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벚꽃이 통영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따뜻한 봄날에 올해 첫 책이자 여덟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 회사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아주 오랫동안 준비하고, 만들고 그렇게 더디게 세상과 만났다. 지역 출판 3년차. 지역 거주 만 4년을 넘어섰으니 이제 조금은 통영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 책들 중에서 처음으로 ‘통영’이라는 예쁜 이름을 제목에 달고 나온 책. 바로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다.
지역 출판의 뿌리를 ‘단디’ 내리다
이 책은 철저하게 ‘메이드 바이 로컬’이다. 통영의 유일한 출판사에서 지역 첫 공채로 뽑은 통영 토박이 막내 편집자가 1년 반의 기나긴 훈련과정을 끝내고 첫 편집 입봉작으로 훌륭하게 완수한 책이며 그 과정에 통영 출신의 디자이너와 제주에 정착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힘을 보탰다. 저자 역시 통영 토박이이자 통영에서 나고 자란 경력 15년의 토박이 지역신문 기자로. 그야말로 통영을 제대로, ‘단디’ 들여다보겠다는 야심찬 각오로 3년의 시간을 들여 기획, 제작한 일명 로컬 출판의 총아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출판할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주저 없이 올해의 첫 책으로 선정하여 꽃 피는 봄날, 독자들과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본격 지역 출판의 한 뿌리를 단디 내리며 값진 경험들을 나눴다.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낯설고도 먼 거리를 조금씩 좁히며 지역으로 아주 천천히 스며들고자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으면서도 쉬이 좁혀지지 않았던 그 간극을 한 계단 성큼 좁힌 느낌. 그랬다. 지역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여전히 외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들을 출간했던 우리는(<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은 말 그대로 서울 토박이들의 지역 입성 이야기였고, <섬에서 섬으로 바다 백리길을 걷다>는 강원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통영 섬들의 아름다운 풍경, 즉 여행자의 시선이었다.) 철저히 지역 기반의 책을 출간하면서 통영의 마당발 저자를 통해 지역의 독자들과 더 넓은 접점을 갖게 되었고, 통영의 수많은 섬들을 외지인이나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나고 자란 토박이의 애정 넘치는 절절한 가슴으로 바라본 이야기에 지역의 독자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축하했다. 이처럼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다행히 책은 교보,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조선, 한국경제, 한겨레21, 시사인 등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으로 기사를 실어주어 지역 출판에 힘을 더해주었다. 특히 생애 첫 책을 출간한 저자를 축하하기 위해 통영의 시립도서관에서 마련한 출간기념회를 찾은 지인들은 총 5백 권의 책을 완판시키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작은 도시에서 내 일처럼 축하해주는 이들의 든든한 동지애를 보면서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 대사 한 토막이 떠올랐다.
“우리가 남이가!” ^-^
세월호 정국으로 모든 것이 순간 멈춤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의 출간 한 달째, 책에 게재된 섬 중 한 곳을 독자와 함께 탐사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던 편집부는 갑자기 날아든 전 국가적 초유의 재난사태,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는 모든 출간 프로모션을 일시 정지해야했다. 그나마 한 달 동안 저자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초판은 거의 다 판매되었지만 아이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생각하니 우리는 더 이상 섬 이야기로 독자와 소통할 수가 없었다. 57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통영에서 사람들이 사는 섬 44개를 10여 년 동안 발로 뛰어다닌 저자가 그 중 8개의 섬을 3년간 발로 뛰어 90여 차례 배를 타고 드나들며 사라져가는 섬의 생활사,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소중한 기록. 특히 섬 전체가 하나의 부엌이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사라져가는 부엌의 원형뿐 아니라 여전히 섬을 지키고 있는 섬사람들의 애환과 풍부한 먹을거리 이야기, 그리고 촉촉히 눈가를 적시는 우리 어머니의 삶까지 놓치지 않은 책을 남해의봄날에서 출간할 수 있었던 점에 감사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의 삶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한 통영RCE 재단의 후원에도 박수를 보낸다.
첫 책이 나온 이후 두 달여. 우리는 세월호 정국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불끈불끈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4월말로 출간을 잡아놓았던 다음 책도 속도가 붙지 않아 결국 5월말이 되어서야 새 책을 조심스레 출간하게 되었다. 지난 해 봄부터 기획에 들어가 1년 반 만에 ‘어떤 일, 어떤 삶’ 새로운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연 책이었다. 바로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_기획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와 <젊은 오너셰프에게 묻다_사람들은 왜 당신의 작은 식당을 즐겨 찾는가?> 이 두 권이다.
어떤 일, 어떤 삶 시리즈, 그 대장정을 시작하다
시리즈명에 제목도 길고, 부제까지 달린 이 두 권의 책은 열흘 간격으로 서점에 출간되었다. 통영에 내려와서 지역에서는 낯선 출판이라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우리는 많은 부분 삶의 변화를 겪었고,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일은 곧 삶의 가장 큰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일과 삶의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의도로 우리는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올바른 원칙과 철학을 갖고 감당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그 희망을 기성세대가 아니라 젊은 친구들에게서 찾고 싶었다. 경력 10년 안팎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젊은 기획자들과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이자 사장님, 오너셰프들을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치열하게 보내는 오늘이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내일을 만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만난 젊은 그들은 근사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젊은 직업인들을 찾고, 담아낼 총 스무 권에 달하는 길고 긴 시리즈의 대장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오랜 항해 동안 길을 잃지 않고, 초심 그대로 뚝심있게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남해의봄날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과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어떤 일, 어떤 삶 시리즈의 좀 더 깊고 재미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
글_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
지난 3월, 벚꽃이 통영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따뜻한 봄날에 올해 첫 책이자 여덟 번째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 회사의 책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책 역시 아주 오랫동안 준비하고, 만들고 그렇게 더디게 세상과 만났다. 지역 출판 3년차. 지역 거주 만 4년을 넘어섰으니 이제 조금은 통영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우리 책들 중에서 처음으로 ‘통영’이라는 예쁜 이름을 제목에 달고 나온 책. 바로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다.
지역 출판의 뿌리를 ‘단디’ 내리다
이 책은 철저하게 ‘메이드 바이 로컬’이다. 통영의 유일한 출판사에서 지역 첫 공채로 뽑은 통영 토박이 막내 편집자가 1년 반의 기나긴 훈련과정을 끝내고 첫 편집 입봉작으로 훌륭하게 완수한 책이며 그 과정에 통영 출신의 디자이너와 제주에 정착한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힘을 보탰다. 저자 역시 통영 토박이이자 통영에서 나고 자란 경력 15년의 토박이 지역신문 기자로. 그야말로 통영을 제대로, ‘단디’ 들여다보겠다는 야심찬 각오로 3년의 시간을 들여 기획, 제작한 일명 로컬 출판의 총아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올해 출판할 책들 중에서 이 책을 주저 없이 올해의 첫 책으로 선정하여 꽃 피는 봄날, 독자들과 만났다. 그리고 우리는 본격 지역 출판의 한 뿌리를 단디 내리며 값진 경험들을 나눴다.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낯설고도 먼 거리를 조금씩 좁히며 지역으로 아주 천천히 스며들고자 한 걸음 두 걸음 내딛으면서도 쉬이 좁혀지지 않았던 그 간극을 한 계단 성큼 좁힌 느낌. 그랬다. 지역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여전히 외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책들을 출간했던 우리는(<서울을 떠나는 사람들>, <서울 부부의 남해 밥상>은 말 그대로 서울 토박이들의 지역 입성 이야기였고, <섬에서 섬으로 바다 백리길을 걷다>는 강원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본 통영 섬들의 아름다운 풍경, 즉 여행자의 시선이었다.) 철저히 지역 기반의 책을 출간하면서 통영의 마당발 저자를 통해 지역의 독자들과 더 넓은 접점을 갖게 되었고, 통영의 수많은 섬들을 외지인이나 여행자의 시선이 아니라 나고 자란 토박이의 애정 넘치는 절절한 가슴으로 바라본 이야기에 지역의 독자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했고, 축하했다. 이처럼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다행히 책은 교보, 알라딘, 인터파크, 반디앤루니스 등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고, 조선, 한국경제, 한겨레21, 시사인 등에서도 적지 않은 비중으로 기사를 실어주어 지역 출판에 힘을 더해주었다. 특히 생애 첫 책을 출간한 저자를 축하하기 위해 통영의 시립도서관에서 마련한 출간기념회를 찾은 지인들은 총 5백 권의 책을 완판시키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작은 도시에서 내 일처럼 축하해주는 이들의 든든한 동지애를 보면서 우리는 영화 속 한 장면, 대사 한 토막이 떠올랐다.
“우리가 남이가!” ^-^
세월호 정국으로 모든 것이 순간 멈춤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의 출간 한 달째, 책에 게재된 섬 중 한 곳을 독자와 함께 탐사하는 이벤트를 준비 중이었던 편집부는 갑자기 날아든 전 국가적 초유의 재난사태, 세월호 사건을 접하고는 모든 출간 프로모션을 일시 정지해야했다. 그나마 한 달 동안 저자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에 초판은 거의 다 판매되었지만 아이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을 생각하니 우리는 더 이상 섬 이야기로 독자와 소통할 수가 없었다. 57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통영에서 사람들이 사는 섬 44개를 10여 년 동안 발로 뛰어다닌 저자가 그 중 8개의 섬을 3년간 발로 뛰어 90여 차례 배를 타고 드나들며 사라져가는 섬의 생활사, 역사를 오롯이 담아낸 소중한 기록. 특히 섬 전체가 하나의 부엌이라는 독특한 관점에서 사라져가는 부엌의 원형뿐 아니라 여전히 섬을 지키고 있는 섬사람들의 애환과 풍부한 먹을거리 이야기, 그리고 촉촉히 눈가를 적시는 우리 어머니의 삶까지 놓치지 않은 책을 남해의봄날에서 출간할 수 있었던 점에 감사하고, 지속가능한 지역의 삶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이 시리즈를 기획한 통영RCE 재단의 후원에도 박수를 보낸다.
첫 책이 나온 이후 두 달여. 우리는 세월호 정국으로 하루에도 여러 번 불끈불끈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4월말로 출간을 잡아놓았던 다음 책도 속도가 붙지 않아 결국 5월말이 되어서야 새 책을 조심스레 출간하게 되었다. 지난 해 봄부터 기획에 들어가 1년 반 만에 ‘어떤 일, 어떤 삶’ 새로운 시리즈의 첫 포문을 연 책이었다. 바로 <젊은 기획자에게 묻다_기획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와 <젊은 오너셰프에게 묻다_사람들은 왜 당신의 작은 식당을 즐겨 찾는가?> 이 두 권이다.
어떤 일, 어떤 삶 시리즈, 그 대장정을 시작하다
시리즈명에 제목도 길고, 부제까지 달린 이 두 권의 책은 열흘 간격으로 서점에 출간되었다. 통영에 내려와서 지역에서는 낯선 출판이라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우리는 많은 부분 삶의 변화를 겪었고,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일은 곧 삶의 가장 큰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일과 삶의 구체적인 해법을 찾기 위한 의도로 우리는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올바른 원칙과 철학을 갖고 감당한다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그 희망을 기성세대가 아니라 젊은 친구들에게서 찾고 싶었다. 경력 10년 안팎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젊은 기획자들과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요리사이자 사장님, 오너셰프들을 찾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치열하게 보내는 오늘이 어쩌면 우리가 꿈꾸는 내일을 만나게 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가 만난 젊은 그들은 근사했다!
앞으로 다양한 분야의 젊은 직업인들을 찾고, 담아낼 총 스무 권에 달하는 길고 긴 시리즈의 대장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오랜 항해 동안 길을 잃지 않고, 초심 그대로 뚝심있게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남해의봄날 독자 여러분의 뜨거운 응원과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어떤 일, 어떤 삶 시리즈의 좀 더 깊고 재미난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
글_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