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의봄날이 위치한 통영은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통영은 아주 넓은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려수도, 그 위에 흩뿌려진 570여 개의 섬. 2014년에 이어 2015년도 Local Travel을 통해 남해의봄날이 만난 다채로운 통영의 섬들을 소개합니다. |
비진도는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섬이 붙어 있는 것이 마치 땅콩처럼 보인다. 요즘에 이름을 붙였다면 땅콩섬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옛사람들에게는 안개에 싸인 비진도의 모습이 구슬 ‘옥玉’자를 닮았다 하여 보물에 비할만한 섬이란 뜻으로 비진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진도는 또 어찌 보면 두 개의 섬 모양이 여인의 가슴을 닮기도 했다. 이 섬을 또 다른 말로는 미인도라고 부르는데 섬이 아름답기 때문도 있지만, 예전부터 미인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섬의 전체적인 인상은 여성의 부드러움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비진도에는 내항과 외항, 두 개의 항구가 있다. 외항마을로 여행자들이 더 몰리는 것은 안쪽 섬에 두 개의 해수욕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모래 해수욕장이고 반대쪽은 몽돌 해수욕장인데 섬과 섬을 이어주는 좁은 도로를 마주하고 위치하기 때문에 한 번에 두 개의 해수욕장을 오갈 수 있다. 이런 두 개의 해수욕장이 있는 지형은 전국에 여수와 비진도 두 곳뿐이라는데 규모로 보면 비진도가 더 크다. 통영 지역은 모래가 많지 않아 모래 해수욕장이 드물다. 그래서일까. 통영 사람들은 여름이면 비진도에서 해수욕을 즐긴다고 했다. 게다가 비진도는 예부터 전국에서 가장 물이 맑은 곳으로 유명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서로 마주한 두 개의 바다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진도의 두 섬은 남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외항의 해수욕장은 동, 서쪽으로 각각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서쪽 해수욕장은 모래밭이고 동쪽 해수욕장은 몽돌밭이다. 해안선의 길이가 600m나 되는 모래 해수욕장에는 내해의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반면, 500m 정도의 몽돌 해수욕장에는 대양의 거센 파도가 몰아쳐서 그 소리가 우렁차다.
외항마을은 지대가 낮고 평평하여 작은 섬치고는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비진도는 원래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어장이었다. 사방의 배들이 비진도 앞바다로 와서 조업을 했다. 특히 멸치잡이가 성해서 멀리 일본에서까지 멸치잡이 배들이 왕래했으며, 야생 채취 미역으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비진도는 일찍부터 경제에 깨어 있다 하여 부자섬이라 불렸다. 크게 어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통영에서는 비진도를 모범섬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바다
많은 이들이 비진도의 해수욕장만을 생각하고 찾아오지만, 비진도의 진짜 장관은 선유봉에서 볼 수 있다. 산호길이라 이름 붙은 이 길에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하나는 외항선착장에서 시작하여 섬의 정상인 선유봉을 돌아 다시 외항선착장으로 오는 코스로 거리는 4.8km이다.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각보다 오르막이 심해서 숨을 돌리고 여유 있게 구경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외항마을에서 내항마을까지는 자동차가 갈 수 있는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2.17km로 약 40여 분이 소요된다.
선유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의 연속이다. 이는 섬 크기에 비해서 높은 312m짜리 선유봉이 솟아있기 때문이다. 외항선착장에서 흔들바위를 지나 선유봉까지 1.3km를 계속 올라가야 한다. 특히 초입부터 미인도전망대까지 400m의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은 바다백리길의 다른 코스보다 조금 힘든 편이다. 하지만 미인도전망대에 오르는 순간, 이 힘겨움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을 진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다백리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비진도 두 섬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좁은 연결 부분 양쪽으로 펼쳐진 모래 해수욕장과 몽돌 해수욕장을 보면 왜 이곳이 미인섬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비진도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가쁜 숨을 참고 올라간 만큼 보상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라 했는데 직접 당도해보니 정말 틀림없는 말이었다.
오르막길에 비해 내리막길은 수월한 편이다. 후박나무 자생지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비진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전망이 아름답다. 절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여자 스님이 한 분 있다는데 상주하지 않는 듯했다. 절 옆으로는 무성한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동행한 사진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통영 인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꽃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이 비진암 뒤라고 했다. 그 장관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으니 꽃이 필 때 다시 찾기로 했다. 섬은 계절마다 풍광도 느낌도 달라 한 번 찾아서는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주인은 없지만 바다가 보이는 암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길이라 했다. 그렇다면 반대편으로부터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평탄한 길로 오다가 마지막에 오르막을 만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오르막을 올라서 평탄한 길로 끝내는 것이 좋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에 비유하자면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시작 부분에서 고난을 겪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고비 없이 무난한 삶을 산 사람은 갑자기 닥치는 고난에 약한 법이다. 조금 힘겹지만 수시로 나타나는 소사나무, 잣밤나무, 때죽나무, 자귀나무 같은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들과 벗하며 오르는 길은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밤
산호길 탐방을 마치고 외항마을 민박집에 방을 정했다. 외항마을에는 식당도 있고 숙박업소도 많아 여행객들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다. 해 질 무렵 바다를 보니 점점이 보이는 섬들이 붉은 옷을 입고 한참을 망설이는 여인처럼 손을 흔들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일몰과 일출 모두 보기 좋은 곳이라 했다. 피곤했기 때문에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파도 소리가 배게까지 밀려들었다. 몸은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마음은 파도 소리를 따라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관광철이 아닌 섬의 밤은 고즈넉했다. 흐릿한 가로등이 서 있는 좁은 골목길을 나서자 바다가 보였다. 처음에 나타난 바다는 동쪽의 먼 바다였다. 몽돌 해변이 있는 곳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며 몽돌을 차르르 씻어 내려가는 파도 소리에 빠져들었다. 조금 거친 파도를 맞는 몽돌 해변은 어찌 들으면 한숨 같고 어찌 들으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군을 무찌르던 이순신 장군의 호탕한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듣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파도에 씻겨져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파도 소리를 듣다가 문득, 반대편 모래 해변의 파도 소리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좁은 골목을 지나 섬과 섬을 잇는 길 쪽으로 나섰다. 잠깐 걷자 금세 서쪽의 모래 해수욕장이었다. 인적이 없는 모래 해변은 사색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은 안쪽의 바다로 파도가 얌전했다. 그리고 모래로 밀려오는 파도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철썩철썩 하는 소리가 어머니의 자장가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섬과 섬을 이어주는 좁다란 길이 나왔다. 차 한 대 다닐 만한 너비의 그 길 한가운데에 서자 눈에 들어오는 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이었다. 유독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많은 섬답게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 많은 별들에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다. 그때 들었다. 두 해변의 서로 다른 파도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교향악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양쪽으로 서로 다른 파도가 치고 있었다. 몽돌 해변에서는 타악기와 관악기가 달려들었고 모래 해변에서는 현악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서로 다른 박자로 밀려드는 파도인데 듣다 보면 잘 짜여진 화음처럼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한참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별빛 아래서 두 개의 해변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나를 잊고 별과 바람과 파도와 바다에 한 몸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냥 하나의 별이고 파도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출은 보지 못했다. 거의 밤 내내 해변에 서 있다가 방으로 돌아와서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육지로 돌아가는 뱃시간이 다 됐다고 주인이 친절하게 깨울 때 나는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저 배를 놓치고 하룻밤 더 머물고 싶었다. 인생에 갑자기 찾아오는 기쁨도 있는 것이다. 비진도에서 나는 뭍에서 다친 마음을 치유했다.
글_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
비진도는 멀리서 보면 두 개의 섬이 붙어 있는 것이 마치 땅콩처럼 보인다. 요즘에 이름을 붙였다면 땅콩섬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옛사람들에게는 안개에 싸인 비진도의 모습이 구슬 ‘옥玉’자를 닮았다 하여 보물에 비할만한 섬이란 뜻으로 비진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진도는 또 어찌 보면 두 개의 섬 모양이 여인의 가슴을 닮기도 했다. 이 섬을 또 다른 말로는 미인도라고 부르는데 섬이 아름답기 때문도 있지만, 예전부터 미인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섬의 전체적인 인상은 여성의 부드러움을 간직한 모습이었다.
비진도에는 내항과 외항, 두 개의 항구가 있다. 외항마을로 여행자들이 더 몰리는 것은 안쪽 섬에 두 개의 해수욕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쪽은 모래 해수욕장이고 반대쪽은 몽돌 해수욕장인데 섬과 섬을 이어주는 좁은 도로를 마주하고 위치하기 때문에 한 번에 두 개의 해수욕장을 오갈 수 있다. 이런 두 개의 해수욕장이 있는 지형은 전국에 여수와 비진도 두 곳뿐이라는데 규모로 보면 비진도가 더 크다. 통영 지역은 모래가 많지 않아 모래 해수욕장이 드물다. 그래서일까. 통영 사람들은 여름이면 비진도에서 해수욕을 즐긴다고 했다. 게다가 비진도는 예부터 전국에서 가장 물이 맑은 곳으로 유명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펼쳐지는, 서로 마주한 두 개의 바다는 탄성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비진도의 두 섬은 남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외항의 해수욕장은 동, 서쪽으로 각각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서쪽 해수욕장은 모래밭이고 동쪽 해수욕장은 몽돌밭이다. 해안선의 길이가 600m나 되는 모래 해수욕장에는 내해의 잔잔한 파도가 치는 반면, 500m 정도의 몽돌 해수욕장에는 대양의 거센 파도가 몰아쳐서 그 소리가 우렁차다.
외항마을은 지대가 낮고 평평하여 작은 섬치고는 여행자를 위한 숙박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비진도는 원래 여러 종류의 고기들이 많이 잡히는 어장이었다. 사방의 배들이 비진도 앞바다로 와서 조업을 했다. 특히 멸치잡이가 성해서 멀리 일본에서까지 멸치잡이 배들이 왕래했으며, 야생 채취 미역으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비진도는 일찍부터 경제에 깨어 있다 하여 부자섬이라 불렸다. 크게 어업을 하거나 사업을 하는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통영에서는 비진도를 모범섬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바다
많은 이들이 비진도의 해수욕장만을 생각하고 찾아오지만, 비진도의 진짜 장관은 선유봉에서 볼 수 있다. 산호길이라 이름 붙은 이 길에는 두 개의 코스가 있다. 하나는 외항선착장에서 시작하여 섬의 정상인 선유봉을 돌아 다시 외항선착장으로 오는 코스로 거리는 4.8km이다. 세 시간 남짓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생각보다 오르막이 심해서 숨을 돌리고 여유 있게 구경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두 번째는 외항마을에서 내항마을까지는 자동차가 갈 수 있는 포장도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2.17km로 약 40여 분이 소요된다.
선유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의 연속이다. 이는 섬 크기에 비해서 높은 312m짜리 선유봉이 솟아있기 때문이다. 외항선착장에서 흔들바위를 지나 선유봉까지 1.3km를 계속 올라가야 한다. 특히 초입부터 미인도전망대까지 400m의 만만치 않은 오르막길은 바다백리길의 다른 코스보다 조금 힘든 편이다. 하지만 미인도전망대에 오르는 순간, 이 힘겨움을 모두 보상하고도 남을 진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바다백리길에서도 손꼽히는 절경이다. 비진도 두 섬의 모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가운데 좁은 연결 부분 양쪽으로 펼쳐진 모래 해수욕장과 몽돌 해수욕장을 보면 왜 이곳이 미인섬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비진도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 가쁜 숨을 참고 올라간 만큼 보상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이라 했는데 직접 당도해보니 정말 틀림없는 말이었다.
오르막길에 비해 내리막길은 수월한 편이다. 후박나무 자생지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비진암이라는 암자가 나온다. 규모는 작지만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전망이 아름답다. 절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여자 스님이 한 분 있다는데 상주하지 않는 듯했다. 절 옆으로는 무성한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다. 동행한 사진작가의 설명에 의하면 통영 인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백꽃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이 비진암 뒤라고 했다. 그 장관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으니 꽃이 필 때 다시 찾기로 했다. 섬은 계절마다 풍광도 느낌도 달라 한 번 찾아서는 그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주인은 없지만 바다가 보이는 암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이제부터는 평탄한 길이라 했다. 그렇다면 반대편으로부터 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평탄한 길로 오다가 마지막에 오르막을 만나는 게 좋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오르막을 올라서 평탄한 길로 끝내는 것이 좋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에 비유하자면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고 시작 부분에서 고난을 겪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고비 없이 무난한 삶을 산 사람은 갑자기 닥치는 고난에 약한 법이다. 조금 힘겹지만 수시로 나타나는 소사나무, 잣밤나무, 때죽나무, 자귀나무 같은 아름답고 희귀한 나무들과 벗하며 오르는 길은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밤
산호길 탐방을 마치고 외항마을 민박집에 방을 정했다. 외항마을에는 식당도 있고 숙박업소도 많아 여행객들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다. 해 질 무렵 바다를 보니 점점이 보이는 섬들이 붉은 옷을 입고 한참을 망설이는 여인처럼 손을 흔들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이곳은 일몰과 일출 모두 보기 좋은 곳이라 했다. 피곤했기 때문에 일찍 저녁식사를 하고 자려고 누웠다. 그런데 파도 소리가 배게까지 밀려들었다. 몸은 피곤해서 자고 싶은데 마음은 파도 소리를 따라 바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결국 일어나고 말았다.
관광철이 아닌 섬의 밤은 고즈넉했다. 흐릿한 가로등이 서 있는 좁은 골목길을 나서자 바다가 보였다. 처음에 나타난 바다는 동쪽의 먼 바다였다. 몽돌 해변이 있는 곳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며 몽돌을 차르르 씻어 내려가는 파도 소리에 빠져들었다. 조금 거친 파도를 맞는 몽돌 해변은 어찌 들으면 한숨 같고 어찌 들으면 임진왜란 때 이곳에서 왜군을 무찌르던 이순신 장군의 호탕한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듣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파도에 씻겨져 개운해지는 기분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파도 소리를 듣다가 문득, 반대편 모래 해변의 파도 소리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다시 좁은 골목을 지나 섬과 섬을 잇는 길 쪽으로 나섰다. 잠깐 걷자 금세 서쪽의 모래 해수욕장이었다. 인적이 없는 모래 해변은 사색하며 걷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이곳은 안쪽의 바다로 파도가 얌전했다. 그리고 모래로 밀려오는 파도는 잔잔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냈다. 철썩철썩 하는 소리가 어머니의 자장가 같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섬과 섬을 이어주는 좁다란 길이 나왔다. 차 한 대 다닐 만한 너비의 그 길 한가운데에 서자 눈에 들어오는 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이었다. 유독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왔다는 전설이 많은 섬답게 수많은 별들이 하늘에 반짝이고 있었다. 너무 많은 별들에 어지러워서 눈을 감았다. 그때 들었다. 두 해변의 서로 다른 파도 소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교향악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양쪽으로 서로 다른 파도가 치고 있었다. 몽돌 해변에서는 타악기와 관악기가 달려들었고 모래 해변에서는 현악기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서로 다른 박자로 밀려드는 파도인데 듣다 보면 잘 짜여진 화음처럼 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한참을 꼼짝도 하지 못하고 별빛 아래서 두 개의 해변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었다. 그 순간 무엇을 생각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조금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조금 웃었던 것 같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나를 잊고 별과 바람과 파도와 바다에 한 몸으로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냥 하나의 별이고 파도인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일출은 보지 못했다. 거의 밤 내내 해변에 서 있다가 방으로 돌아와서 늦잠을 잤기 때문이다. 육지로 돌아가는 뱃시간이 다 됐다고 주인이 친절하게 깨울 때 나는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저 배를 놓치고 하룻밤 더 머물고 싶었다. 인생에 갑자기 찾아오는 기쁨도 있는 것이다. 비진도에서 나는 뭍에서 다친 마음을 치유했다.
글_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