선물을 안겨줬다. 최종 본심 후보작 열편에 올랐다는 소식만으로도 감사하며 그 이상의 기대는 품지도 않았기에 너무 뜻밖이었다.
지역의 작은 출판사가 이룬 작은 기적
출판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제53회 한국출판문화상 편집 부문 대상 공동수상. 지역의 작은 출판사가 발행한 두 번째 책 <나는 작은 회사에 다닌다>가 이룬 작은 기적이다. 얼떨떨했지만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했다. 겁도 없이 뛰어든 출판계에서, 머나 먼 통영에서 서울을 오가며 힘들게, 그러나 즐겁게 일했던 일 년 여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한순간 눈물도 핑 돌았다. 출판계 역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심했고, 거대한 자본의 힘으로 굴러가는 출판 유통의 높은 문턱 앞에서 만만치 않은 현실을 느끼며 작고 힘없는 시골 출판사의 미래를 고민하고 염려하면서 직원들에게는 내색하지 못하고 잠시 어딘가로 숨어들고 싶을 만큼 힘겨울 때, 딱 그 때 찾아온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주최측에서도 고작 세 권의 책을 내고 기획한 작은 지역 출판사의 수상은 역대 이례적인 일이라고 강조할 만큼 우리에게도 이례적이었지만 힘내서 더 열심히 해보라고, 그동안 고생했다고 위로해주는 따뜻한 응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더 힘을 내서 새해를 맞자고 마음을 추슬렀고, 어느새 한 달이 흘렀다.
작은 출판사의 생각, 도서정가제 바라보기
지금 출판계의 최대 이슈는 도서정가제 법안의 국회 통과 여부다. 우리가 지역 출판사로서 첫 걸음을 시작한 지난 해 출판계에 들려온 소식은 우울한 소식들로 가득했다. 오랜 기간 서점과 출판사들의 협력자로 일해온 도매상들이 문을 닫았고, 힘없는 출판사들도, 동네 책방들도 하나둘 폐업신고를 했다. 대형 출판사를 보유한 웅진그룹의 부도 소식은 북센 등 관련 회사와 거래하는 출판사들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한동안 출판계를 술렁이게 했고, 한 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은 여간해서는 자리바꿈을 하지 않는 기이한 현상도 계속 되었다. 어떻게 그 많은 신간들, 좋은 양서들이 쏟아져 나오는데 팔리는 책만 계속 팔릴 수 있는 것일까? 독자로 살 때는 의문을 갖지 않았던 의혹들을 하나둘 접하고, 그러한 현상을 뒷받침하는 출판계의 구조를 들여다보면서 우리나라 출판계에 닥친 위기감이 출판 새내기인 나에게도 전해져왔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 좋은 책이지만 가난한 책은 외면하고 광고비를 쏟아 붓는 책만 독자와 만날 수 있는 현실. 그 안에서 독자들은 좋은 책을 보는 기준도 점점 더 잃어가고, 출판인들도 좋은 책을 만들고 싶은 의지와 노력을 점점 놓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고 만 1년을 갓 넘긴 작은 출판사 사장인 나 역시 희망찬 미래보다는 암울한 미래를 곧잘 떠올리는 모습을 발견하며 멈칫한다. 그러한 가운데 다시 부각된 도서정가제는 모든 출판인들의 공생을 위한 작은 씨앗이 될 수 있고, 당장은 시행착오를 겪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얽히고 설킨 지금의 기형적 유통구조가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닫혔던 동네 서점도 하나둘 문을 열고, 우리 아이들도, 우리들도 가까이에서 마음껏 책을 펼쳐 볼 수 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책은 한 사람의 인생을 공유하는 지식자산, 그래서 제 값을 주고 사야 한다
독자일 때는 몰랐다. 그러나 고작 1년을 출판사를 운영한 내게도 출판계의 위기는 심각하게 느껴질 만큼 출판인들의 마음은 곪아 있다. 이미 반값 할인에 익숙해 있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제 값을 주고 책을 사야한다는 게 마치 도둑질 당하는 것처럼 느끼겠지만 책은 시간이 지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식료품이나 공산품이 아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두고두고 우리 문화와 역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길 지식자산이기에 동일한 잣대로 단가를 후려치는 판매는 금지되어야 한다.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책들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은 여기서 논외로 한다.) 책은 제 값에 주고 사는 것이다. 누군가 수 년 동안 피땀 흘려 녹여낸 삶의 기록을 단 한 권의 책으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지불하는 만 얼마의 돈이 아까워 할인을 기다리고, 끼워주기 식의 선물을 기대하는 지금의 판매풍토는 책의 가치를 점점 더 떨어뜨리고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한 할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책은 가격이 더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일반 독자는 알 길이 없는 온오프 서점에 출판사가 주어야 하는 마진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그래도 광고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진열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게 현재의 출판계 실정이다. 그런데 만약 도서정가제가 현실화된다면?
첫째, 장기적으로 책값은 안정화되면서 거품이 빠지게 될 것이다. 무분별한 할인을 하지 않으면 유통 마진도 조정될 것이고, 할인이 아닌 다른 좋은 방법으로 책을 소개하려는 시도들도 늘어날 것이니 독자들은 가치 있는 책을 접할 기회가 더 늘게 될 것이다. 당장은 안 그러더라도 분명 그리 될 것이다. 나부터 더 저렴하게 책을 판매할 테니까 말이다.
둘째, 굳이 온라인 서점이 아니어도 동네 책방에서도 동일한 값으로 책을 판매하니 서점을 찾는 이들의 발걸음도 많아져 하나둘 책방들이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책 전문서점이나 기독서점, 또는 동네 카페에서도 책을 팔기 시작할 것이고, 책을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더 늘어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독서인구의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출판인들, 저자들이 더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나 혼자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독과점 역시 방향전환이 필요할 것이기에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더 좋은 상생의 방법을 연구하는 시장 다변화가 정착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 또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원래 변화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상생을 꿈꾸다
남해의봄날은 출판 두 해를 맞아 본격적으로 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낼 계획이다. 비전북스와 함께 지역 출판사로서 더 다양한 열매를 거두기 위한 우리의 새로운 도전이 또 어떻게 독자들과 만나게 될지 궁금하다. 작은 회사 책을 홍보하면서 많은 언론들과 이벤트를 통해 우리는 독자들과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지역의 유력신문에도 대서특필되면서 우체국에서까지 얼굴을 알아보는 유명세를 치를 만큼 선전하고 있지만, 결국 우리의 미래도 한 솥밥을 먹는 출판계의 미래와 맞닿아 있기에 더불어 상생하는 것이 항상 먼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 출판계의 산고가 부디 모두에게 이로운 열매를 맺길 기도한다.
대다수가 걷는 길이기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작은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작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작은 회사 두 권의 책을 통해 우리는 시간은 걸리지만 작은 변화의 희망을 만났다. 예전에 통영에 와서 강의한 한비야 선생이 한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세상은 힘과 자본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보이지 않는 사랑과 희생이 이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고. 그 힘을 간과하지 말라고. 지금 이 시간에도 작지만 열정과 노력을 다해 좋은 책을 만들고, 소개하고, 판매하고, 또 구매하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지역에서 출판하기 4편은 봄호에 이어집니다.
글/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