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Local Travel에서는 통영길문화연대가 통영성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있는 글과 생생한 사진으로 전합니다. 통영성을 따라 걷는 길은 세병관, 동피랑과 서피랑 등을 품고 있어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통영의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재미있는 길로 총 4회 걸쳐 소개합니다. |
늘 설렌다. 한 달에 한 번, 매달 첫째주 금요일 ‘통영성 걷기’ 행사를 갖고 있다. 이때마다 제일 궁금하고 설레는 곳은 ‘북포루’ 구간이다. 봄, 여름, 가을 심지어 겨울에도 온갖 야생화가 피어있고 통영의 역사와 아픔을 품은 길. 그 길을 걸어보려 한다.
사계절 야생화와 함께 걷는 길
산복도로 법운암 표지석이 출발지. 횡단보도에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바로 통영성의 토성 구간이다. 직접 걸어본 북포루 토성 구간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온갖 야생화가 피었다. 제일 먼저 하얀 ‘장딸기’ 꽃이 반긴다. 한 송이, 두 송이, 곧 무더기로 핀 꽃을 발견하니 ‘아하, 한 달 뒤에 이 길을 걸으면 시원 달콤한 딸기를 먹겠다’ 는 생각에 군침부터 돈다. 꽃 이름만큼 예쁜 꽃마리, 참꽃마리도 피었다. 이름만큼이나 연하고 하늘빛 도는 꽃잎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신비롭다. 쥐오줌풀은 아예 토성 구간 전체를 장식하기로 했나보다. 뿌리에서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서 ‘쥐오줌’이란 고약한 이름이 붙었지만, 이 뿌리로 약을 만들어 먹으면 푹 잠을 잘 정도로 숙면과 진정제로 효과가 좋다. 이름도 정겨운 토끼풀, 쇠별꽃, 괭이밥, 양지꽃, 산괴불주머니, 고들빼기 꽃에도 인사를 건넨다. 늘 강조하지만, 야생화를 잘 관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숙여야 한다. 특히 바닥에 기다시피 피어나는 봄 야생화는 더욱 더 그러하다. 여름 야생화 역시 최소한 무릎은 꿇어야 제대로 눈인사를 나눌 수 있다. “자신을 낮추라! 그럼 더 많은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야생화가 늘 주는 교훈이다. 울창한 편백, 삼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곧 여황산의 정상(해발 174.2m), 북포루가 코앞이다. 산복도로에서 출발해서 복포루까지,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빨리 오르려 할수록 숨이 더 가쁘고 힘들다. 오히려 천천히 걸으면 더 많은 야생화를 볼 수도 있고, 숨결도 가볍다.
통제영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북포루
북포루에 오르면, 비로소 왜 삼도수군통제영을 통영에 설치했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경상, 전라, 충청 즉 서울 이남의 삼도의 수군을 총괄 지휘하는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는 바로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다. 그럼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은 어디였을까? 바로 한산도다. 1604년 선조 27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 때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된다. 4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 통영의 탄생이었다.
북포루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맞은 편 미륵산을 두고 물길이 둘로 갈라진다. 또 거제도와 통영 사이로 물길이 하나 더 있다. 즉 통영의 삼면이 바다로 통하는 물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육군은 늘 조총을 앞세운 왜군에 비해 열세였다. 하지만 화포 면에서 앞선 조선 수군은 왜군을 압도했다. 통영은 바로 조선이 원하는 최고의 길지였다. 부산과 여수로 향하는 물길, 그리고 대마도로 향하는 물길, 그 중심에 통영이 있다.
왜군의 육군이 쳐들어올 수 있는 곳은 통영에선 원문고개 단 한 곳밖에 없다. 통제영의 관문이자 통영의 유일한 육로 출입구인 이곳 원문은 6.25 당시 해병대가 몇 배가 많은 북한군을 물리쳐 ‘귀신 잡는 해병’이란 영광스런 별명을 얻은 곳이다. 통제영을 당시 두룡포(통영의 옛이름)에 설치한 연유를 알려주는 ‘두룡포기사비(경남도문화재 제112호)’가 세병관 앞마당에 지금도 우뚝 서 있다. 북포루에 서면, 두룡포기사비가 하고자 한 말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다.
공덕귀, 김춘수, 박경리를 배출한 호주선교사의 집
북포루를 뒤로 하고 반대편 언덕길로 내려선다. 이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웅장한 소나무를 만난다. 어른 몇 명이 서로 손을 뻗어야 안을 수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통영의 오랜 세월을 그대로 말해준다. 소나무 옆에는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하는 굿터가 있다. 봄이면 하얀 꽃이 피어나는 탱자나무 울타리 옆으로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보일 것이다. 옛 호주선교사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김춘수, 박경리는 물론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가 상당수가 호주선교사의 영향을 받았다. 박경리(1926년 통영생)는 아예 소설 곳곳에 교회와 선교사를 등장시킨다. 교회는 새로운 구원이자, 말 못한 고민을 털어놓는 상담소였다. 호주선교사의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높은 건물이나 소음이 없던 그 시절, 호주 선교사의 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 세병관 너머 강구안 문화마당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꽃의 시인 김춘수(1922년 통영생) 역시 당시 호주선교사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김춘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천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호주 아이가
한국의 참외를 먹고 있다.
호주 선교사네 집에는
호주에서 가지고 온 뜰이 있고
뜰 위에는
그네들만의 여름하늘이 따로 또 있는데
길을 오면서
행주치마를 두른 천사를 본다.
<유년시1>
일제강점기 호주선교사들은 당시 발달한 서양 신문물을 가져왔다. 이뿐만 아니라 통영의 3.1만세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호주선교사의 집과 <김약국의 딸들>에 숱하게 등장하는 ‘서문고개‘ 옛 통영성벽 역시 산복도로 개설로 그 허리가 끊겼다. 잘려진 허리, 산복도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문화빌라 앞에 남은 통영성벽과 길 건너 감나무 집 아래 통영성벽이 다시 이어지는 날이 올까?
통영길문화연대 cafe.daum.net/tytrekking 역사문화예술도시 통영을 걸어서 만나려는 비영리 시민단체. 통영은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곳곳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문화 예술을 이끌고 있는 예향이다. 다도해를 품은 통영에는 526개의 섬이 있으며, 푸른 바다를 끼고 산새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다채로운 길들이 있다. 통영길문화연대는 2011년 9월부터 소규모 걷기 행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통영 곳곳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걷고자 한다. 매월 첫째 주 금요일은 ‘통영성 걷기’, 둘째 주 금요일은 ‘섬길 걷기’, 셋째 주 금요일은 ‘쉬엄쉬엄 통영을 걷다’, 넷째 주 금요일엔 ‘산양읍을 걷다’, 격주 토요일에는 ‘토요 걷기’를 실시하고 있다. 걷기 행사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
통영人뉴스 www.tyinnews.com 통영人(in)뉴스는 통영 사람과 통영 속으로 뛰어드는 삶을 지향하는 언론 매체다. 통영의 한산신문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통영의 구석구석 이야기와 삶을 취재해온 김상현 기자가 2011년 7월 4일에 독립하여 만들었다. 그 누구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지역의 이슈를 문자 메시지로 제공하고 있으며, 한 달간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한 내용을 정리한 월간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통영의 섬과 골목길, 길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에 관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
글.사진_통영人뉴스 김상현 기자((tyinnews@naver.com)
늘 설렌다. 한 달에 한 번, 매달 첫째주 금요일 ‘통영성 걷기’ 행사를 갖고 있다. 이때마다 제일 궁금하고 설레는 곳은 ‘북포루’ 구간이다. 봄, 여름, 가을 심지어 겨울에도 온갖 야생화가 피어있고 통영의 역사와 아픔을 품은 길. 그 길을 걸어보려 한다.
사계절 야생화와 함께 걷는 길
산복도로 법운암 표지석이 출발지. 횡단보도에서 바라보이는 산줄기가 바로 통영성의 토성 구간이다. 직접 걸어본 북포루 토성 구간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온갖 야생화가 피었다. 제일 먼저 하얀 ‘장딸기’ 꽃이 반긴다. 한 송이, 두 송이, 곧 무더기로 핀 꽃을 발견하니 ‘아하, 한 달 뒤에 이 길을 걸으면 시원 달콤한 딸기를 먹겠다’ 는 생각에 군침부터 돈다. 꽃 이름만큼 예쁜 꽃마리, 참꽃마리도 피었다. 이름만큼이나 연하고 하늘빛 도는 꽃잎은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신비롭다. 쥐오줌풀은 아예 토성 구간 전체를 장식하기로 했나보다. 뿌리에서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서 ‘쥐오줌’이란 고약한 이름이 붙었지만, 이 뿌리로 약을 만들어 먹으면 푹 잠을 잘 정도로 숙면과 진정제로 효과가 좋다. 이름도 정겨운 토끼풀, 쇠별꽃, 괭이밥, 양지꽃, 산괴불주머니, 고들빼기 꽃에도 인사를 건넨다. 늘 강조하지만, 야생화를 잘 관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숙여야 한다. 특히 바닥에 기다시피 피어나는 봄 야생화는 더욱 더 그러하다. 여름 야생화 역시 최소한 무릎은 꿇어야 제대로 눈인사를 나눌 수 있다. “자신을 낮추라! 그럼 더 많은 아름다움을 볼 것이다.” 야생화가 늘 주는 교훈이다. 울창한 편백, 삼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곧 여황산의 정상(해발 174.2m), 북포루가 코앞이다. 산복도로에서 출발해서 복포루까지,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빨리 오르려 할수록 숨이 더 가쁘고 힘들다. 오히려 천천히 걸으면 더 많은 야생화를 볼 수도 있고, 숨결도 가볍다.
통제영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북포루
북포루에 오르면, 비로소 왜 삼도수군통제영을 통영에 설치했는지 그 이유를 실감할 수 있다. 경상, 전라, 충청 즉 서울 이남의 삼도의 수군을 총괄 지휘하는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는 바로 구국의 영웅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다. 그럼 최초의 삼도수군통제영은 어디였을까? 바로 한산도다. 1604년 선조 27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 때 삼도수군통제영이 통영에 설치된다. 40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 통영의 탄생이었다.
북포루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면 맞은 편 미륵산을 두고 물길이 둘로 갈라진다. 또 거제도와 통영 사이로 물길이 하나 더 있다. 즉 통영의 삼면이 바다로 통하는 물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육군은 늘 조총을 앞세운 왜군에 비해 열세였다. 하지만 화포 면에서 앞선 조선 수군은 왜군을 압도했다. 통영은 바로 조선이 원하는 최고의 길지였다. 부산과 여수로 향하는 물길, 그리고 대마도로 향하는 물길, 그 중심에 통영이 있다.
왜군의 육군이 쳐들어올 수 있는 곳은 통영에선 원문고개 단 한 곳밖에 없다. 통제영의 관문이자 통영의 유일한 육로 출입구인 이곳 원문은 6.25 당시 해병대가 몇 배가 많은 북한군을 물리쳐 ‘귀신 잡는 해병’이란 영광스런 별명을 얻은 곳이다. 통제영을 당시 두룡포(통영의 옛이름)에 설치한 연유를 알려주는 ‘두룡포기사비(경남도문화재 제112호)’가 세병관 앞마당에 지금도 우뚝 서 있다. 북포루에 서면, 두룡포기사비가 하고자 한 말을 눈으로 실감할 수 있다.
공덕귀, 김춘수, 박경리를 배출한 호주선교사의 집
북포루를 뒤로 하고 반대편 언덕길로 내려선다. 이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웅장한 소나무를 만난다. 어른 몇 명이 서로 손을 뻗어야 안을 수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는 통영의 오랜 세월을 그대로 말해준다. 소나무 옆에는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에 등장하는 굿터가 있다. 봄이면 하얀 꽃이 피어나는 탱자나무 울타리 옆으로 한창 공사 중인 건물이 보일 것이다. 옛 호주선교사의 집이 있었던 곳이다. 김춘수, 박경리는 물론 통영을 대표하는 예술가 상당수가 호주선교사의 영향을 받았다. 박경리(1926년 통영생)는 아예 소설 곳곳에 교회와 선교사를 등장시킨다. 교회는 새로운 구원이자, 말 못한 고민을 털어놓는 상담소였다. 호주선교사의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높은 건물이나 소음이 없던 그 시절, 호주 선교사의 집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면 세병관 너머 강구안 문화마당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꽃의 시인 김춘수(1922년 통영생) 역시 당시 호주선교사의 집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김춘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천사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호주 아이가
한국의 참외를 먹고 있다.
호주 선교사네 집에는
호주에서 가지고 온 뜰이 있고
뜰 위에는
그네들만의 여름하늘이 따로 또 있는데
길을 오면서
행주치마를 두른 천사를 본다.
<유년시1>
일제강점기 호주선교사들은 당시 발달한 서양 신문물을 가져왔다. 이뿐만 아니라 통영의 3.1만세 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다. 호주선교사의 집과 <김약국의 딸들>에 숱하게 등장하는 ‘서문고개‘ 옛 통영성벽 역시 산복도로 개설로 그 허리가 끊겼다. 잘려진 허리, 산복도로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문화빌라 앞에 남은 통영성벽과 길 건너 감나무 집 아래 통영성벽이 다시 이어지는 날이 올까?
역사문화예술도시 통영을 걸어서 만나려는 비영리 시민단체. 통영은 빼어난 풍광과 더불어 곳곳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문화 예술을 이끌고 있는 예향이다. 다도해를 품은 통영에는 526개의 섬이 있으며, 푸른 바다를 끼고 산새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는 다채로운 길들이 있다. 통영길문화연대는 2011년 9월부터 소규모 걷기 행사를 주관하고 있으며, 통영 곳곳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걷고자 한다.
매월 첫째 주 금요일은 ‘통영성 걷기’, 둘째 주 금요일은 ‘섬길 걷기’, 셋째 주 금요일은 ‘쉬엄쉬엄 통영을 걷다’, 넷째 주 금요일엔 ‘산양읍을 걷다’, 격주 토요일에는 ‘토요 걷기’를 실시하고 있다. 걷기 행사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통영人(in)뉴스는 통영 사람과 통영 속으로 뛰어드는 삶을 지향하는 언론 매체다. 통영의 한산신문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통영의 구석구석 이야기와 삶을 취재해온 김상현 기자가 2011년 7월 4일에 독립하여 만들었다. 그 누구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지역의 이슈를 문자 메시지로 제공하고 있으며, 한 달간 홈페이지를 통해 보도한 내용을 정리한 월간지를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통영의 섬과 골목길, 길 곳곳에 피어있는 들꽃에 관한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연재하고 있다.
글.사진_통영人뉴스 김상현 기자((tyin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