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봄날이 위치한 통영은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통영은 아주 넓은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려수도, 그 위에 흩뿌려진 570여 개의 섬. 2014년 Local Travel에서는 남해의봄날이 만난 다채로운 통영의 섬들을 소개합니다. |
남해의봄날에서는 지금까지 통영의 섬 이야기를 다룬 두 권의 책이 나왔다. 하나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만든 '바다백리길'을 소개하는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이고, 다른 하나는 2014년 첫 책으로 출간한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이다.
통영은 작은 도시이지만 어느 도시보다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무엇보다 섬이 있다. 한려수도의 무수한 섬들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의 수는 44개. 섬들은 각기 다른 풍경과 매력,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지닌 바다의 보고이다. 이 수많은 섬들 중 가장 먼저 이야기 할 곳은 통영 그리고 한려해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적인 인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이 서려 있는 섬, 한산도다.
한산도 역사길을 걷다
한산도는 자체로 큰 섬이다. 한산면의 면 소재지이기도 한데 여러 개의 마을이 있고 2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섬 일주도로를 따라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도 다닌다. 최근 다리를 놓아 옆에 이웃한 작은 섬 추봉도도 한 섬처럼 쉽게 오갈 수 있다.
하지만 한산도가 큰 섬이라는 말은 단순히 섬이 크다는 말이 아니다. 한산도는 이 나라를 통틀어 손꼽을만큼 인상적인 산책로를 가지고 있다. 산책로는 한산도의 중앙부를 통과하는데 그곳에는 이 땅에서 가장 깊은 바람이 분다. 곰솔과 소나무의 숲을 어루만지며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그 소리의 깊이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마치 이승이 아닌 선계 저편으로부터 뭍의 욕망에 찌든 마음을 씻어 내리는 것 같다. 몇 번이고 폐부 깊숙히까지 스며드는 이 바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한산도는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지가 될 것이다.
배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안내판을 보며 선착장과 가까운 제승당으로 직행한다. 작고 아담한 만을 따라 걸어가면 수군들 이 보초를 서고 있는 제승당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을 우물터며 영정을 모신 사당, 시름을 읊던 수루와 한산정을 보고 감탄한다. 병사들이 활을 쏘던 한산정은 바다 건너편에 과녁이 세워져 있는데 그 거리가 145m에 이른다. 근접전에서 활이 주 무기였던 조선군이니 바다에서 적선을 마주하고 활을 쏘는 훈련을 하기에 적격이다. 이 충무공은 이곳에서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하여 실전거리 적응훈련을 했다고 한다. 옛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섬의 전부인양, 제승당을 나서자마자 뱃시간에 맞춰 뭍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이 보는 것은 한산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이 말을 몰고 달렸을지도 모르는 숲길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여러 마을과 아름다운 풍경이 숨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권유하자면 일단 제승당을 보고 나면 돌아가는 배를 타지 말고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하겠다. 섬을 일주하는 버스가 제승당 앞에 시간마다 다닌다. 그 버스를 타고 섬의 반대편으로 가면 고즈넉한 몽돌해수욕장과 부두를 볼 수 있고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상처를 담고 있는 포로수용소 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70점짜리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진정 한산도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덮을개에서부터 이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망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올라야 한다.
역사의 현장, 망산에 오르다
한산도의 백리길은 역사길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오르는 능선마다 임진왜란 때 격전이 펼쳐졌던 해상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란 말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발 293m의 망산은 경사도 험하지 않고 짧은 오르막이 있으면 길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평소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가볍게 도전해볼 수 있다. 물론 수분 보충을 위한 물은 휴대해야 한다. 아무리 시원한 바람 소리도 갈증을 달래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 산으로 오르기 시작되면 얼마 안가 동백터널을 만날 수 있다. 동백나무가 가로수처럼 양쪽에서 터널을 만든 이 길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냥 평범한 숲이지만 동백꽃의 계절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는 이 붉은 꽃은 북쪽의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동백이 뚝뚝 져버렸을 때다. 꽃송이채 무참히 떨어져 버린 동백이 바닥을 붉게 덮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물론 1년 중 며칠뿐이다. 하지만 아직 붉고 생생한 꽃들이 뒤덮인 길을 지나는 것은 가슴이 떨릴 만큼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차마 밟고 갈 수 없는 꽃들이 길에 가득해 걸음을 조심해야 할 테니.
10여 리에 걸친 아름다운 산책길이 끝나는 곳에서 망산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약 150m의 높이를 올라가는 길이니 등산으로 치면 그리 힘든 길이라 할 수 없지만 한산도에서는 가장 험한 오르막이다. 망산은 한산도를 이루는 산줄기 중에 최고봉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근방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요지란 것을 알 수 있다. 400여 년전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를 삼도수군의 총사령부로 삼고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한산도는 해상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고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하여 밖에서 볼 수 없는 항구를 숨기고 있어 적지였다.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농사도 지으면서 망산에 망대를 만들고 병사를 두어 대마도를 비롯한 인근 해안의 적선의 동태를 감시했다. 우리나라 섬 곳곳에는 망산이란 지명이 여럿 존재하는데 모두 봉화를 올리고 적을 감시하는 망루와 관계된 것이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큼 망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일품이다. 날이 맑으면 푸른 바다와 섬들이 마치 점호를 받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땀 흘려 올라갈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진두마을과 추봉도
한산도의 구석구석은 모두가 역사의 현장이다. 망산을 내려오면 6.8Km의 한산도 역사길 마지막 코스인 진두마을이다. 한산도의 학교와 면사무소, 한려해상 국립공원 사무소, 우체국, 농협까지 이곳에 모여 있다. 진두마을은 한산도의 중심지다. 예전에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이어서 ‘진을 친 거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두마을에서 부두 쪽으로 보면 새로 생긴 다리가 보이는데 추봉도로 가는 추봉교이다. 추봉의 ‘봉蜂’은 벌을 뜻한다. 바위에 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봉도 앞바다는 조기, 갈치 등의 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어장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몽돌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보통 섬의 몽돌 해변은 그 길이가 짧지만 추봉도의 몽돌밭은 700여 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추봉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포로수용소 유적이다.
추봉도와 용초도에 수용된 포로들은 거제도처럼 수가 많지는 않았으나 가장 다루기 힘든 포로들만을 분류해 수용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수용소 건설로 추봉도와 용초도에 살던 주민 1500여 명은 졸지에 집과 땅을 수용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나 피란 아닌 피란 생활을 해야 했다. 두 섬에 수용소가 들어 선 것은 섬치고는 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추봉도에는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쓰는 물을 조달하기 위해 만든 500여 평 규모의 저수지가 아직 남아있다. 지금 수용소 터는 다시 주민들의 텃밭이 되어 많은 부분이 사라져 버렸지만 수용소의 담 같은 잔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의 비극을 담은 이곳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념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글_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
남해의봄날에서는 지금까지 통영의 섬 이야기를 다룬 두 권의 책이 나왔다. 하나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에서 만든 '바다백리길'을 소개하는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이고, 다른 하나는 2014년 첫 책으로 출간한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이다.
통영은 작은 도시이지만 어느 도시보다 더 다채로운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무엇보다 섬이 있다. 한려수도의 무수한 섬들 가운데 사람이 사는 유인도의 수는 44개. 섬들은 각기 다른 풍경과 매력,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지닌 바다의 보고이다. 이 수많은 섬들 중 가장 먼저 이야기 할 곳은 통영 그리고 한려해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상징적인 인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이 서려 있는 섬, 한산도다.
한산도 역사길을 걷다
한산도는 자체로 큰 섬이다. 한산면의 면 소재지이기도 한데 여러 개의 마을이 있고 2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섬 일주도로를 따라 한 시간에 한 대씩 버스도 다닌다. 최근 다리를 놓아 옆에 이웃한 작은 섬 추봉도도 한 섬처럼 쉽게 오갈 수 있다.
하지만 한산도가 큰 섬이라는 말은 단순히 섬이 크다는 말이 아니다. 한산도는 이 나라를 통틀어 손꼽을만큼 인상적인 산책로를 가지고 있다. 산책로는 한산도의 중앙부를 통과하는데 그곳에는 이 땅에서 가장 깊은 바람이 분다. 곰솔과 소나무의 숲을 어루만지며 저 멀리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은 그 소리의 깊이만으로도 듣는 사람을 압도한다. 마치 이승이 아닌 선계 저편으로부터 뭍의 욕망에 찌든 마음을 씻어 내리는 것 같다. 몇 번이고 폐부 깊숙히까지 스며드는 이 바람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한산도는 이미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행지가 될 것이다.
배에서 내린 여행자들은 섬에 도착하자마자 안내판을 보며 선착장과 가까운 제승당으로 직행한다. 작고 아담한 만을 따라 걸어가면 수군들 이 보초를 서고 있는 제승당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순신 장군이 머물렀을 우물터며 영정을 모신 사당, 시름을 읊던 수루와 한산정을 보고 감탄한다. 병사들이 활을 쏘던 한산정은 바다 건너편에 과녁이 세워져 있는데 그 거리가 145m에 이른다. 근접전에서 활이 주 무기였던 조선군이니 바다에서 적선을 마주하고 활을 쏘는 훈련을 하기에 적격이다. 이 충무공은 이곳에서 밀물과 썰물의 교차를 이용하여 실전거리 적응훈련을 했다고 한다. 옛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러나 여기까지가 섬의 전부인양, 제승당을 나서자마자 뱃시간에 맞춰 뭍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들이 보는 것은 한산도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어쩌면 이순신 장군이 말을 몰고 달렸을지도 모르는 숲길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여러 마을과 아름다운 풍경이 숨어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권유하자면 일단 제승당을 보고 나면 돌아가는 배를 타지 말고 마을로 가는 버스를 타라고 하겠다. 섬을 일주하는 버스가 제승당 앞에 시간마다 다닌다. 그 버스를 타고 섬의 반대편으로 가면 고즈넉한 몽돌해수욕장과 부두를 볼 수 있고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의 상처를 담고 있는 포로수용소 터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70점짜리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진정 한산도의 참모습을 보고 싶다면 덮을개에서부터 이 섬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망산으로 가는 등산로를 올라야 한다.
역사의 현장, 망산에 오르다
한산도의 백리길은 역사길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오르는 능선마다 임진왜란 때 격전이 펼쳐졌던 해상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등산로란 말에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해발 293m의 망산은 경사도 험하지 않고 짧은 오르막이 있으면 길고 평탄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평소 운동을 많이 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가볍게 도전해볼 수 있다. 물론 수분 보충을 위한 물은 휴대해야 한다. 아무리 시원한 바람 소리도 갈증을 달래줄 수는 없는 법이다.
일단 산으로 오르기 시작되면 얼마 안가 동백터널을 만날 수 있다. 동백나무가 가로수처럼 양쪽에서 터널을 만든 이 길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그냥 평범한 숲이지만 동백꽃의 계절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추위를 아랑곳 하지 않는 이 붉은 꽃은 북쪽의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어느 날 갑자기 동백이 뚝뚝 져버렸을 때다. 꽃송이채 무참히 떨어져 버린 동백이 바닥을 붉게 덮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물론 1년 중 며칠뿐이다. 하지만 아직 붉고 생생한 꽃들이 뒤덮인 길을 지나는 것은 가슴이 떨릴 만큼 귀한 경험이 될 것이다. 차마 밟고 갈 수 없는 꽃들이 길에 가득해 걸음을 조심해야 할 테니.
10여 리에 걸친 아름다운 산책길이 끝나는 곳에서 망산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경사가 시작된다. 약 150m의 높이를 올라가는 길이니 등산으로 치면 그리 힘든 길이라 할 수 없지만 한산도에서는 가장 험한 오르막이다. 망산은 한산도를 이루는 산줄기 중에 최고봉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근방을 모두 조망할 수 있는 요지란 것을 알 수 있다. 400여 년전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를 삼도수군의 총사령부로 삼고 남해의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한산도는 해상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고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하여 밖에서 볼 수 없는 항구를 숨기고 있어 적지였다. 군사를 조련하고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 농사도 지으면서 망산에 망대를 만들고 병사를 두어 대마도를 비롯한 인근 해안의 적선의 동태를 감시했다. 우리나라 섬 곳곳에는 망산이란 지명이 여럿 존재하는데 모두 봉화를 올리고 적을 감시하는 망루와 관계된 것이다. 근방에서 가장 높은 곳인 만큼 망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일품이다. 날이 맑으면 푸른 바다와 섬들이 마치 점호를 받는 것처럼 일목요연하게 보인다. 땀 흘려 올라갈 만한 가치가 충분한 곳이다.
진두마을과 추봉도
한산도의 구석구석은 모두가 역사의 현장이다. 망산을 내려오면 6.8Km의 한산도 역사길 마지막 코스인 진두마을이다. 한산도의 학교와 면사무소, 한려해상 국립공원 사무소, 우체국, 농협까지 이곳에 모여 있다. 진두마을은 한산도의 중심지다. 예전에 군사기지가 있었던 곳이어서 ‘진을 친 거점’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진두마을에서 부두 쪽으로 보면 새로 생긴 다리가 보이는데 추봉도로 가는 추봉교이다. 추봉의 ‘봉蜂’은 벌을 뜻한다. 바위에 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추봉도 앞바다는 조기, 갈치 등의 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어장으로 유명했다. 지금은 몽돌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보통 섬의 몽돌 해변은 그 길이가 짧지만 추봉도의 몽돌밭은 700여 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추봉도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포로수용소 유적이다.
추봉도와 용초도에 수용된 포로들은 거제도처럼 수가 많지는 않았으나 가장 다루기 힘든 포로들만을 분류해 수용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수용소 건설로 추봉도와 용초도에 살던 주민 1500여 명은 졸지에 집과 땅을 수용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나 피란 아닌 피란 생활을 해야 했다. 두 섬에 수용소가 들어 선 것은 섬치고는 물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추봉도에는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쓰는 물을 조달하기 위해 만든 500여 평 규모의 저수지가 아직 남아있다. 지금 수용소 터는 다시 주민들의 텃밭이 되어 많은 부분이 사라져 버렸지만 수용소의 담 같은 잔해들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사의 비극을 담은 이곳이 잊혀지지 않도록 기념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글_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