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통영에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저자나 디자이너를 더 자주 만나면 좋겠지만, 기획을 위해 취재 가는 길이 더 가까우면 좋겠지만, 이제 어지간한 일들은 온라인과 전화로 해결이 가능하고 취재야 서울에만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니 어차피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책을 찍어내고 유통하는 일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책을 팔아야 할 서점도, 책을 찍는 인쇄소도 그리고 책을 구입하는 고객들도 서울과 수도권에 더 많으니 서울에 자주 가야 한다. 그것도 너무 자주!
남해의봄날 첫 책을 출간하다
지난 7월, 무더위도 잊은 채 남해의봄날은 첫 책 출판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첫 책의 상징성은 상당히 크다. 무엇보다 통영이라는 지역에서 시작한 출판사에서 앞으로 낼 책들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어야 하고, 가치 있는 콘텐츠, 즉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자금을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유익한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어도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공들여서 훌륭하게 만들었던 동일한 콘텐츠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첫 주자가 된 책이 바로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다.
남해의봄날에서 낸 첫 책은 마땅히 누려야 할 유년시절의 행복을 어린이에게 돌려주고픈 마음을 담은 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엄마들의 초유의 관심사인 영어교육과 책읽기, 글쓰기 교육과 접목해서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 누구나 갖고 있는 잠재된 창의력과 상상력을 끌어내주는 비밀은 비싼 사교육도, 영재교육도 아니라 행복한 유년의 기억, 그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것임을 열 살 소녀 지원이의 영어 동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처음엔 해리포터의 나라 영국의 초등 영어교육에 집중, 그들의 영어교육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직접 지원이와 그 가정을 만나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지금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알라딘 MD추천도서로 선정되다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는 발간 이후 알라딘 MD추천도서로 선정되면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고, 다행히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을 느낀다는 감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얼핏 보면 동화 같지만, 엄마의 에세이가 있어 엄마가 먼저 읽고, 아이와 함께 보는 따뜻한 가족 동화이며 영국 클리브스 스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특별 허락을 받아 게재된 글쓰기 지도법은 이 책이 주는 특별 보너스다. 지금은 이렇게 바다가 바라보이는 책상에 앉아 편안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 안에는 지역 출판이 갖는 한계와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모든 출판과 영화 등 문화예술 콘텐츠 비즈니스가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서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몸소 실감했고, 실제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보낸 8박9일의 여정
저자가 영국에 있었지만 책을 만드는 데는 사실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책 출간을 결정하기 위해 직접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고, 그 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저자 미팅은 화상 인터뷰로 했고, 디자인 역시 이메일로 소통했다. 그러나 디자인이 마무리되고 본격 인쇄를 걸면서 힘든 여정은 시작되었다. 통영에는 인쇄기가 아예 없고, 부산이나 광주로 인쇄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오랫동안 거래하던 서울 인쇄소와 작업을 했다. 그래서 최종 교정교열과 인쇄, 그리고 감리까지 전 과정을 서울에서 진행하였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러 변수를 만나면서 4박5일의 서울 출장은 8박9일로 연장되었다. 담당 편집자가 최종 데이터 마무리를 디자이너와 작업하는 동안 나는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직거래 계약을 했고, 공급율, 위탁, 한도, 매절, 도매상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가슴에 새기며 충무로, 홍대, 신사동, 파주, 강남 등등 부지런히 서울 바닥을 발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보낸 서울에서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통영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우리는 피로감보다 집으로 향하는 설렘, 그리고 첫 책을 마주하게 될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두의 도움으로 출간된 첫 책
7월 27일 드디어 책을 받아보게 되었을 때의 감격을 나는 감히 첫 아이를 낳았을 때의 감격과 견주고 싶다. 출산의 경험이 없으니 그 비교의 진정성을 논할 수는 없지만 그간 만든 많은 책 중에서 가장 고생하며 힘들게 만든 책이라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첫 책을 들고 서울서 만난 MD들과 기자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통영에서 온 출판사라는 말에 먼저 놀라고, 영국의 열 살 소녀의 동화를 첫 책으로 들고 나타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올림픽과 휴가 피크시즌에 안철수 책으로 타 출판사들이 출간을 자제하고 있을 때 등장한 이 신생출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용감+무모한 도전이었다. 두 번째 나흘간의 서울 출장에서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면서 증정 이벤트를 하는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그렇게 또 서울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진짜 집으로 돌아왔다. 남해 바다의 푸른 물결과 그 위로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도 반갑고, 마치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용사처럼 집으로 돌아온 기쁨 뒤에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의 만만치 않은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한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할 수 없으며, 한 권의 책 역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또 유통되며 독자와 만날 것이다. 이 첫 책이 출간되기까지도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지역에서 출판하는 것이 녹록치 않지만 먼 통영에서 왔다고, 약속도 없이 찾아간 신생 출판사 대표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기자들과 서점 MD분들, 최고의 퀄리티로 책을 만들어준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실장과 좋은그림 전배인 차장님, 유통 초보에게 큰 도움을 준 도경의 팀장님과 마케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친구 혜진이, 여러모로 힘을 보태주신 경남 창원 중소기업청 분들, 그리고 말없이 응원과 기도로 힘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만난 친구들 역시 내겐 큰 힘이었다. 소셜 네트워크가 지역 출판이 가진 한계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바야흐로 새로운 네트워킹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멀리했던 소셜 미디어가 오히려 지역 출판에 큰 힘이 됨을 느끼며 지역 출판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험을 계속 하기 위해 봄은 지금 ‘페북녀’로 등극하는 중이다.
*가을호에는 ‘지역에서 출판하기 2’편이 이어집니다.
글_남해의봄날 정은영
책을 통영에서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저자나 디자이너를 더 자주 만나면 좋겠지만, 기획을 위해 취재 가는 길이 더 가까우면 좋겠지만, 이제 어지간한 일들은 온라인과 전화로 해결이 가능하고 취재야 서울에만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니 어차피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책을 찍어내고 유통하는 일은 정말 만만한 일이 아니다. 책을 팔아야 할 서점도, 책을 찍는 인쇄소도 그리고 책을 구입하는 고객들도 서울과 수도권에 더 많으니 서울에 자주 가야 한다. 그것도 너무 자주!
남해의봄날 첫 책을 출간하다
지난 7월, 무더위도 잊은 채 남해의봄날은 첫 책 출판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첫 책의 상징성은 상당히 크다. 무엇보다 통영이라는 지역에서 시작한 출판사에서 앞으로 낼 책들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리더가 되어야 하고, 가치 있는 콘텐츠, 즉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자금을 투자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유익한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었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어도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공들여서 훌륭하게 만들었던 동일한 콘텐츠는 다루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첫 주자가 된 책이 바로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다.
남해의봄날에서 낸 첫 책은 마땅히 누려야 할 유년시절의 행복을 어린이에게 돌려주고픈 마음을 담은 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 엄마들의 초유의 관심사인 영어교육과 책읽기, 글쓰기 교육과 접목해서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이 무엇인지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 누구나 갖고 있는 잠재된 창의력과 상상력을 끌어내주는 비밀은 비싼 사교육도, 영재교육도 아니라 행복한 유년의 기억, 그 시간을 충분히 만들어주는 것임을 열 살 소녀 지원이의 영어 동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처음엔 해리포터의 나라 영국의 초등 영어교육에 집중, 그들의 영어교육 노하우를 집대성한 책을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직접 지원이와 그 가정을 만나면서 내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지금의 책이 탄생한 것이다.)
알라딘 MD추천도서로 선정되다
<행복한 열 살, 지원이의 영어 동화>는 발간 이후 알라딘 MD추천도서로 선정되면서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고, 다행히 책을 읽은 독자들로부터 잔잔하고 따뜻한 감동을 느낀다는 감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얼핏 보면 동화 같지만, 엄마의 에세이가 있어 엄마가 먼저 읽고, 아이와 함께 보는 따뜻한 가족 동화이며 영국 클리브스 스쿨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의 특별 허락을 받아 게재된 글쓰기 지도법은 이 책이 주는 특별 보너스다. 지금은 이렇게 바다가 바라보이는 책상에 앉아 편안하게 글을 쓰고 있지만 사실 이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 안에는 지역 출판이 갖는 한계와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왜 모든 출판과 영화 등 문화예술 콘텐츠 비즈니스가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서울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몸소 실감했고, 실제적인 대안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서 보낸 8박9일의 여정
저자가 영국에 있었지만 책을 만드는 데는 사실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책 출간을 결정하기 위해 직접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날아갔고, 그 뒤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인터넷이 발달한 한국에서 불가능한 일은 없었다. 저자 미팅은 화상 인터뷰로 했고, 디자인 역시 이메일로 소통했다. 그러나 디자인이 마무리되고 본격 인쇄를 걸면서 힘든 여정은 시작되었다. 통영에는 인쇄기가 아예 없고, 부산이나 광주로 인쇄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결국 오랫동안 거래하던 서울 인쇄소와 작업을 했다. 그래서 최종 교정교열과 인쇄, 그리고 감리까지 전 과정을 서울에서 진행하였고,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러 변수를 만나면서 4박5일의 서울 출장은 8박9일로 연장되었다. 담당 편집자가 최종 데이터 마무리를 디자이너와 작업하는 동안 나는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직거래 계약을 했고, 공급율, 위탁, 한도, 매절, 도매상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가슴에 새기며 충무로, 홍대, 신사동, 파주, 강남 등등 부지런히 서울 바닥을 발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보낸 서울에서의 시간들을 뒤로 하고, 통영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 우리는 피로감보다 집으로 향하는 설렘, 그리고 첫 책을 마주하게 될 기쁨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모두의 도움으로 출간된 첫 책
7월 27일 드디어 책을 받아보게 되었을 때의 감격을 나는 감히 첫 아이를 낳았을 때의 감격과 견주고 싶다. 출산의 경험이 없으니 그 비교의 진정성을 논할 수는 없지만 그간 만든 많은 책 중에서 가장 고생하며 힘들게 만든 책이라 더 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첫 책을 들고 서울서 만난 MD들과 기자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통영에서 온 출판사라는 말에 먼저 놀라고, 영국의 열 살 소녀의 동화를 첫 책으로 들고 나타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게다가 올림픽과 휴가 피크시즌에 안철수 책으로 타 출판사들이 출간을 자제하고 있을 때 등장한 이 신생출판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그야말로 용감+무모한 도전이었다. 두 번째 나흘간의 서울 출장에서 언론사 기자들을 만나면서 증정 이벤트를 하는 서점들을 돌아다니며 그렇게 또 서울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진짜 집으로 돌아왔다. 남해 바다의 푸른 물결과 그 위로 내리쬐는 강렬한 햇살도 반갑고, 마치 전쟁을 치르고 돌아온 용사처럼 집으로 돌아온 기쁨 뒤에 지역에서 출판을 한다는 것의 만만치 않은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세상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한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할 수 없으며, 한 권의 책 역시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세상에 태어나고, 또 유통되며 독자와 만날 것이다. 이 첫 책이 출간되기까지도 너무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지역에서 출판하는 것이 녹록치 않지만 먼 통영에서 왔다고, 약속도 없이 찾아간 신생 출판사 대표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는 기자들과 서점 MD분들, 최고의 퀄리티로 책을 만들어준 스튜디오 마르잔 김성미 실장과 좋은그림 전배인 차장님, 유통 초보에게 큰 도움을 준 도경의 팀장님과 마케팅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친구 혜진이, 여러모로 힘을 보태주신 경남 창원 중소기업청 분들, 그리고 말없이 응원과 기도로 힘을 보태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만난 친구들 역시 내겐 큰 힘이었다. 소셜 네트워크가 지역 출판이 가진 한계를 완전히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바야흐로 새로운 네트워킹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멀리했던 소셜 미디어가 오히려 지역 출판에 큰 힘이 됨을 느끼며 지역 출판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실험을 계속 하기 위해 봄은 지금 ‘페북녀’로 등극하는 중이다.
*가을호에는 ‘지역에서 출판하기 2’편이 이어집니다.
글_남해의봄날 정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