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무척 다채로운 도시다.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환경, 풍부한 바다 먹거리, 이순신 장군의 유적들, 수준 높은 전통 공예, 그리고 근현대 문화예술계의 거장들. 처음 여행을 왔을 때부터 이 작은 도시에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콘텐츠들이 쌓이고 끊임없이 생겨나는지 신기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게 놀랍게 다가온 것은 윤이상,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백석, 전혁림, 이중섭 등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왔던 시대의 거장들이 통영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하고, 혹은 잠시 머물며 그 기억을 바탕으로 빼어난 작품들을 선보였다는 사실이었다.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으나 문학을 전공한 터라 통영에 살게 되었을 때 마음먹은 일 중 하나가 통영 출신 문학가들의 흔적을 찾아가 보자는 것이었다.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풍광과 갖가지 축제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제철 먹거리들에 정신이 팔려 처음 먹었던 마음은 하루하루 미뤄졌지만 조금 늦게라도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통영에 있는 문학가의 기념관 두 곳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박경리
‘고향이란 인간사와 풍물과 산천, 삶의 모든 것의 추억이 묻혀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 인생의 모든 자산이며 30여 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30년, 원주에서 5년 간 뜨내기 생활을 하며 나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박경리의수필집 <생명의 아픔> 중에서
시내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는 산양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박경리기념관. 평일에는 학생 등 단체 관람객, 주말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제법 많이 찾는 곳이다. 기념관은 작가연보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가 이루어져 있다. 친필원고, 편지, 계약서 등 작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문서들과 함께 한 쪽에는 작가의 서재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박경리 작가가 그토록 아꼈다는 통영 나비장, 늘 곁에 두고 수없이 넘겨본 듯 윤이 나는 국어사전, 자개 연필꽂이 등이 소박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전시관 한쪽에는 통영 일대를 무대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작한 디오라마가 놓여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통영의 지금 모습과 옛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박경리기념관을 찾을 때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기념관 뒤쪽으로 조성된 박경리공원이다. 작가는 통영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지만 마지막에 선택한 영혼의 안식처는 고향 땅 통영이었다. 시비와 어록비 등이 있는 산책로를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작가의 묘소가 있다. 묘소에서 보는 풍광이 또 일품인데, 논, 밭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통영 바다의 풍경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볕이 잘 드는 남향의 자리라 겨울에 찾아도 산책로 곳곳에서 꽃 무리를 만날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 도입 부분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통영 바다를 사랑했는지, 그래서 지금 얼마나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지 그 마음이 느껴진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갓, 소반, 경대, 문갑, 두석장, 나전칠기 등)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박경리의<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시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시 김춘수의 ‘꽃’ 일부다. 시인 김춘수는 ‘꽃’과 함께 오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의미와 무의미를 탐구하며 언어의 절대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철학적인 시작(詩作)으로 대중에게 온전히 이해 받지 못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꽃’ 역시 종종 사랑의 연가(戀歌)로 쓰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형이상학적인 시이다.
김춘수유품전시관은 우리 부부가 자주 오고 가던 미수동 해안산책로 끝 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번 들어가 봐야지 마음을 먹으면서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차를 타고 찾아가야 하는 박경리기념관이나 다리를 하나 건너 한참 걸어가야 하는 윤이상기념관보다 한참 늦은 방문이었다. 변명을 하나 하자면 그림 감상과 화가들을 좋아하고 교류하며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 등의 화가들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쓴 미적 감각 뛰어난 시인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그 쓸쓸한 외관 때문이었다. 멋 없고 차가운 관공서 건물 한 켠에 세들어 있는 듯한 그 모양새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아침, 겨우 큰맘 먹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를 보는 내내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김춘수유품전시관 역시 전시하고 있는 큰 구성은 박경리기념관과 유사했다. 시인의 작품과 생애를 알 수 있는 연보, 쓰고 고친 고뇌의 흔적이 묻어나는 육필 원고, 사진과 서예작품, 도장, 편지와 엽서, 그리고 시인이 평소 사용하던 가구와 책, 의복, 소품들로 침실과 서재를 재현해 꾸민 ‘김춘수 방’이 전시되어 있다. 통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과 도쿄 등에서 공부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중반을 통영에 머물며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전혁림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냈던 김춘수 시인. 그 역시 생의 더 많은 시간은 대구와 서울 등 타지에서 보내야 했지만 통영의 바다를 늘 잊지 못했다.
“요즘도 나는 화창한 대낮 길을 가다가 문득 어디선가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환청이다. 갈매기의 울음은 고양이의 울음을 닮았다.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것은 답답하다. 바다가 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고향 바다는 너무나 멀리에 있다. 대구에서 20년이나 살면서 서울에서 10년 넘어 살면서 나는 자주자주 바다를 꿈에서만 보곤 했다. 바다는 나의 생리의 한 부분처럼 되었다. 바다, 특히 통영(내 고향) 앞바다- 한려수도로 트인 그 바다는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그 뉘앙스는 내 시가 그 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든 그 바닥에 깔린 표정이 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혼자서 스스로 생각한다.”
김춘수 유품전시관에 들어서면 통영 바다가 펼쳐진 파노라마 사진과 함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시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 그 글 앞에 섰다.
바다에서 건져낸 펄떡이는 언어들
전시관 한쪽 구석에는 김춘수기념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사용하는 임시 전시관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시인의 생가를 매입해 그 자리에 제대로 된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하나, 생가에는 시인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고 그들은 쉽사리 생가를 팔 생각이 없어 기념관 건립 계획은 구체적인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전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경리 작가의 생가 역시 통영시에서 매입하고자 했으나 살고 있는 이들이 매매에 응하지 않아 담벼락에 작은 표지판만 붙여둔 상태다.
김춘수와 박경리, 시와 소설을 대표하는 한국 문학계의 두 거장이 태어난 도시 통영. 그들의 흔적, 영감을 받았던 풍광 등을 더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게 쉽지 않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들을 이해하고 싶을 때는 바다 앞에 선다. 통영에 살며 문화예술계의 거장들이 나올 수 있었던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 고민해 보았으나 찾을 수 있는 답은 결국 바다 이상은 없었다. 많은 바다를 봐왔지만 남해안, 그 중에서도 통영 바다는 복잡미묘하기로는 손꼽히는 바다이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시간을 갖고 보니 통영 바다는 그냥 감상할 수 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과 물빛을 보여주어 말을 거는 바다, 자꾸 생각하게 하는 바다, 집중해서 혹은 마음을 비우고 읽어내야 하는 하나의 생명력 있는 텍스트였다. 그 앞에 서면 내가 차마 알 수 없는 세월과 깊이에 겸손하게 된다. 이 바다에서 펄떡이며 살아 있는 언어를 건져낸 작가들의 시선이 더 궁금해진다.
<박경리기념관 >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신전리 1429-9번지 이용시간: 9:00~18:00 휴무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휴관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pkn.tongyeong.go.kr 전화: 055-650-2540~2
<김춘수유품전시관> 주소: 경남 통영시 봉평동 451 이용시간: 09:00~18:00 휴무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명절 연휴 휴관 입장료: 무료 전화: 055-650-4538 |
글_남해의봄날 장혜원, 사진_ 정환정
통영은 무척 다채로운 도시다.바다와 섬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환경, 풍부한 바다 먹거리, 이순신 장군의 유적들, 수준 높은 전통 공예, 그리고 근현대 문화예술계의 거장들. 처음 여행을 왔을 때부터 이 작은 도시에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다양한 콘텐츠들이 쌓이고 끊임없이 생겨나는지 신기했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내게 놀랍게 다가온 것은 윤이상, 박경리, 김춘수, 유치환, 백석, 전혁림, 이중섭 등 교과서에서 익히 보아왔던 시대의 거장들이 통영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하고, 혹은 잠시 머물며 그 기억을 바탕으로 빼어난 작품들을 선보였다는 사실이었다.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으나 문학을 전공한 터라 통영에 살게 되었을 때 마음먹은 일 중 하나가 통영 출신 문학가들의 흔적을 찾아가 보자는 것이었다. 시시때때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풍광과 갖가지 축제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제철 먹거리들에 정신이 팔려 처음 먹었던 마음은 하루하루 미뤄졌지만 조금 늦게라도 가볍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통영에 있는 문학가의 기념관 두 곳을 하나씩 둘러보았다.
한국 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가 박경리
‘고향이란 인간사와 풍물과 산천, 삶의 모든 것의 추억이 묻혀있는 곳이다. 고향은 내 인생의 모든 자산이며 30여 년간 내 문학의 지주요, 원천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30년, 원주에서 5년 간 뜨내기 생활을 하며 나는 고향을 찾지 않았다.’–박경리의수필집 <생명의 아픔> 중에서
시내에서는 제법 떨어져 있는 산양면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박경리기념관. 평일에는 학생 등 단체 관람객, 주말에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제법 많이 찾는 곳이다. 기념관은 작가연보부터 시작해서 작가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가 이루어져 있다. 친필원고, 편지, 계약서 등 작가의 흔적을 볼 수 있는 문서들과 함께 한 쪽에는 작가의 서재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 있다. 박경리 작가가 그토록 아꼈다는 통영 나비장, 늘 곁에 두고 수없이 넘겨본 듯 윤이 나는 국어사전, 자개 연필꽂이 등이 소박하면서도 기품 넘치는 작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전시관 한쪽에는 통영 일대를 무대로 한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작한 디오라마가 놓여 있다.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통영의 지금 모습과 옛모습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박경리기념관을 찾을 때 놓쳐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는 기념관 뒤쪽으로 조성된 박경리공원이다. 작가는 통영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지만 마지막에 선택한 영혼의 안식처는 고향 땅 통영이었다. 시비와 어록비 등이 있는 산책로를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그 끝에는 작가의 묘소가 있다. 묘소에서 보는 풍광이 또 일품인데, 논, 밭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통영 바다의 풍경이 시원스레 내려다 보인다. 볕이 잘 드는 남향의 자리라 겨울에 찾아도 산책로 곳곳에서 꽃 무리를 만날 수 있다. <김약국의 딸들> 도입 부분을 보면 작가가 얼마나 통영 바다를 사랑했는지, 그래서 지금 얼마나 편안한 안식을 취하고 있을지 그 마음이 느껴진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 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그러니만큼 바다 빛은 맑고 푸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다에 나가서 생선배나 찔러먹고 사는 이 고장의 조야하고 거친 풍토 속에서 그처럼 섬세하고 탐미적인 수공업(갓, 소반, 경대, 문갑, 두석장, 나전칠기 등)이 발달한 것은 이상한 일이다. 바다 빛이 고운 탓이었는지 모른다. 노오란 유자가 무르익고 타는 듯 붉은 동백꽃이 피는 청명한 기후 탓이었는지도 모른다.’–박경리의<김약국의 딸들> 중에서
존재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한 시인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시 김춘수의 ‘꽃’ 일부다. 시인 김춘수는 ‘꽃’과 함께 오래도록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의미와 무의미를 탐구하며 언어의 절대적인 가치에 몰두하는 철학적인 시작(詩作)으로 대중에게 온전히 이해 받지 못하는 시인이기도 하다. ‘꽃’ 역시 종종 사랑의 연가(戀歌)로 쓰이기도 하지만 존재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는 형이상학적인 시이다.
김춘수유품전시관은 우리 부부가 자주 오고 가던 미수동 해안산책로 끝 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앞을 지날 때마다 한 번 들어가 봐야지 마음을 먹으면서도 쉽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차를 타고 찾아가야 하는 박경리기념관이나 다리를 하나 건너 한참 걸어가야 하는 윤이상기념관보다 한참 늦은 방문이었다. 변명을 하나 하자면 그림 감상과 화가들을 좋아하고 교류하며 ‘샤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 등의 화가들에 대한 시를 여러 편 쓴 미적 감각 뛰어난 시인과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그 쓸쓸한 외관 때문이었다. 멋 없고 차가운 관공서 건물 한 켠에 세들어 있는 듯한 그 모양새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아침, 겨우 큰맘 먹고 전시관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를 보는 내내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김춘수유품전시관 역시 전시하고 있는 큰 구성은 박경리기념관과 유사했다. 시인의 작품과 생애를 알 수 있는 연보, 쓰고 고친 고뇌의 흔적이 묻어나는 육필 원고, 사진과 서예작품, 도장, 편지와 엽서, 그리고 시인이 평소 사용하던 가구와 책, 의복, 소품들로 침실과 서재를 재현해 꾸민 ‘김춘수 방’이 전시되어 있다. 통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서울과 도쿄 등에서 공부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20대 초중반을 통영에 머물며 유치환, 윤이상, 김상옥, 전혁림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지냈던 김춘수 시인. 그 역시 생의 더 많은 시간은 대구와 서울 등 타지에서 보내야 했지만 통영의 바다를 늘 잊지 못했다.
“요즘도 나는 화창한 대낮 길을 가다가 문득 어디선가 갈매기 우는 소리를 듣곤 한다. 물론 환청이다. 갈매기의 울음은 고양이의 울음을 닮았다. 바다가 없는 곳에 사는 것은 답답하다. 바다가 보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내 고향 바다는 너무나 멀리에 있다. 대구에서 20년이나 살면서 서울에서 10년 넘어 살면서 나는 자주자주 바다를 꿈에서만 보곤 했다. 바다는 나의 생리의 한 부분처럼 되었다. 바다, 특히 통영(내 고향) 앞바다- 한려수도로 트인 그 바다는 내 시의 뉘앙스가 되고 있다고 나는 스스로 생각한다. 그 뉘앙스는 내 시가 그 동안 어떻게 변화해 왔든 그 바닥에 깔린 표정이 되고 있다. 나는 그렇게 혼자서 스스로 생각한다.”
김춘수 유품전시관에 들어서면 통영 바다가 펼쳐진 파노라마 사진과 함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시인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 그 글 앞에 섰다.
바다에서 건져낸 펄떡이는 언어들
전시관 한쪽 구석에는 김춘수기념관이 건립되기 전까지 사용하는 임시 전시관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시인의 생가를 매입해 그 자리에 제대로 된 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하나, 생가에는 시인과는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고 그들은 쉽사리 생가를 팔 생각이 없어 기념관 건립 계획은 구체적인 진척이 없는 상태라고 전해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박경리 작가의 생가 역시 통영시에서 매입하고자 했으나 살고 있는 이들이 매매에 응하지 않아 담벼락에 작은 표지판만 붙여둔 상태다.
김춘수와 박경리, 시와 소설을 대표하는 한국 문학계의 두 거장이 태어난 도시 통영. 그들의 흔적, 영감을 받았던 풍광 등을 더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게 쉽지 않아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들을 이해하고 싶을 때는 바다 앞에 선다. 통영에 살며 문화예술계의 거장들이 나올 수 있었던 나름의 이유를 찾으려 고민해 보았으나 찾을 수 있는 답은 결국 바다 이상은 없었다. 많은 바다를 봐왔지만 남해안, 그 중에서도 통영 바다는 복잡미묘하기로는 손꼽히는 바다이다.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시간을 갖고 보니 통영 바다는 그냥 감상할 수 있는 단순한 바다가 아니었다. 끊임없이 다른 모습과 물빛을 보여주어 말을 거는 바다, 자꾸 생각하게 하는 바다, 집중해서 혹은 마음을 비우고 읽어내야 하는 하나의 생명력 있는 텍스트였다. 그 앞에 서면 내가 차마 알 수 없는 세월과 깊이에 겸손하게 된다. 이 바다에서 펄떡이며 살아 있는 언어를 건져낸 작가들의 시선이 더 궁금해진다.
주소: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신전리 1429-9번지
이용시간: 9:00~18:00
휴무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휴관
입장료: 무료
홈페이지: pkn.tongyeong.go.kr
전화: 055-650-2540~2
<김춘수유품전시관>
주소: 경남 통영시 봉평동 451
이용시간: 09:00~18:00
휴무일: 월요일, 법정공휴일 다음날, 명절 연휴 휴관
입장료: 무료
전화: 055-650-4538
글_남해의봄날 장혜원, 사진_ 정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