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Travel

남해의봄날 새소식, 함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위한 봉화섬 연대도 지겟길


남해의봄날이 위치한 통영은 작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통영은 아주 넓은 바다를 품고 있습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한려수도, 그 위에 흩뿌려진 570여 개의 섬. 2014년에 이어 2015년도 Local Travel을 통해 남해의봄날이 만난 다채로운 통영의 섬들을 소개합니다.

 

연대도는 바다백리길 가운데 가장 작은 섬이다. 소매물도나 비진도도 크지 않지만 그 섬들은 자매섬인 등대섬이 있거나 두 개의 섬이 하나로 이어져 있어 다양함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달랑 하나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연대도가 작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든다. 실제로 섬을 한 바퀴 도는데 거리는 10리 정도밖에 되지 않는 4.5km이다. 자동차 길도 거의 없어 섬에 갈 때는 차를 선착장에 세워두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단언컨대 작은 크기가 이 섬의 장점이기도 하다. 연대도는 섬을 찾는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저 상념을 훌훌 털어 버리고 가볍게 나와 한 바퀴 돌 수 있는 섬이 연대도다.

 

산양의 달아선착장을 출발하는 배를 타고 30여 분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연대도에 도착한다. 섬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산봉우리 같은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연대라는 이름이 연꽃자리에서 나온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연대는 봉화를 뜻했다. 즉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화대가 있는 섬이라는 것이다. 높이 220m의 연대봉 정상에는 예전에 삼도수군 통제영의 수군들이 적의 침입을 감시하던 봉화대가 있다. 크기는 작지만 요충지에 있다는 증거다. 

 

 

여행자를 맞이하는 작고 느린 섬

배가 선착장에 가까워지자 작고 아담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50세대 남짓, 80여 명도 안 되는 주민들이 이 섬에 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 세상과의 인연이 끊어진 무릉도원처럼 시간은 느릿느릿 그늘을 찾아다니고 파도가 무료하게 부서지는 해변엔 사람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마을회관 옆 평상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배가 오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고령자가 많고 젊은 사람들은 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갔을 터였다. 주말이나 관광철이 아니라면 이 섬은 모든 것을 활짝 열고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어디를 가든, 무슨 짓을 하든, 간섭할 사람은 없었다. 빈 집 앞에 활짝 핀 수국꽃들만 내 등을 따라다녔다. 봄철에 피는 수국은 땅의 성질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의 꽃잎을 틔운다. 연대도에서 만난 수국은 한 나무에 여러 색의 꽃들이 모두 소담스럽게 피어 있어 이 섬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가진 곳이라고 알려주는 듯했다. 이 작고 느린 섬에서, 가능하다면 휴대폰도 꺼내지 말고 시계도 보지 말아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비추다, 에코 아일랜드

선착장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름드리 큰 나무와 그 그늘 아래 마을 이름이 걸린 쉼터다. 그 옆으로 마을회관과 경로당이 있다. 그런데 그 마을회관이 보통의 회관과는 생김새부터가 다르다. 신기하게도 이 작은 섬은 국내에서 가장 앞서가는 저탄소 친환경을 추구하는 에코 아일랜드로 유명하다. 열손실을 줄이기 위해 단열이 우수한 재료를 사용하여 시공한 패시브하우스로 만들어진 마을회관과 경로당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한 새로운 개념의 건축물이다. 에코 아일랜드를 위한 연대도의 노력은 섬 전체를 밝히는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 태양광 발전소는 연대도 전체 사용전력의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전기료 걱 정 없이 생활하고 있다.

 

마을을 지나가면 에코 아일랜드 체험센터가 있다. 옛 학교 자리에 지어진 이 센터는 패시브하우스로 만들어진 전시관과 친환경적인 에너지 생산에 대한 여러 실험들을 할 수 있는 시설들이 있어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자주 찾는 장소이다. 자전거를 타면서 공급된 전력으로 불을 켜거나 휴대폰 충전을 하는 체험 등이 가능하다. 여러 대의 자전거를 연결하여 전기를 발전해야 켜지는 가전제품들을 보면 에너지의 소중함을 실감할 수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최근 자주 뉴스거리가 되고 있는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는 섬마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다.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고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의 수위가 올라가면 주로 해안가에 모여 마을을 이룬 섬마을들은 수몰의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이미 태평양의 섬나라들 중에는 지구 온난화 문제로 기후난민이 발생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기온상승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생산 농작물부터 포획 어종까지 무수한 변화를 가져온다.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섬마을에서 입을 피해는 실로 막심하다. 환경 개선을 향한 노력이 늦어진다면 우리의 섬과 해안 도시들도 모두 잠기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볼 때 연대도의 에코 아일랜드는 주목할 만하다.

 


마음을 달래는 몽돌 해변

지겟길을 내려서면 에코하우스 옆에 패총 유적이 있다. 패총은 선사 시대의 인류가 식량으로 삼던 조개 껍질이 쌓인 곳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패총의 흔적이나 안내판이 부실해 사람들의 눈을 끌지 못하고 있다. 패총을 지나 지겟길이 시작되는 지점 아래로 내려오면 몽돌 해변이 있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바다로 휘어진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마치 오랜 고통을 인내하는 듯한 그 나무는 바다를 보며 서 있어서 몽돌 해변으로 가는 이정표 구실을 한다.

 

연대도의 몽돌 해변은 작다. 해변의 끝에서 끝까지 걸어도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차르르 차르르 파도에 씻겨 내려가는 소리가 범상치 않다. 마치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과 같은 소리가 난다. 이 해변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앉아 있기에 딱 좋다. 여러 사람이 앉아 있기엔 작은 규모이기 때문에 누군가 먼저 자리 잡고 앉으면 그 외로움의 영역을 침범할까 또 다른 사람이 앉기 망설여진다. 그 작은 해변의 가운데에 앉아 있으면 사방에서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듣는 사람에 따라 그 느낌은 다를 것이다. 내가 앉았을 때는 제법 파도가 커진 뒤였다. 쏴아아 내려가는 소리가 뭍에서 지친 내 마음을 씻어 내리는 것 같았다. 몽돌 해변 옆으로는 더욱 좁은 절벽 사이로 너른 바위가 있다. 그 바위로 가서 파도가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파도는 바위를 타고 넘어 불꽃처럼 타올랐다. 나는 작은 바위처럼 웅크리고 앉아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한참을 일어날 수가 없었다.
 

글_ 전윤호 사진_이상희 <섬에서 섬으로 바다백리길을 걷다>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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